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로 미친 나날들 (1)
❚ 돈 받으면서 영어 공부 실컷 할 수 있는 직업?
대학 3학년 때 즘 진로를 모색할 즘에, 나는 영어 교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돈을 벌면서 영어 공부를 실컷 하고 싶었다. 그러면 영어 교사라는 직업이 나에게는 제격이라는 생각을 순진하게 했다. 영어 교사가 된지 거의 20년이 된 지금, 그 당시 나의 기대가 현실을 잘 모르는 순진한 생각 이였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여전히 영어 공부를 즐기고 있고, 영어를 가르치는 게 보람이 있다는 생각은 한다. 나는 평생 영어 쟁이 팔자를 타고 난 거 같다. 영어 교사가 되어서도 영어 연수라는 연수는 거의 죄다 신청하고 배움을 한껏 즐겼던 거 같다.
❚ ‘나에게도 꿈이 있었는데’
그런데, 30대 중반 즘 문득 내가 오랜 세월 열정을 다해 배운 영어를 어딘가에 쓰고 싶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거 말고 뭔가 다른 것을 실제로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두 아이의 엄마로 살면서 그 욕구를 남 몰래 억누르고 또 덜어내고 덜어 내고 했지만, 아예 없앨 수는 없었다. 2013년 겨울 방학 중 그 해도 여느 방학 때처럼 영어과 교사 연수에 열심이었다. 강사는 우크라이나와 캐나다에서 각각 이 연수를 운영하기 위해 잠시 방문한 분들이었다. 두 아이의 엄마로 십년을 흘려보낸 나로서는 그 두 사람이 너무 자유로워 보였고 부러웠다. ‘나에게도 꿈이 있었는데’ 하는 생각에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상상을 했다. 다른 나라에 가서 살면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나를 그려봤다. 억눌렸던 나의 욕구는 더 이상 누를 수 없을 만큼 턱 밑까지 차올랐다.
❚ 더 이상 꿈만 꾸지 않기
그 날 밤, 나는 남편한테 "우리, 떠날까?" 제안했다. 더 늦기 전에 한 번 도전해보자 했다. 남편은 그 자리에서 준비라도 했다는 듯이 대찬성을 했다. 두 아이에게 돈 보다는 많은 경험을 심어 주는 게 제일 값진 유산이라 생각했다. 우리 두 아이들을 위해 떠나기로 결심했다.
❚ 토플, 토익, GRE 다 나한테 덤벼!!
그 이후로 나는 본격적으로 유학 준비를 시작했다. 유학원에 의뢰하지 않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내 손으로 진행했다. 입학에 필수로 요구되는 성적표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유학생이 미국 대학원에 입학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TOEFL (Test of English as a Foreign Language) 점수가 필요하다. 또, 미국 대학원 입학 시 내국인, 외국인 모두에게 요구되는 GRE(Graduate Record Examination) 점수가 추가로 필요하다. 그리고 교육 공무원 신분으로 유학 휴직을 하기 위해서는 교육청에 최근 2년간 치른 공인 영어시험 (TOEFL이나 TOEIC)점수를 제출 해야 한다. 결국 GRE성적, TOEFL성적, 그리고 교육청 휴직을 위한 공인 영어시험(TOEFL 또는 TOEIC)성적이 필요하다.
❚ 제일 큰 놈 GRE부터 잡자!
그 세 가지 시험 중에 나는 처음 결심한 이후 6개월간 GRE 시험공부를 먼저 시작 했다. 일단 시중에 판매되는 문제집 하나를 온라인 서점에서 주문했다. GRE시험은 원래 미국 현지 학부생들이 대학원을 입학하기 위해 치르는 일종의 수학 능력 시험이다. 이 시험은 1) Analytical Writing 2) Verbal Reasoning 3) Quantitative Reasoning 으로 구성되어 있다. 결국 언어 영역과 수리 영역인 셈이다.
❚ Analytical Writing 논리적인 글 쓰기의 비결: 부부싸움 할 때 처럼 내 주장을 기를 쓰고 하기??
