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흔 Nov 18. 2024

물장구치는 법, 여섯 번째

20241118 짧은 소설 6회차

물장구치는 법, 여섯 번째

"그저 일렁이는 물결에 몸을 맡겨 보자."


수현은 수영을 하는 것 자체가 처음인 것 같다. 통통한 몸에 딱 달라붙는 수영복 차림이 어색한지 자꾸만 어깨를 움츠리고, 내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채 머쓱하게 웃어대며 자신의 사정을 설명한다.


"제가... 수영 자체가 처음이라서... 다 어색하거든요... 근데 아가씨는 씩씩하게 팔다리 움직이면서 잘 헤엄치니까... 혹시나 해서..."


수현의 말끝이 흐려진다. 그러고는 다시 머쓱하게 웃는다. 나는 수현이 어떤 이유로 나에게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평소 같았으면 퇴근을 하고 집에 가는 버스에 몸을 맡길 시간인데, 갑작스럽게 평소 안면도 모르는 중년 여성에게 잡혀 있다니. 그녀는 자꾸만 "어...." 말을 늘어뜨리고서는 이내 자신의 이유를 밝힌다.


"혹시... 어떻게 물장구치는지 알려줄 수 있을까요?..."


갑자기다. 처음 본 사람에게 수영을 가르쳐 달라니. 나는 이제 선수도 아니고 여기에서 청소만 하는 사람인데. 그리고 수영하는 걸 알고 싶다면 강습을 받아도 되는데 말이다. 수현이 이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닐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현에게 묻는다.


"저는 선생님이 아니라서 힘들고요. 평일 오전에 강습이 있거든요. 지금도 모집 중인데 한 번 데스크 가서 얘기하면 될 거예요."


하지만 그녀는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제가 오전에는 일이 있어서 시간이 안 돼요. 저녁에는 직장인반이라서 들어가기 어렵고요. 사실, 저번에도 이 시간에 왔었는데 어떻게 헤엄칠지 몰라서... 그냥 물속에 앉아서 발차기만 하고 나왔거든요.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 헤엄치는 거 보면서 하고 싶어도 이 시간대에는 사람들이 없으니까... 혼자 있다가 일어나는 게 다반사예요."


이렇게 된 이상 수현을 외면하고 나가기에는 힘들 것 같다. 나는 잠깐의 침묵 끝에 수현에게 다시 묻는다.


"그렇구나..., 그러면 먼저 하고 싶은 게 뭐예요?"


수현은 나의 질문에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일단..., 물에 뜨고 싶어요."


나는 뒤에 있던 용품대에 있는 판때기 하나를 꺼내 수현에게 건넨다. 수현은 얼떨결에 내가 내민 판때기를 받는다. 그러더니 손에 든 판때기를 천천히 살펴보며 어색하게 웃는다. 마치 '이걸로 내가 정말 물에 뜰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표정에 스며 있는 듯하다. 


"이거 잡고 한번 시도해 보는 거예요. 일단 몸이 물에 익숙해지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 판때기를 꽉 잡고 발을 움직이면서 물 위에 떠보는 거예요. 제가 옆에서 지켜볼 테니까 무서워하지 말고요."


수현은 내 말을 듣고도 여전히 긴장한 기색이다. 나는 무덤덤하게 툭 그녀에게 말한다.


"누구나 처음에는 어려워요. 한 번 천천히 가보면서 물에 뜨는 연습을 하는 거예요."


수현은 작은 한숨을 내쉬고, 조심스럽게 물속으로 들어간다. 허벅지까지 차오르는 물이 그녀의 몸을 감싸자, 수현은 잠시 멈춰 서서 깊은숨을 내쉰다. 그녀가 손에 든 판때기를 단단히 잡고 물 위로 나아가려 할 때, 작은 물결이 그녀의 허벅지를 스치며 지나간다.


"하... 이게 맞나요?" 


수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맞아요. 이제 다리로 가볍게 물을 차 보세요. 발끝을 뻗어서 차는 게 포인트예요. 힘을 너무 주지 말고, 그냥 발끝으로 살짝살짝 차는 느낌으로."


수현은 고개를 끄덕이지만, 표정은 여전히 경직되어 있었다. 그러나 곧 그녀는 내가 말한 대로 발끝을 뻗어 물을 차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몸이 휘청거리고 물속으로 더 깊이 가라앉는 것처럼 보이지만, 몇 번의 시도 끝에 판때기가 그녀를 물 위로 지탱하기 시작한다.


"오... 조금 뜨는 것 같아요!" 


수현은 놀라며 외쳤다. 얼굴에는 기쁨이 작게 비친다. 

이상하게 그런 수현의 얼굴에서 수영을 처음 하던 어린 나의 얼굴이 보인다.

그런 나의 앞에는 젊은 시절의 아버지가 내 손을 잡고 숫자를 세어주셨지.

나는 그 숫자에 맞춰 음파음파 숨을 참았다가 쉬었고, 그때 정말 즐거웠는데...


다음에 계속...




작가의 이전글 물장구치는 법, 다섯 번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