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여자의 알바 이야기 / 요양보호사 가족요양
5등급 치매 어르신을 돌보던 일을 한 달만 하고 그만두기로 했다. 어르신이 더 이상 요양보호사를 부르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아직 혼자 집안일을 할 수 있는데 굳이 돈을 내가며 사람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한 달이 끝나가는 며칠 동안 나는 어르신이 미뤄오셨던 일들을 함께 해 드렸다. 마지막 날에는 어르신의 연명치료의향서를 작성하기 위해 건강보험공단에 다녀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 은행에 들러 적금을 중지하고 병원에도 들러 몇달치 약을 처방 받았다. 걸어 다닌 시간만 해도 1시간 반이었으니 어르신이 혼자 생활할 수 있다고 한 말은 맞는 것 같았다. 어르신 댁에 도착한 후 우리는 앞으로도 가끔 연락하자는 등, 의례적인 인사를 하고 손을 흔들었다.
사실 처음에 나는 내가 잘린 줄 알았다. 어르신이 내가 집안일을 척척 못해서 답답하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잘린 건 아닌가 보았다. 다음날 어르신이 전화를 하셨다.
"어제 잘 들어갔는가 해서 전화했어. 어제 센터에 들렀다가 집에 간다고 했는데 돈은 잘 받았어?"
"아, 제가 일한 급여요? 그건 보름 후에나 받아요. 건강보험공단에서 센터로 돈이 들어오면 그때 센터에서 보내줄 거예요."
"아아, 그렇구먼. 센터에서 자기네 쓸 돈을 떼고 주는 거구만."
"하하, 그런 셈이죠. 어르신 담당 복지사도 있고 그렇잖아요."
"센터에서 돈을 제대로 주는지 잘 따져봐야 돼."
"출퇴근하면서 태그 찍었잖아요. 거기 맞춰서 나올 거예요."
"그렇구나. 근데 자네는 착해서 센터에서 잘못 줘도 그냥 넘길까 봐 걱정돼. 전에 어떤 아줌마가 퇴직금도 못 받고 그만두는 거 봤거든."
"하하하하, 제가 좀 어리버리하긴 해요. 신경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요."
그 후로도 한 시간을 떠들다가 전화를 끊었다.
그 다음날도 전화를 하셨다. 텔레비전에서 지금 청국장을 파는데 그걸 좀 사 달라고 하셨다. '참, 특이한 분이시네.' 생각했지만 나는 주문을 했고 어르신 댁으로 배송되게 했다. 어르신은 다음주말에 돈을 가져다 주시겠다고 했다. 아니, 그냥 은행 계좌로 부치셔도 되는데...
몇번을 괜찮다고 했지만 결국은 물건이 배송되고나서 주말에 어르신이 우리집에 오시기로 했고 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다. 어르신은 내가 싫었던 건 아니었다. 요양보호사가 진짜로 필요없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잘린 것이든 아니든, 요양보호사 일을 계속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다른 일을 찾아보고, 없으면 다시 돌아가자 생각했다. 눈에 들어오는 모집 공고가 있었다. 사회적 기업이었는데 시니어를 대상으로 인턴 모집을 하고 있었다. 하루 세 시간 근무하는데 월 급여가 80만 원이었다. 4대 보험까지 된다. 나쁘지 않았다. 5등급 담당 요양보호사도 하루 세 시간, 주 5일 일하면 76만 원이다.
인턴 3개월을 거치고 나면 서울의 각 지역 담당자로 일하는 수순이었다. 지역 담당자가 하는 일 중에는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도 있었다. 지역 관공서를 대상으로 인쇄, 출판물 수주 영업을 하는 것이었다. 영업은 내가 수십 년 했던 일이다. 최근에는 나이 든 여자가 영업을 한다는 것이 모양도 안 좋고 실적도 없어서 사실상 접었지만, 사회적 기업의 영업자라면 다르다. 사회적 기업에서 관공서에 영업을 하러 들어오는 사람은 대개 장애인이거나 노인이다. 관공서는 사회적 기업에 일정 부분 일을 맡겨야 한다. 적어도 내가 문전박대를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할 수 있다.
요즘은 물론 어느 단체나 인쇄물 발주가 많지 않다. 기존 거래처가 있을 테니 경쟁도 만만찮을 것이다. 그 부분은 내가 끼어들 여지가 있는지 인턴 기간 동안 알아보면 될 것 같았다. 지원했고 면접을 봤다. 다행히 붙었다.
한 가지 문제가 남았다. 출근해서 집에 돌아올 때까지 대여섯 시간을 밖에서 보내야 하는데, 집에서 내가 들어오기만을 까맣게 기다릴 96세 엄마가 걱정이었다.
긍정적인 상황은 있었다. 엄마는 내가 일을 다시 시작한 올해 초부터 몸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기력이 1년 전으로 돌아간 듯했다. 작년 말에는 몇 달 안에 돌아가실 것처럼 몸이 안좋았었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숨이 차서 한의원에서 지어온 진정제를 매일 드셔야 했다. 그런데 올해 1월에는 경련도 한번 없었고 진정제도 안 먹었다. 식사도 전처럼 반 공기는 꼭 드셨다. 걸음걸이가 불안한 것은 여전했지만 온몸에 기력이 빠져 쾡한 표정으로 앉아 있지는 않았다. 말도 많이 했고 잘 웃었다.
이런 현상에 대해 한의사에게 문의해봤다. 한의사 선생님은 비슷한 사례로 미국에서 실험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80대 노인들의 병원 환경을 60년 전 환경으로 바꿨더니 전원 건강이 좋아졌고 와상 환자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기도 했다고 한다. 엄마의 몸도 어쩌면 내가 항상 일을 했던 과거로 돌아간 줄 알고 자기도 모르게 힘을 내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단기적인 현상일 것 같아서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엄마가 씩씩하게 말했다.
"괜찮아. 혼자 있어 버릇해서 적적하지 않아."
"응? 작년은 거의 내내 나랑 집에 같이 있었는데..."
"올해도 봄에 쑥 캐러 갈 거니?"
"글쎄, 왜?"
"쑥 캐러 가면 나도 따라갈 수 있을 거 같아. 바람도 쐬고 싶고."
"그래? 그럼 가야지. 어버이날 부근에 애들 오라고 해서 다같이 쑥 캐러 가자."
"애들이 애인이랑 노느라고 뭐, 가려고 하겠나?"
"할머니가 가고 싶다는데 지들이 와야지. 쑥 캐러 가고 싶다는 거 보니까 내가 출근해도 엄마 혼자 잘 있겠는데."
"요즘 같으면 너끈히 할 수 있을 거 같아. 걱정 마. 근데 몇시에 나간다고?"
"오후 한 시에. 엄마, 그거 오늘 열번 째 물어보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몇 시간 기다리면 되는 거지?"
"다섯 시간. 가끔은 일곱 시간."
"어휴, 알았어. 근데 출근하면 아침부터 나가야 되니?"
"어휴, 큰 일 났네. 오후 한 시에 나간다고!"
일단 일을 시작하려 한다. 하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 가서 해결 방법을 찾기로 했다. 일 년이라도 엄마가 버텨주길 바란다. 엄마,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