대학원에서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학문적인 글의 독해 능력 및 작문 능력이 필요하다. 언어 영역에서는 먼저 논리적인 글쓰기 능력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Analytical Writing이 시험의 첫 섹센이다. 그 당시 같이 근무하던 미국인 원어민 선생님은 나에게 부부싸움 할 때를 생각 하면서 기를 쓰고 자신이 옳음을 주장할 때 처럼, 자신의 주장을 나름의 논리로 펼쳐나가면 된다고 했다.
❚ Verbal Reasoning 긴 장문 독해의 비결: 선택적 집중?
쓰기 섹션이 끝나고 읽기 영역이 이어졌다. 원어민들에게도 다소 어려운 학구적인 어휘가 많이 포함되어 있는 장문 독해 및 어휘 능력 평가이다. GRE시험의 언어 영역은 외국인인 나에게는 넘을 수 없는 높은 산 이었다. TOEFL시험의 독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무지막지한 장문에 듣도보도 못한 단어들이 수두룩한 시험이었다. 나는 그게 영어인지 알길도 없을 만큼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결국 나는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할 수 없는 것은 과감히 포기하는 선택적 집중이라는 그럴싸한 전략을 취하기로 했다.
❚ Quantitative Reasoning 의 비결: 머리말고 손으로 하는 대한민국 수학 공부법
마지막으로 Quantitative Reasoning은 논문을 정확히 읽고 쓰기 위해 요구되는 데이터 결과 분석 및 해석 능력을 측정하는 섹션이다. 처음 GRE문제집을 받아들고 공부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과 전공도 아닌데 왜 수학 성적을 요구하는 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보니, 대학원 교육과정을 소화해내기 위해서는 기본적 수학적 지식과 수리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능력이었다. 나의 미국 박사과정에서도, 데이터 분석 및 데이터 처리 과목이 가장 큰 부담이었고, 나에게 위기의식을 가장 많이 심어준 과목이었다. 내 평생 그렇게 힘들게 수강한 과목은 없었던 거 같다. 그 당시 별로 필요성을 모르고 공부하던 수리 영역이지만, 막상 쓰기 및 읽기 영역에 비하면 GRE시험의 수리 영역(Quantitative Reasoning)은 그나마 할 만 한 편이었다. 고1 수준의 수학 능력만 있으면 제법 풀만한 시험이다. 비록 나는 고3때 수포자로서의 길을 걸었으나, 고2때 까지 열심히 한 수학 공부가 큰 밑천이 되었다. 수학을 손 놓은 지 거의 20년 만에 다시 수학책을 들고 교무실에 앉아 열공 했고, 같이 근무하던 동료 수학 선생님께 설명도 들으면서 차분히 수학 공부를 해나갔다. 대한민국 수학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손으로 하는 수학이라 했던가? 그 20년 세월이 자났음에도 불구하고 내 손은 수학 문제 푸는 법을 기억하고 있었다. 참 신기한 일이다.
❚ Just Do It !
GRE 시험 대비 문제집 한 권을 혼자 공부를 하고 온라인 무료 시험도 한 번 쳐봤다. 되든 안되든 GRE 시험을 실제로 쳐보기로 마음 먹었다. ETS사 홈페이지에서 GRE시험 신청을 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시험장은 1시간 가량 떨어진 대학교였다. 그곳을 선택하고 그 당시 20만원 정도의 비용을 결재하고 신청을 완료했다.
드디어 GRE 시험이 있는 일요일 아침, 나는 일찌감치 일어나 지하철을 거의 한 시간 가량 타고 시험장인 대학교 캠퍼스에 도착했다. 처음 가는 그 곳이라 길을 잠시 헤매다 혼자 썰렁한 시험장에 도착했다.
❚ Oh, My God! 세상에 이런 끝도 없는 시험은 생전 처음.
중간에 잠시 간식 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5시간을 계속 시험장에 갇혀 시험을 쳤다. 세상에 그런 몽롱해지는 시험은 생전처음 이었다. 수능을 하루 종일 쳤지만,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이었다. 시험은 중간 중간에 화장실도 다녀올 수 있고 간단한 간식 정도는 알아서 먹을 수 있었던 거 같다. 대학교 때 오픈 북 테스트 같은 느낌이지만 절대 필기구와 종이 한 장, 각자 준비해온 간단한 간식 거리 말고는 허락되는 건 없었다.
