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의 조용한 호수, 동호대교

아름다운 한강, 도보 순례 07

by 이서윤



종로 3가 뒷골목엔 전날 내린 눈이 쓸다 만 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친구 모임 후 동호대교를 걸을 생각이었으나 발길을 돌려 근처 영화관으로 향했다.

관객이 많았다.

스크린 위로 동호대교가 지나갔다.

조금 전까지 갈지 말지 고민했던 터라 전율이 일었다.

내 생각을 누군가 읽어 스크린에 투영한 듯한 장면은 단순한 우연 같지만은 않았다.


며칠 뒤, 동호대교를 찾았다.

새로운 풍경을 보러 갈 때면 시위를 당긴 궁사의 손끝처럼 긴장감이 앞선다.

영화 속 배경을 찾아 나서는 길, 마치 주인공이라도 된 듯 심장 박동이 뛰었다.

동호대교에서 바라본 한강은 갓 캐낸 푸른 원석의 표면처럼 파랬다.

옥수역을 빠져나온 시야에 시린 푸른빛이 들어왔다.


서울 금호동과 압구정동을 잇는 1,095m 길이의 동호대교는 차와 사람, 지하철이 나란히 달리는 복합교량이다. 삼각형 모양으로 짜맞춘 형식의 트러스는 3호선의 상징과 같은 주황색이었다. 북단인 옥수역에서 이어진 계단을 올라가자, 지하철이 박자를 맞추듯 지나갔다. 창을 열고 손이라도 흔들어 줄 것 같은 아련한 생각도 따라 지나간다.

3호선 서울 구간 중 유일한 지상 구간인 옥수역을 지날 때면, 기관사도 창을 열어 지하의 공기를 비워내고 짧은 해방감을 맛본다고 한다.


동호대교는 1985년에 완공되었다. 옥수동과 압구정동 사이를 흐르던 한강은 동호(東湖)라 불렸다. 강폭이 넓고 물결이 잔잔하여 마치 동쪽의 고요한 호수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그 평온한 다리 아래 한강에서 가장 깊은 23미터의 물길이 흐른다는 것에 경외감마저 들게 한다. 깊은 물은 고요히 흐른다 했던가. 깊은 호수를 지닌 사람을 그려본다.


다리 위에서 바라본 하류 쪽 강폭은 유난히 넓었다.

십 대 수학여행 길,

버스 창밖으로 순식간에 들어온 검푸른 동해바다가 떠올랐다. 고래등처럼 넘실대던 파도에 숨 멎었던 그때의 바다를 떠올리면 지금도 심박수가 올라간다.

서울의 한강이 이토록 깊고 푸른가 싶어 자꾸만 그날의 바다가 덧칠해진다.


마포대교 아래 수심이 9m, 다른 구간이 대개 15m 내외인 것을 감안하면 동호대교 아래 강물은 아득한 심연으로 향한 느낌이랄까. 과거에도 이곳 경치는 수려해서 젊은 학자들이 공부하던 ‘동호독서당’이 있었다. 그들은 배를 띄워 시를 읊고 인생의 희로애락을 노래했을 것이다.


옥수동 쪽은 중랑천과 본류가 합쳐지는 곳이라 한다. 물길이 만나고 수심이 깊으니, 강물은 제 속도를 이기지 못해 소용돌이를 만들어 낸다. 직접 본 적은 없으나 강바닥에서 숨을 몰아쉬는 듯한 포효가 느껴졌다. 남단 압구정 쪽에 다다르니 직사각형 화강암 표지석이 위엄 있게 문지기처럼 서 있다.


압구정(狎鷗亭), ‘갈매기와 친하게 노닌다’는 뜻이 궁금했다.

조선 시대 이곳은 바다와 강이 만나던 접점이었다.

서해물길을 거슬러 온 갈매기들이 강의 흐름을 따라 이곳으로 모여들었으니,

정자 이름에 ‘갈매기 구(鷗)’가 들어간 것은 우연이 아니었으리라

당시 한강 변에서 경치가 가장 빼어났다는 압구정.

겸재 정선의 화폭 속에서도 압구정은 절벽 위 기와집 아래로 옥빛 강물이 흐르는

절경으로 묘사되었다.


잔잔한 호수 아래 심연을 받치고 있는 다리.

흑백의 지나간 기억과 오늘,

그 교차의 시간을 걸었다.



https://youtube.com/shorts/TEi4s_QlyPw?si=LdNv1XqBx9WxtcN2

- 동호대교 도보하며 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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