gugliata

by Hyun

gugliata(굴리아타) : (자수, 재봉 등에서) 바늘에 꿰어 한 번 쓸 분량의 실.



10년 전 이맘때쯤 나는 이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이 gugliata의 길이는 누가 정한 거고,

얼마 정도를 말하는 건지 궁금해했고,

늘 마지막 순간에 달랑거리는 실의 길이에 투덜댔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땀을 앞두고 실이 끝나버릴까 봐 두려워했었다.


그날의 포스팅은

한 번의 굴리아타는 끝났지만,

나는 한 뭉치의 실타래를 가지고 있으므로

다시 또 한 분량의 실을 꿰면 된다며 희망차게 마무리되었었다.


이 gugliata에 대한 궁금증은

나중에 이탈리아에서 조금씩 해소되었다.

작업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실이 엉키지 않도록 50cm 내외?

실이 아주 얇은 베네치아 레이스는 더 짧게 썼고,

테두리를 둘러야 할 때는 길게 1m 이상 실을 끊지 않고 사용할 때도 있었다.


실을 마무리하고 바늘에 다시 꿰는 게 귀찮아서 길게 쓰는 편이었는데,

늘 선생님들은

‘troppo lungo.’

하면서 가위로 실을 싹둑 잘라 버리시곤 했다.


실을 길게 꿸 때와는 달리,

나는 불안감에 미리 실을 마무리 지으려고 했다.

내가 저기까지 가야 하는데 그 직전에 실이 끝날 것 같으면

미리 실을 교체하기 위해 마무리 짓는 것이다.


이게 말로 설명하기엔 정말 애매한데….

에밀리아 아스나 베네치아 레이스, 튤자수처럼

실을 보이지 않게 마무리 짓고 자연스럽게 교체해야 하는 경우에는

남은 실 계산이 중요하다.


남아 있는 실 계산을 잘못하고 내달리다가는

나중에 직전에 실이 바닥나서

그전 작업을 다 풀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실을 여유 있게 남기더라도

미리미리 교체하는 편이었는데,


푼토 말리에서의 수업에서 릴리아나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아냐, 더 갈 수 있어. 아직 끝내지 마. 더 가. 실을 아껴야 해. 이건 비싼 실이야.’


아니, 이게 비싼 실이라니?

이건 그냥 코로도넷인데?


그 후로도 몇 번 계속 릴리아나 선생님은

내가 실을 길게 남길 때마다

‘오, 아냐, 아직 아냐, 넌 더 갈 수 있어.’


머뭇거리며 바늘을 내려놓으려 치면

‘계속 가, 넌 갈 수 있어.’


수업 내내 그 말들은 이어졌다.

정말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2~3cm만 남기고 악착같이 끝낼 때는

우리는 박수를 치며 웃곤 했다.


그때는 몰랐지.

말리에는 실을 살 수 있는 상점이 따로 없었고,

수업에 필요한 실은 선생님이 주셨으니까.

(물론 한국에서 내가 몇 개 들고 가기도 했고)


그리고 그곳을 떠나 푼토 안티코에 가서 에밀리아 아스 수업을 할 때도,

두 선생님 모두 입을 모아 말씀하셨다.

‘너는 아직 더 갈 수 있어. 끝까지 가.’

그리고 뒤에 덧붙이는 말,


— 실이 비싸 —


여기서도 그러시길래? 이게 뭔 소리지?

내가 이 실 가격을 아는데….


마침 사용해야 하는 실이 코로도넷 #100번이기도 하고,

데안나 선생님이 다음 수업 때 가져다주신다고 했지만

실 가격도 알아볼 겸,

산조반니에 수예 상점에 가서 실을 사러 가기로 했다.


그런데 계산하고 나니

선생님들 말씀이 맞았어.


이탈리아어에 이런 말이 있다.


Costa un occhio della testa!!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비싸다!

표현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구나!


놀라서 사진까지 찍어 놨더라.

코로도넷 볼 한 개가 10유로!

당시 환율로 하니 16,000원이 넘는 거야!

내가 마지막으로 판 가격이 얼마였더라?

거의 따블인데?


그새 가격이 오르기도 했겠고

(원래 이탈리아는 실값이 한국보다 비싸긴 했지만),

머릿속으로 재빨리 내 작업실에 코로도넷 재고가

얼마나 남았는지 계산해 봤다.


아….


실 아껴 쓰라는 선생님들의 말씀이

농담이 아니었구나.


‘나는 한국에 실이 있으니까~

박스로 쟁여 놨으니까~’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펑펑 써대다가

그다음부터는 정말 알뜰하게 쓰기 시작했다.


꼭 가격 때문에서가 아니라,

선생님들께서 이구동성으로 하신 말

‘넌 더 갈 수 있어, 아직 멈추지 마.’


그 말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한국에서 ‘실’은 ‘수명’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돌잔치에 실타래를 잡으면

‘장수’한다고 하지 않는가.


이탈리아에서도 그럴까?

왠지 느낌이 그럴 것 같아.


내가 미리 겁을 먹고 앞서서

실을 정리하려고 할 때,

‘너는 아직 더 갈 수 있어, 아직 포기하지 마’

라고 말해 주시는 선생님들의 눈빛과 말투가

너무 따뜻했거든.


실은 비싸니까,

네 인생은 소중하니까,

미리 포기하지 말고

갈 수 있는 데까지 끝까지 가렴.


그런 걸 전달하고 싶으신 게 아니셨을까.


다시 gugliata.


실을 길게 쓰면 편할 것 같지만,

너무 길면 매듭이 생겨서 실이 엉키기 쉽고,

보풀이 일고 해져서 끊어지기 일쑤다.

너무 짧게 끊으면 흐름이 멎는다.


나는 늘 그 사이 어딘가에서

이번 한 번의 gugliata를

얼마나 길게 이어야 할지 고민한다.

너무 일찍 놓지도,

욕심에 끌고 가지도 않으려 한다.


완성된 작품은

한 올의 실로 단번에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무수히 많은 고민들이

이어지며 만들어 낸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는 바늘땀,

중간중간 쉼과 시작들이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한 번의 굴리아타가 끝났다는 것은

끝이 아니라 ‘쉼’,

잠시 숨을 고르고

처음처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마다의 굴리아타를 손에 쥐고

고군분투 중인 벗들에게

나도 이 말을 남긴다.


당신은 더 갈 수 있어요.

그리고 실이 끝나면,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새 실을 꿰면 됩니다.


작품도, 삶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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