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과 바닷물이 만나는 한강의 끝,
일산대교

아름다운 한강순례 08

by 이서윤

얼음 맺힌 그물에 숭어가 파닥거리며 올라오는 한강의 뱃머리,

나도 한강 어부가 된다.

배에 붙은 얼음을 떼어내고 유빙을 가르며 나아가는 부부

스크린 속 다큐멘터리에 이끌려 일산대교를 향한다. 내심 유빙을 마주하길 기대하면서.

강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이라, 바람 끝에 비릿한 한기가 있을 것만 같다.


매년 겨울이면 한강 하류엔 유빙이 장관을 이룬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며 물길의 속도가 잦아드는 곳이라, 얼음은 수면에 떠돌다 쌓여

울퉁불퉁한 유빙이 강과 바다를 채운다. 한강 서쪽 끝은 내가 사는 곳과 그리 멀지 않다. 강물과 바닷물이 섞인 다리 위를 걷는 일은, 내 안의 경계를 허물고 더 넓은 세계를 만나는 길이다.


강이 바다를 만날 때까지 우리는 무엇을 붙잡고 있는가.


고양시 법곳동과 김포시 걸포동을 잇는 1,480m 길이의 일산대교는 차들이 쉼 없이 지나가는 ‘남과 북을 잇는 대동맥’이다라고. 남단 입구의 기념석은 통일을 향해 나아가는 형상으로 뻗어 있었다. 그 앞에 서서, 오늘의 순례를 시작했다.


기대했던 유빙 대신, 우수가 지나서인지 강물은 갈색 빛을 띠고 있었다.

흐르는지 머무는지 분간이 안 되는 물결. 상류의 푸른빛과 대조되는 흙빛 강물에서 서해의 기표를 읽는다. 마른 흙색의 물이 흐르는 다리 위를 걸으며 가끔 뒤를 돌아보았다.


순간은 불안해도 머리카락에 닿은 바람이 잠든 세포를 연다.

어디서부터 날개를 펴는지 새들이 다리 위를 날아간다. 자유의 날개를 펴고 있다. 기념비에 새겨진 글처럼 끊긴 대동맥을 이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간간이 라이더들이 신호를 보내며 지나간다.


대형차들이 달린다. 전해지는 진동은 다른 다리보다 약했다. 2008년 완공 때부터 철새 도래지인 장항습지를 보전하고자 저소음 포장과 절제된 조명을 택했기 때문이란다.

이곳은 대륙을 이동하는 새들의 중간 기착지다. 해마다 삼만 마리가 넘는 물새들이 모여들고,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을 포함한 천여 종의 생명체들이 대를 이어간다. 람사르 습지갯벌 위로, 무채색 풍경이 혹한의 공명을 같이 한다.


날아오르는 새를 영상에 담으며 북단을 향해 걸었다. 물살의 무늬가 꽃잎 같기도 하고 물고기의 비늘 같기도 했다. 어머니는 도마 위에 큰 조기를 올리고 칼등으로 비늘을 치셨다.

그 소리가 바람에 부딪히는 댓잎 소리처럼 두두둑 들려오는 듯했다.

서늘한 한기가 서렸다. 어린 날의 기억은 애잔하고 멀기만 하다.


껍질 벗겨진 나무 한 그루가 뿌리를 드러낸 채 강가에 누워 있었다. 내려다보았으나, 자신을 타고 흐르는 물을 잠잠이 배웅할 뿐이었다. 죽은 나무조차 물살을 받아들이는데, 강산이 수십 번 변해도 이 땅에 맺힌 이산의 아픔은 흐르지 못한 채 고여 있다.


북단 끝, 곧 봄을 피워낼 꽃밭 사이로 하얀 ‘GOYANG’ 조형물이 마중하듯 서 있었다. 한때 자주 오가던 도시였으나, 친구는 퇴직 후 세종시에 거처를 옮겨 오카리나와 팬플루를 연주하며 인생 2막을 엮어가고 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만나던 시절을 지나, 우리끼리 종종 만났다. 그러나 이제는 정기모임에서 얼굴을 마주할 뿐이다. 개인적인 시간을 내어 마주 앉기가 어려운 것은, 어쩌면 너나없이 바쁘다는 핑계 뒤에 숨어버린 탓인지도 모른다.


길은 수없이 넓어지는데, 정작 사람 사이의 거리는 아득하다. 물리적인 속도가 마음의 거리까지 좁혀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이제는 다리 하나 건너는 일조차 시간에 기대어 ‘탐험’이라 부르게 되었다.


일산대교를 흐르는 물은 남북의 경계가 없는 중립 수역으로 향하는 길목이다.

분단이 계속되는 한 남쪽의 마지막 다리로 남겠지만, 팔당대교가 한강의 첫물을 시작하듯 일산대교는 한강의 마지막을 바다에 실어 보낸다. 마지막은 시작과 닿아 있었다. 태백산 검룡소에서 시작된 물길이 한강의 끝 다리, 일산대교를 흘러 바다를 만나듯, 곧 북녘의 물길과 하나 되어 흐를 날 올 것을 안다.


길은 수없이 넓어지는데

사람 사이의 거리는 아득하다



https://youtube.com/shorts/5O3sN_ViE3o?si=AfIEQA5EuiXzvhRB

- 일산대교 도보중 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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