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장구치는 법, 다섯 번째
20241111 짧은 소설 5회차
물장구치는 법, 다섯 번째
"어느 순간 내 몸이 위로 올라오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시간은 흐른다. 다음 날이 되자 나는 어제처럼 이모들과 수영장을 청소한다. 오늘은 정기 소독일이라서 소독 기계로 풀 안에 있는 물들을 소독 해야 한다. 기계가 물속에서 작동하는 동안, 나는 물아래를 내려다본다. 현주의 연락이 내 머릿속 헤 계속해서 맴돈다. 그녀의 연락이 오기 전까지 나는 그 일에 대해 많은 생각들을 한다.
그중에서는 내가 했던 일에 대해 한탄과 체념을 오가는 것도 있다. 그러다가 만약에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렇게 될 줄 안 상태로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서 그때의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예상대로 고된 훈련을 견딘 채 대회에 나가고, 현주를 비롯한 학교 구성원들과의 사이도 원만하고, 학과장에게서 휴학 권고를 받지 않았을 거라는 추측, 그리고 이런 불행을 나 스스로가 자초한 게 아닐까 하는 후회에 지배당했다. 그럴수록 나는 심해 속으로 점점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또다시 속에서 거북함이 몰려온다.
심한 거북함에 도망치듯 휴게실로 들어간다. 혼자서 헐떡이는 숨을 진정시키고자 두 눈을 질끈 감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다가 내쉰다. 헉헉 거리는 나의 숨소리가 텅 빈 휴게실 안에 울린다. 그때, 나의 요란스러운 행동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는지 몇몇 이모들이 따라와서 괜찮냐고 묻는다. 그녀들의 걱정하는 소리가 들린다.
"지은아, 무슨 일이니?"
"어머 얘 봐... 얼굴이 창백해... 식은땀도 났다고..."
"지금 병원이라도 갈래? 데려다줄게..."
"아니에요... 컨디션이 나빠서 그런 거예요... 그렇게 심각하지 않아요..."
나는 이모들의 걱정에 그저 컨디션이 나빠서 그런 거라고 둘러댈 수밖에 없다. 그러자 자연스레 헐떡이던 숨이 진정이 됐고, 이모들은 나머지 일들을 하러 갈 테니 휴게실에서 마저 쉬라며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다시 혼자 휴게실에 있게 된 나는 넋을 잃은 사람처럼 벽에 기대앉는다. 지금 이런 상황의 내가 너무나도 창피하다. 고작 예전의 일에 허우적대고 나오지 못하다니... 언제까지 이런 일로 울고 아파해야 하는지 몰라 분노도 치밀어 올라온다. 그렇게 오늘 하루도 재수 없게 시작되었다.
새벽에 일어났던 소동으로 나는 오늘 업무에서 배제되고, 하루 종일 휴게실에 박혀 쪽잠을 자는 신세가 되었다. 이제야 하늘 위에 노을빛이 희미하게 번지자 수영장에서 쉼 없이 헤엄치던 사람들이 수영장을 나간다. 상쾌한 샤워를 한 상태로 수건에 온몸을 닦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며 오늘 하루도 무사히 마무리했다고 생각하겠지. 그런 상태로 집으로 돌아가겠지. 그런 사람들이 부러웠다. 눈을 뜨기 싫어 평생 잠에 들기 바라는 나의 하루가 그들에게는 내일이 기대되는 그런 것이니까.
그렇게 퇴근을 위해 휴게실에서 나온다. 로비에서 데스크 직원의 통화 소리가 들린다. 데스크 직원의 목소리가 꽤나 난처한 것 같다. 회원 중 한 명이 수영장 물속에서 귀걸이 한쪽을 잃어버린 모양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구조 요원들이 퇴근을 한 상태라 지금 당장은 수영장에서 잃어버린 귀걸이 한쪽을 찾을 수 없는 것. 그럼에도 회원은 내일 중요한 모임이 있어 그 귀걸이를 찾아야만 하는 상황이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데스크 직원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산만하게 이곳저곳을 옮긴다. 그러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한시름 놓는 표정을 짓는다. 데스크 직원은 내가 청소원 면접을 볼 때 만났던 사람이었는데 직원들 중 유일하게 내가 수영선수였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데스크 직원의 간절한 부탁과 간식 선물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물속으로 들어간다. 오랜만에 샤워를 하고 수영복과 수영모를 착용한다. 몸에 달라붙는 이 느낌이 어색하다. 한적한 수영장에서 바닥에 떨어져 있을 귀걸이를 찾기 위해 물속을 헤엄친다. 다행히도 구석진 곳에 떨어져 있어서 금방 찾았다. 다른 곳이었으면 첨벙이는 물살에 휩쓸려 떨어진 위치와 다른 곳에 있었거나, 최악이면 하수구로 흘러들어 갔을지도 모른다. 귀 걸을 주운 나는 물속에서 나와 계단을 오른다. 그리고 곧장 샤워실로 갈 생각이었는데 입구 쪽에서 웬 중년 여성이 머뭇거리며 서있었다. 새 수영복을 입은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곧장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나는 기분 탓이라 여기고 샤워실로 향한다.
그런데...
"저기요...!"
나는 중년 여성의 말에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수줍은 미소를 머금은 그녀는 잠깐 쭈뼛하고는 나에게 묻는다.
"아까 그거... 그... 물속에서 헤엄친 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그것이 우리의 첫 만남. 그녀의 이름은 수현, 수영장 근처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50대 중반의 여자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그녀가 앞으로 나와 깊은 심해 속을 헤엄쳐 나올 동반자일 줄을.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