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로 미친 나날들 (2)
❚ TOEFL은 처음인데~
그렇게 GRE성적을 얻고 나서, 두 번째로 처리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TOEFL 시험이었다. 나는 대학 시절,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유학을 꿈도 꾸지 못했다. 그래서 TOEFL공부는 거의 한 적이 없다. 영어 교사 임용 시험에도 각시도별 가산점 사항이 좀 달랐지만, TOEIC 시험이나 ESPT 말하기 시험(English Speaking Proficiency Test)이 대체로 가산점이 있는 공인 영어 시험들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 나도 그 두 가지 시험을 자주 친 기억이 난다.
❚ 이제 TOEFL 차례. 너 이리 와봐!!
한 번도 쳐보지 않은 TOEFL시험이 이제 내 길목에 서 있었다. 미국 대학교 입학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TOEFL 점수는 필수 제출 사항이었다. TOEFL 시험은 기본적으로 외국인의 외국어로서 영어 의사소통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이다. 그래서 알 수 없는 정글을 헤맨 것 같던 GRE시험 언어 영역에 비하면 그렇게 죽을 맛은 아니었다. 미국 대학교와 전공에 따라 요구되는 TOEFL 성적은 천차 만별이다. 다행히, 내가 지원한 미국 남부 소재 주립 대학교가 요구하는 성적은 그리 높지 않았다. 다행히, 나의 첫 TOEFL 시험 성적은 입학 허가를 받는 데 충분한 성적이었다. 그나마 영어 교사로서의 체면은 선 셈이다.
❚ GRE 성적, TOEFL 성적, 학부 성적표 발송 요청은 클릭 몇 번으로 끝.
GRE성적과 TOEFL 성적 제출 방식은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 해당 시험 홈페이지에 가서 성적표 발송 서비스를 신청하는 식이였던 거 같다. 자신의 인적 사항을 기입하고 성적표가 발송되어야하는 미국 대학교 입학처 주소를 기입하면 그 공인시험 관리처에서 우편으로 성적표를 보내는 식이였다. 그리고 학부 시절 성적표도 내가 졸업한 대학교 해당 부서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었다. 세상이 참 편리해 진 것이 내가 굳이 직접 대학교에 방문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홈페이지에 나의 정보를 기입하고 성적증명서를 보낼 미국 대학교 주소만 기입하고 수수료 결재를 하면 된다. 학생의 의뢰를 받고 기관 대 기관으로 서류를 주고 받고 하는 걸로 기억이 된다.
❚ 늦갂이 유학생의 남다른 고민: 교수님들 추천서 받기
이제 미국 대학교 입학을 위한 마지막 서류로 세 장 의 추천서가 필요했다. 왠만하며 대학교 교수님들로 부터 추천서를 받는 게 좋다. 그런데 졸업하고 거의 20년이 지난 세월이니, 그 사이 대부분의 교수님들은 퇴직하시거나 돌아가신 상황이었다. 추천서 3장씩이나 어디서 구해? 난감했다.
❚ 어메리칸 스타일 추천서 요청
교수님들의 추천서는 지원하는 미국 대학교 홈페이지 입학 원서 작성하는 곳에 추천자의 이메일 주소를 기입하면, 그 학교 측에서 추천서를 써주기로 한 그 교수님께 이메일로 추천서를 요청하는 형식이었다. 나중에 미국 대학교에서 한국어 강사로 일하면서 몇몇 학부생들이 한국어 캠프참가나 기타 장학금 지원 및 영어 원어민 강사로 지원서를 한국으로 보낼 때, 나에게 추천서를 써달라는 경우가 참 많았다. 나는 아예 추천서 폴더를 하나 만들고 거기에서 학생들의 추천서를 써서 이메일로 온 링크에 업로드 시킨 기억이 많다.
특히, 내가 미국 대학교 박사 과정 중에 가르치던 한국어 수업 수강생 중 인도출신 우주항공학과 석사 과정 여학생과 친해지게 되었다. 대부분 어린 학부생인데 비해 그 아가씨는 석사 과정이였고 상당히 생각이 깊고 예의가 발랐다. 또, 같은 유학생 처지고 아시아인이라 이야기가 잘 통하던 친구였다. 아무튼 그 친구가 졸업을 앞두고 한국이 너무 좋다면서 서울대학교 박사 과정에 지원할 거라 했다. 그래서 자신의 한국어 강사였던 나에게 추천서를 부탁해 온 적이 있었다. 그 친구가 카톡으로 추천서 부탁 문자를 보내왔다. 내가 추천서를 써주기로 하고 나니, 한 두 시간 후에 바로 나의 이메일로 서울대 입학처에서 추천서를 요청하는 이메일이 왔었다. 아마 요즘은 거의 대부분의 추천서가 이런 식으로 요청되고 수집되는 거 같다. 다행히 그 친구는 서울대 박사과정에 당당히 합격했다. 귀국해 온 지금, 이 곳 한국에 다시 그 친구도 살고 있다. 참 신기한 인연이다.
❚ Just Tweak It! 안 되면 살짝 비틀어서라도 되게 만들어!!
아무튼, 정식대로라면 이렇게 어메리칸 스타일로 해야하지만, 나처럼 늦깍이 유학생에게는 적용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 당시 근무하던 중학교의 교장선생님한테 추천서를 부탁드렸다. 그런데 체육과 출신의 교장 선생님께 영어로 추천서를 써달라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가 영어로 추천서를 쓰고 그 분의 서명을 받는 형식을 취했다. 그리고 그 추천서를 밀봉해서 우편으로 보내는 방법을 선택했다.
