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by 이수호

그녀의 울음을 봤던 건 내 인생에서 딱 2번이다. 그마저도 초등학생 때였으니 15년 하고도 더 지난 오랜 기억이다. 아주 어릴 적이라 그녀의 눈물을 기억해 본 적이 없고 혹여 상상해본다 할지라도 되려 내 눈물만 왈칵 차오르는 일이다.


첫 번째 눈물은 초등학교 1학년쯤일 것이다. 그해에 딱 2개의 기억만 가지고 있는데 둘 다 엄마에 관한 기억이다. 저수지에서 눈물을 닦던 엄마의 등과 운동회에 오지 않은 엄마.

엄마는 당신 대신 내 운동회에 와준 고향 친구와 나를 태우고 큰 저수지로 갔다. 넓은 물판을 공허하게 바라보던 엄마는 한참을 말없이 울었다. 그마저도 소리 내어 울지는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만 닦아 냈다. 아마도 혼자 둘 수 없어 데리고 온 어린 아들을 의식했겠지만 그날의 나는 타인의 눈물에, 슬픔에, 울음에 공감하지 못할 만큼 어렸기에 엄마의 눈물을 알 길이 없었다.


지금에서야 추측해 보건대 내 운동회날은 세상을 보지도 못한 내 동생이 세상을 떠난 날일 것이다. 그날 아침, 엄마는 내 도시락을 싸지도 못하고 병원을 갔을 것이고 그렇게 허망하게 당신의 셋째를 보냈을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출근하지 않던 30대의 엄마는 아마도 휴가 마지막 날 친구와 나를 태우고 눈이 시리게 반짝이던 저수지로 향해 마지막 슬픔을 뱉어냈을 것이다.


자식을 먼저 보낸 이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그녀는 먼저 난 두 아이를 위해 반짝이고 깊은 물에 당신의 눈물 몇 방울을 흘려보내는 것으로 깊은 슬픔을 갈무리했을 것이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이름도, 얼굴도 없는 아이가 묻혀 있을 것이다.



인생 첫 번째 운동회에 엄마가 오지 않았다는 원망에 "병원을 갔다."라고 대답하신 것과 나이 터울이 많은 동생을 유산했다는 일을 조심스럽게 엮어 추측해 보았습니다. 두 일 사이에 아무 관련이 없을 수도 있으나 엄마의 눈물을 서른이 되어서야 이해해 보려니 깊게 우울해집니다.


요즘 엄마의 눈물을 왜 자꾸 상상해보게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엄마를 하나의 인격체로 생각하게 되었나 봅니다. 엄마도 이름이 있고 , 당신의 삶이 있다는 것을 실제적으로 깨닫기까지 오래 걸렸습니다. 당신의 엄마가 돌아가시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던 엄마. 그 말 이후로 엄마의 눈물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저도 엄마의 눈물을 보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엄마의 서른은 이미 아들딸을 둔 성인이었지만 나의 서른은 이제 막 엄마의 품에서 독립하였기에 그날의 엄마처럼 슬픔을 잘 다룰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