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개 빠진 사람이 되어가는 중

기다림의 기술

by 사이에 선 사람


병원에 들어서면, 모든 것이 멈춘다.

접수를 하고, 돈을 낸다. 여기서는 그게 먼저다.

진료보다, 검진보다, 사람보다.

돈이 먼저다.


돈을 내면 번호표를 준다. 번호표는 곧 운명이다.

운명을 쥐고 자리에 앉는다.

하지만 오래 앉아 있으면 다리가 아프고,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래서 일어선다.

가만히 서 있는 게 가끔은 덜 지친다.


이름이 불리고, 진료실 앞에 선다.

간호사가 나를 이끈다.

의사가 묻는다.

“인터넷에서 찾아보셨죠?”


실은 많이 찾아봤다.

그런데 그런 말, 의사는 싫어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안 꺼냈다.

그런데 오히려 먼저 묻는다.


화면을 보여준다.

담낭은 용종과 결석으로 가득 차 있다.

“가운데만 비어 있어요. 수술해야겠죠?”

그는 말한다. 거의 선언처럼.


“로봇수술 알아보셨죠?”


나는 모른다고 했다.

그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분위기는 가볍지만, 말의 무게는 그렇지 않다.


그는 말한다.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라고.

하지만 나는 묻지 않는다.

내가 아는 질문들은 이미 검색창에서 다 털어봤기 때문이다.


다음 설명은 다음 차례라고 한다.

또 기다리라고 한다.

나는 다시 선다.

의자엔 마음을 놓을 자리가 없다.


간호사가 다가온다.

수술은 두 가지 방식이 있다.

로봇 수술, 천만 원.

복강경 수술, 사백만 원.

고르란다.


나는 저렴한 걸 골랐다.

왜냐하면 저렴해서다.

이유는 단순하다.


하지만 로봇 수술은 11일에 가능하고, 복강경은 21일이어야 가능하단다.

더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다시 종이 한 장을 받는다.

거기엔 순서가 적혀 있다.

이제 나는 그 순서를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된다.

오징어 게임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긴 상금도, 탈락도 없다.


돈을 또 내고,

심전도 검사, 피검사, 소변검사를 한다.

피는 다섯 통 뽑는다.

피는 내 안의 어떤 것을 가져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기다리는 곳엔

할아버지, 할머니뿐이다.

나도 그들 틈에서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 나이대가 된 기분이었다.


CT는 당장 찍을 수 없다.

다시 와야 한다.

토요일 오후 2시, 그때가 비어 있단다.

그래서 또 병원에 와야 한다.


아픈 하루는 결국

기다림으로 채워진 하루가 된다.

나는 어느새

‘폭삭 속았수다’의 관식이가 되어 있었다.

말없이, 그대로,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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