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는 기꺼이 평생 영어를 끼고 산다.
❚ 고집스런 도전의 씨앗
아주 시골에서 자란 나는 조기영어교육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시골 중학교에 입학하고서야 겨우 알파벳을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별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뿐 아니라 모든 반 친구들이 나와 같은 출발선상에 있었기 때문에 즐겁게 영어를 배워갔다. 그런데, 중2가 되고 나서 나는 작은 시골 학교에서 머물다가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될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나는 홀로 대도시 유학을 고집했고, 차로 4시간 정도 떨어진 대도시로 전학 갔다.
❚ 패닉 상태의 영어 미아
전학을 간 새 학교는 이전 학교의 거의 세배 정도 학급 수가 많았다. 새로 옮긴 학교에서 대부분의 과목은 공부하기에 별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영어가 골칫덩어리였다. 나는 첫 영어 시간에 이미 내가 반 친구에 비해 심하게 뒤떨어져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어 담당이시던 담임 선생님은 반 친구 한 명을 내 영어 도우미로 지정해 주시기까지 하셨다. 우리 집은 아주 시골이었고, 엄마는 외벌이 아버지의 수입으로 다섯 아이를 키우셨다. 살림은 늘 빠듯해 보였다. 그런 어려운 가정 형편에 따로 과외를 받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학교 수업을 열심히 듣긴 하였으나, 그 황당한 영어 문법은 나에게 ‘make sense’되지 않았다. 큰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조각조각의 문법 지식은 나를 동서남북도 분간 안 되는, 패닉 상태의 영어 미아로 만들어 버렸다.
❚ 극복 불가 진단
영어 공부에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나는 어린 마음에 ‘뭐든 지 열심히 하기만 하면 되겠지’ 하고 열심히 공부에 몰두했다. 반 친구들이 유명 연예인들의 사진에 열광할 때도 난 그런 곳에 시간을 낭비할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나는 애늙은이같이 학교생활을 했다. 가난한 집 다섯 아이들 중에 둘째 딸인 나는 부모님보다는 덜 가난하게 살고 싶은 굳은 결심으로 그 세월을 견딘 거 같다. 그렇게 열심히 학교 영어 공부를 따라가려고 용을 썼다. 그런데, 고1 첫 영어 모의고사를 치고 나서는 나는 기함을 했다. 100점 만점에 28점이라는, 어떤 시험에서도 그런 성적은 평생 받아 본 적이 없는 그런 성적을 받았다. 인문계 고등학교 1학년인 그것도 시골에서 잘 해보겠다고 유학씩이나 온 나의 영어 성적은 나에게 엄청난 현실 직시를 시켜주고 말았다.
❚ 문제의 해결책은 내 안에
그날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음을 통보받고 나는 어떻게 할까 혼자 궁리를 했다. 당시 나의 주변에는 내가 조언을 구하거나 가이드를 요청할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초등학교만 나온 엄마, 늘 직장 핑계로 매일 밤, 술을 드시고 귀가하는 아빠, 나나 별다를 바가 없이 영어에 흥미가 없는 언니, 그게 내가 고작 의지할 만한 사람의 리스트였다. 그마저 나의 가족들은 멀리 시골에 살고 있었다. 나는 공부라곤 거리가 먼 사촌들과 같이 지냈었는데, 공부에 관한 한 혼자였다.
❚ 미련스러운 3년간 매일의 루틴
궁여지책 끝에 나는 다음 날 바로 학교 앞 서점에 가서 영어 독해 책을 둘러보고, 한 권을 구입했다. 그 후 나와의 약속을 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나는 매일 독해 문제 2개는 풀 것을 자신과 약속을 했다. 지금 기억하기로, 나는 그 약속을 고3 수능 칠 때까지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던 거 같다.그렇게 매일 열심을 떨고 좌절의 늪을 여러 번 만났지만,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내 상황이 나를 앞으로 이끌었다.
❚ 불행은 복수~s
그 당시 저조한 영어 성적에도 나름 위안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수학 성적이었다. 웬일이었던지, 나는 수학이 쉬었고 거의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받아왔다. 인생은 늘 그렇듯이, 나의 위안 과목은 더 이상 나에게 위안을 줄 수 없게 되었다. 고3이 이제 막 시작될 무렵, 날벼락 같은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고2 때까지 수학을 좋아하고 잘 한다고 믿었던 나에게 고3 어느 날 갑자기 도입된 대학 수학능력 시험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수학시험은 도통 풀길이 막막했다. 열심히 하면 조금씩 나아지던 영어와 달리, 수학은 타고난 머리가 없었던지, 아니면 암기식 수학을 하던 때문인지, 나는 수학에 거의 포기 상태였다.
❚영어가 나의 플랜 B가 될 줄이야?
어쩔 수 없이, 나는 인생의 플랜 B로 영어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다. 애초에 싫어했던 영어 과목이었지만, 난 호사스레 투정만 하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냥 앞만 보고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오늘 노력한 만큼 내일 더 나아질 테니 그냥 열심히 달려보자'는 게 내 계획이었다.비록 수포자(수학포기자)였으나, 나머지 과목은 최선을 다 한 덕분이던지, 그나마 나는 학비가 싼 국립 대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고, 열심히 해온 영어를 전공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영어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영어와 미친 열애 중
애초에 흥미가 있었던 외국어도 아니었지만, 내 인상의 항로는 누군가가 이끄는 듯이 나를 점점 영어과 깊은 관계를 맺게 만들었다. 별 기대 없이 영어영문학을 전공으로 선택했지만, 나는 입학하기 전부터 내가 한 선택에 최선을 다 하고 싶어서 영어 공부에 부산을 떨었다. 고등학교 내내 말문 트는 영어 공부는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영어 전공자가 영어를 한 마디도 못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과외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을 고스란히 영어 회화 학원에 가져다주며 대학 내내 영어 공부에 한창 몰입했다. 영어 공부 삼매경에 빠져가고 있었다. 영어로 꿈을 꾸는 일, 길 가다가 생각나는 것을 영어로 다시 말해보는 일,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안 되는 영어 발음 연습하는 일, 영어 책을 읽다가, 또는 영어 라디오를 듣다가 새로운 표현이나 기막힌 영어 표현이 있으면 꼭 노트에 적어서 모으는 일, 모르는 영어 단어는 당장에 사전을 찾아봐야 직성이 풀리는 일, EBS 모닝 스페셜이나 중급 영어 회화 강좌로 매일 아침을 시작하는 일, 버스를 기다리면서 영어 새 단어 노트를 들고 중얼거리는 일 등은 내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나는 영어에 미쳐가고 있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영어 공부법은 4 skill을 같이 향상시킬 수 있는 공부법입니다.
아래 영상에서 좀 더 설명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