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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은 Feb 25. 2023

세상의 숨결

나이 든 여자의 알바 이야기 / 사회적기업 시니어 인턴

요즘 나는 한 사회적 기업의 시니어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수년간 몸을 쓰는 알바를 해왔는데, 마침내 머리를 쓰는 알바를 시작했다. 그렇다 보니 옷차림을 달리해야 했다. 사무직 노동자 티가 나도록 화장도 좀 하고 양복바지에 단정한 스웨터를 입었다. 10여 년 전에 입던 코트를 걸치고 신발은 구두형 랜드로버를 새로 사 신었다. 가방은 노트북을 넣을 있도록 배낭형 백을 장롱 구석에서 꺼내 한쪽 어깨에 척 맸다. 오후 1시에 집을 나서는데, 96세 엄마가 나를 배웅하며 말했다.

"너, 40대로 보인다."

"흐흐, 설마."

"진짜야. 아주 활기차게 일하는 여자 같아."

"그래? 흐흐흐." 

진실은 엄마의 희미한 시력 덕분이라는 걸 알지만 기분은 좋았다.


회사에서는 대표이사를 비롯하여 전 직원 5명이 하나같이 환하게 웃어주고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대표이사는 업무와 관련하여 내가 어떤 말을 하든지 일단 긍정부터 해 주었다.

"네, 맞아요."

"그렇죠, 그렇죠."

"바로 그거예요."

"아, 그렇군요."

이런 말을 달고 살았다. 대표이사의 반응을 보며 처음에는 내가 회사 업무를 충분히 이해했다는 생각에 좀 우쭐했었다. 내가 회사에 뭔가 기여할 바가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이 홀가분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계속 칭찬을 듣다 보니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내 능력이 이렇게 뛰어났었나?'

'... 그럴 리가 있나.'


나는 나의 총기가 전에 비해 많이 흐려졌다는 걸 안다. 사고의 흐름이 한참 느려지고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회사 일은 하루 세 시간만 하면 되지만 나는 집에서도 일을 하여 적어도 하루 다섯 시간은 일해야 부족한 총기를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마 내 생각이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표이사의 긍정적인 말들은 사회적기업이라는 곳의 특수 상황 때문에 만들어진 어법일 것이다. '어르신'들을 상대해야 하는 겸손한 자세가 나를 능력 있는 인간으로 느껴지게 했음이 틀림없다.


20년 전쯤, 내가 광고 영업을 한창 의욕적으로 하고 있을 때, 대기업 광고주들과의 술자리에서 노인 영업자들에 대한 얘기가 나왔었다. 그 자리의 광고주들은 대개 과장급이었고 삼사십 대였고 50년 대생들이었다. 당시에는 보안 시스템이 대개 아날로그여서 광고 영업자가 기업 홍보실에 방문하기가 비교적 쉬웠었다. 기업 홍보실에서 나오는 광고는 언론의 악성 기사를 미리 막기 위한 용도로 집행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매체력과 상관없는 영업자들도 많았었다. 그런 영업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 때문이겠지만 당시 광고주들은 나이 든 영업자를 아주 밉살스러워했었다.

"아후, 요즘 노친네들이 불쑥 들어와서 광고 달라고 그러는데, 귀찮아 죽겠어요. 예산은 한정돼 있는데 매체는 왜 그렇게 많은지, 전부 돌릴 수도 없고."

"하하하, 우리도 그래요. 사무실에 쓱 들어와서는 '내년에는 나, 못 볼지 몰라. 올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광고 하나 줘봐.' 그러고 있어요. 작년에도 똑같은 얘기를 하고서는."

"크크크, 맞아요. 70도 안된 양반들이 맨날 언제 죽을지 모른대. 난 그런 사람들 오면, 아래 직원한테 맡기고 도망 나오잖아." 

나 역시 킬킬거리며 동의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60이 넘으면 영업은 물론, 일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하는 나이로 생각했었다. 


그때로부터 세상은 많이 변했다. 60세가 넘은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기 위해 애를 쓰고 있고, 아무도 그들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일반 기업에 나이 든 사람이 영업을 가는 것은 지금도 눈총을 받지만 관공서에서는 사회적기업에서 인사차 들어온 노인을 박대하면 큰일 난다.


세상은 변했는데, 우리 회사의 시니어 인턴들을 보면, 정작 당사자들은 과거의 프레임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 회사의 시니어 인턴은 7명이다. 전부 50년 대생들이다. 일반 기업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는 사실 흔치가 않은데 표정을 보면 즐거운 것 같지 않다. 그들의 표정은 모두 비장하다. 동시에 뭔가 풀이 죽어 있다.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도 다시 보면 기운이 없다. 활기차고 씩씩하게 일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도 다시 보면 공허한 표정이 뒤에 숨어 있다. 어떤 이는 아무 일도 안 하면서 '자신은 잘 모르겠다' 며 왔다 갔다 하기만 한다. 혹시 그들은 단순히 기운이 없을 뿐인데 내가 선입견을 가지고 평하는 것일까. 하지만 기운은 없어도 표정은 밝을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나는?


얼마 전 대표이사로부터 사회적기업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사회적기업은 이익금의 3분의 2를 반드시 사회공헌에 써야 한다. 대신 정부는 발주 물량 중 일정 부분을 반드시 사회적기업에 내줘야 한다. 일자리 취약 계층이 사회적기업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돕는 시스템이다. 우리 회사의 시니어 인턴도 그 일환이다. 내가 질문했다.

"저희한테 지불하는 급여도 정부에서 도와주는 건가요?"

"50%를 지원해 주죠."

"그러면 회사에서 부담하는 50%는 사회적기업이 사회공헌에 써야 하는 돈에 포함되는 건가요?"

"그렇죠."

"아, 그렇구나. 그럼, 제가 3개월간 일하면서 아무 실적이 없어도 미안해할 필요가 없네요? 하하하."

"..."

"농담이에요."

아, 나는 경박하구나.


웃자고 한 소리였다. 사실 나는 회사에 다니는 게 즐겁다. 몸을 쓰는 알바만 하다가 머리를 쓰니 즐겁다. 실적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어서 더 즐겁다. 내 친구 한 명은 나에 대해 '워크홀릭 증후군'이라고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 길들여져 와서 인생의 의미가 오로지 일에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회사 시니어 인턴들도 자신의 일에 대한 능력까지 나이 따라 늙어버린 것 같아서 우울한 건지도 모른다.


무능력은 죄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선 가장의 무능력은 죄였다. 누구보다 당사자들이 그렇게 여길 수밖에 없는 사회였다. 그래서 노인들은 자신이 늙어서 무능력해졌을까 봐 불안에 떤다. 마치 죄를 짓게 될까 봐 겁을 내는 것처럼 과도하게 떤다.


떨고 싶지 않다. 마음이 편안한 노인이고 싶다. 내 마음이 편해야 남도 나를 편하게 생각하는 법이다. 젊을 때보다 좀 더 시간을 써야 젊을 때만큼 성과가 난다면 그렇게 해야 하리라. 나를 믿고, 성과 욕심은 줄이고 살면 되겠지. 세상의 숨결을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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