첫번 째 영역인 Analytical Writing 시간이었다. 그날 내 기억으로 나에게 주어진 글의 주제는 '공공 서비스(예, 인터넷 뱅킹 등)에 수수료를 메기는 것이 옳는 일인가'라는 주제였다. 나는 은행원이 예전에 하던 일을 인터넷 뱅킹 이용 고객이 대신해주는 것이므로 은행이 송금 수수료를 요구하기 보다 오히려, 고객이 할인을 받아야한다고 논리를 펼친 거 같다. 원어민 쌤의 조언대로 기를 쓰고 내 주장을 펼쳤다.
두번째 영역인 Verbal Reasoning 영역으로 접어들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영어라 하기에는 모르는 단어가 너무 너무 많은 그 장문의 지문을 읽어내고 내용 관련 문제를 풀어나가는 시험이었다. 풀다 풀다 잠시 지쳐 멍해지는 순간이 몇 번 있었다.
마지막 영역인 Quantitative Reasoning 수리 영역 이였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지나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기분이라고나 할 까? 수리 영역은 내 눈에 제법 익숙한 수식과 문제로 채워져 있었다. 다행히 수리 영역의 수학은 우리나라의 중3이나 고1 수준의 수학 정도 교육과정 범위 내에서 출제되는 거라 대부분 국내 대학교 졸업자라면 무난히 해치울 수 있는 문제가 상당히 있었다.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시험을 쳤다.
❚ 최선을 다한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GRE 시험 결과는?
GRE 성적은 해당 회 차에 친 전 세계 모든 수험생들 성적에서 내 성적의 상대적 위치로 내는 퍼센타일 성적이였다. 당연히 나의 언어영역 성적은 원어민인 수험생들과는 비할 수 없을 만큼 저조해서 하위 20 프로였던가? 아무튼 그렇게 낮았다. 하지만, 나의 수리 영역 성적은 평균 점수 대에 근접했었다. 언어 영역 성적이 상당히 낮게 나왔지만, 설사 한 번 더 친다 하더라도 나의 성적은 쉽게 오를 거 같지 않았기에 나는 한 번으로 얻은 점수로 지원했다. GRE는 두 번 다시 치고 싶지 않는 시험이다. 다행히, 왠만한 미국 대학교는 GRE 시험 성적을 제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 그것으로 당락을 결정하는 그런 도구는 아닌 듯 했다. 물론, 장학금을 받고 조교로 지원 하려는 사람이라면 그 이야기는 다르다. 미국 유학 시절 만났던 한국 아가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미국 석박사 통합과정에 올 때 조교 자리를 지원 했었다고 했다. 그 친구는 수리영역이 우수해서 지도 교수가 자신을 뽑았다고 했다고 했다. 나는 그냥 일반 학생으로 지원하는 것이라 나의 첫 번째 GRE시험성적은 내가 지원한 교육대학원 입학을 허가 받는 데 무리는 없었다.
❚ GRE시험은 대학원 지망생이면 한 번은 거쳐야할 통과의례
하여튼, GRE시험 성적은 높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미제출시 대학원 입학 자체가 불가하여 반드시 쳐야하는 시험이기는 하다. 이는 외국학생이든 미국 국내학생이든 예외는 없는 걸로 안다. 나중에 미국에서 알게 된 미국 백인 현지 공립초등학교 교사인 친구-지금은 내가 거주하던 도시에 교육청 장학사가 된 그 친구도 대학원 석사과정에 지원을 하고 싶지만, GRE시험이 많이 부담된다고 했다. 그 친구는 언어영역보다 수리 영역이 부담이 된다고 했다. 아무튼, GRE시험은 미국 대학원 지망생이면 거쳐야할 통과의례인 건 분명하다. 나는 얼떨결에 통과의례를 마무리했다.
❚ 좋아하는 일에 미치다
그렇게 유학 준비의 큰 한 산을 넘었다. 난 기꺼이 다음 산을 바라 봤다. 그리고 여전히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