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봉이 있는 다리, 잠수교

아름다운 한강, 도보 순례 06

by 이서윤

북단의 강가에는 두터운 얼음이 보트를 붙들고 있는데,

남녘에서는 벌써 매화꽃 봉오리가 움튼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패딩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 장갑을 낀 채 잠수교를 향해 걷는다.


추위에 비례하듯 사람들의 걸음도 재빠르다. 찬 공기에 부딪히는 갈대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뒷발로 버티는 큰 반려견과 실랑이하는 주인의 말소리를 뒤로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갈대밭을 지나 잠수교에 도착했다. 세빛섬 수변 무대에는 겨울의 차가운 빛만이 무채색으로 감돌고 있었다. 비어 있는 원형 무대는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듯 두팔 벌려 나를 맞이한다.


잠수교는 1975년 가을에 착공하여 이듬해 여름, 795m의 길이로 완공되었다.

바닥과 상판, 교각이 하나로 연결된 튼튼한 라멘식 구조의 다리이다. 서울과 부산을 잇는 고속도로의 축을 연결하는 관문이자, 서빙고와 반포를 잇는 소통의 교량이기도 하다.


본래 안보 목적으로 설계되어 ‘안보교’라 불렸으나, 이제 시민들의 평화로운 보행길이 되었다. 발과 거의 수평으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본다.

평화를 이루려면 낮아지는 연습을 미루지 말라고 일러주는 듯했다.

평화를 위해 나는 얼마나 더 낮아져야 할까.


위쪽 반포대교가 지붕처럼 바람을 막아주는 사이, 차들은 붕-붕 목적지를 향해 달려간다. 건너편에서는 학생들이 장갑도 끼지 않은 채 판자를 떨어뜨리며 실험에 몰두하고 있다.

소리의 데시벨을 측정하는 걸까.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복을 꼭 챙겨 입으라던 어머니의 잔소리가 두꺼운 물결에 실려 온다. 그때 나는 왜 그리 건성으로 대답했을까.

뒤늦은 후회 속에 강바람이 또 한 번 쌩 하고 지나간다.


잠수교는 비가 많이 오면 물 아래로 잠긴다.

부유물이 걸리지 않도록 난간도 낮게 설계되었다.

2020년 여름에는 무려 232시간 동안 잠겨 있었다고 하니,

한강의 수위와 팔당댐의 거센 물길을 온몸으로 받아냈을 것이다.


세상이 소란스러울 때는 잠시 몸을 낮추어야 한다는 듯.

물이 빠진 뒤 진흙을 씻어내던 파란색과 연두색 복장의 부지런한 손길들,

다리 중간을 지나가자 유람선이 지나갈 수 있도록 솟아오른 아치가 나타났다.

시민들은 이를 ‘낙타봉’ 이라고 부른다 한다.

평탄한 다리가 타인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제 허리를 높인 모습에서, 어릴 적 ‘동동동대문을 열어라’를 부르며 놀던 때를 생각했다. 키 큰 친구가 까치발까지 들며 손을 높이 들어 문을 만들어 주던 장면. 최대한 머리를 숙낮은 자세로 통과하던 우리들 웃음소리, 나비처럼 날개짓하다 사라진다.


진정한 배려란 자신을 낮추어 타인을 지나가게 하는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굴다리를 빠져나와 지나가는 여자에게 방향을 물었다. 한남대교를 걸어 나왔을 때의 길과 이어지고 있었다. 물결이 등을 밀어주어도 제자리에 머무는 듯 보이는 강물. 쇼트트랙 계주에서 다음 주자의 등을 밀어주어야 빠르게 나아가듯, 우리도 서로의 등을 밀어주는 날 새파란 강물 소리 더욱 깊어질 것이다.


겨울에는 나무들도 웬만한 바람이 아니고서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물소리가 옷깃을 여미며 흐르고, 나는 말을 아낀 채 걷는다.


낮아지는 다리만이 오래 물 위에 남는다.



https://youtube.com/shorts/lB_W1dPW5fM?si=zYNX9BppRtEQNImJ

(잠수교 도보,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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