❚ 유학파 교수님과 국내파 교수님의 대조적인 스타일
나머지 두 장은 20년 전 거의 신규 발령을 받은 교수님이지만 이제는 중견급의 교수님들이신 두 분께 받아볼까 생각했다. 워낙 조용하게 사는 스타일이라, 졸업 후 동창회니 하는 데는 간 적도 없는 터라서 그 분들을 그 이후 뵌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어서 염치 불구하고 추천서를 부탁드렸다. 전화로 먼저 세월을 뛰어 넘는 안부 말씀을 전하고 추천서를 부탁 드렸다. 역시나 학부시절에도 깐깐하기로 유명하신 유학파 교수님은 나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니 내 소개서를 이메일로 보내라고 하셨다. 나는 사실 이게 어메리칸 스타일인지 몰랐다. 그 교수님도 미국에서 박사를 하고 오신 분이였다. 나는 내심 참 깐깐하게 구신다라는 생각을 했다. 한편, 다른 한 교수님은 순수 국내파 교수님으로 나보고 알아서 추천서를 쓰고 본인은 지금 해외 여행 중이니 과 사무실에 가서 내 도장을 찍으라고 했다. 너무 대조적인 두 분이라 난 당황스러웠다. 아무튼 이러나 저러나 추천서는 진짜 형식상 필요한 부분이니 큰 문제가 될 것은 아니었다.
❚ 드디어 멀리 바다건너 날아온 나의 입학 허가서
드디어, 입학하려는 미국 주립대학교에서 우편이 왔다. 퇴근하는 길에 국제 우편물이 도착했다. 입학허가서였다. 이제 나의 꿈이 현실로 드디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의 마음은 이미 미국행 비행기 안에 있었다. 들뜬 마음에 서류를 받아들고 찬찬히 읽어봤다. 근데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번 글(40세 현직 영어교사의 미국 유학 준비 세번째 이야기)에서 이야기를 하려한다.
❚ 근데, 휴직을 낼 수가 없네~. 이를 어째?
이제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교육청에서 요구하는 영어 공인 점수는 내가 받아 둔 토플 성적보다 살짝 높았다. 일단, 현직 교사가 유학 휴직을 하기 위해서는 관련 학과의 석사나 박사과정을 지원 해야 하고, 영어 전공 유학 휴직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제출해야 할 토플 성적이 다른 과목 교사들 보다 좀 더 높다. 나는 비싼 돈을 들어 토플 시험을 한 번 더 쳐 보기로 했다. 그런데, 두번 째 친 시험의 성적도 처음 거나 별 반 다르지 않았다. 난감했다. 다 된 나의 꿈이 이렇게 사라지게 하고 싶진 않았다. 이미 온 동네방네 미국 유학 간다고 소문은 소문대로 다 나있는 상황이라, 참 난감했다.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 막다른 골목이다 싶어도 누구나 살아남을 수 있는 필살기는 있다.
교육청이 요구하는 영어공인시험 성적은 TOEFL이나 TOEIC 둘 중에 하나를 내면 된다. 그래서 나는 전략을 바꾸어서 TOEIC시험을 공격하기로 했다. TOEFL보다 TOEIC은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에 점수를 올릴 수 있고, 대학교 시절 자주 치던 시험이라 20년이 흐른 상황이지만, 왠지 모르게 잘 칠 거 같은 근거없는 자신감도 있었다.
거의 20년 만에 TOEIC 시험을 치러 간 날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따뜻한 봄 날이었다. 여는 때처럼 일요일 아침이지만, 혼자 부산을 떨며 시험장으로 향했다. 그 사이 두 아이들과 남편은 수녀님 이신 큰 고모를 만나 같이 점심을 먹기로 했다. 나는 혼자 홀가분하게 시험장에 들어가 앉아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마음에 큰 평온이 생겼다. 그리고 듣기 시험을 치는데 모든 대사가 다 들렸다. 진짜 신기할 만큼 나는 시험을 잘 쳤다. 20년 전에 받은 성적까지 다 합해서 이제까지 받은 성적 중에 최고 성적을 받았다. 교육청 유학 휴직에 필요한 점수보다 훨씬 높게 나왔다. 천만 다행이었다.
❚ 뭐지 그 느낌은? 누군가가 나를 돕고 있는 듯한 그 묘한 느낌
나는 지금도 그날 나의 그 평온한 마음 상태가 신기하다. 어느 시험 보다 조바심을 낼 뻔 한 시험인데도 그 날 나는 엄청 초연함을 경험했다. 나중에 들은 사실인데, 내가 시험을 치고 있을 시간에 남편과 두 아이 그리고 큰고모님은 근처 성당에서 조용히 나를 위해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고 했다. 그 당시, 크리스찬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있던 나로서는 그 기도가 나를 도왔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날 내가 경험한 그 뭔가 모를 마음의 평화는 평생 잊지 못할 신기한 경험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많이 돕고 있는 듯 한 그 느낌을 나는 분명 느꼈다.
❚ 좋아하는 일에 미치다
그렇게 유학 준비의 또 다른 한 산을 넘었다. 난 기꺼이 다음 산을 바라 봤다. 그리고 여전히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