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로 미친 나날들(3)
❚ 잠깐 입학서류에 문제 발생. 돌발 사태!!
TOEIC시험을 치던 날 내가 받은 그 신기한 느낌도 잠시, 나는 다른 세세한 서류들을 챙기고 제출하느라 정신없이 세월을 보냈다. 4월경에 모든 서류를 다 제출하고 내가 지원한 미국 대학교로부터 입학 허가서가 배달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내 인내심이 거의 바닥이 날 때 즘, 모든 서류를 제출 한 지 거의 두 달 만에 드디어 도착했다. 반가운 합격 통지 이메일과 입학허가서 (I-20)를 받았다. 미국 유학을 결심하고 입학허가서를 받는 데는 거의 6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린 거 같았다. 처음으로 받아 본 국제 메일에 난 마냥 신이 났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내가 입학하기 지원한 학기는 그 다음 년도 봄 학기였다. 그런데, 미국 대학 입학처에서는 내가 8월에 시작되는 가을 학기에 입학을 희망한다고 생각하고 가을학기 입학 허가서를 보내왔다. 나는 미국 대학교 입학처에 이메일을 썼다. 영어로 이메일을 쓸 일은 내 생전 있어본 적이 없었다. 이메일을 쓰면서도 나의 메시지가 그 담당자에게 정확히 가기나 할까? 그 많은 이메일 중에 나의 이메일이 씹힐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불안한 마음이 엄습해왔다. 그런데, 나는 달리 그 대학교에 연락할 길이 없었기에 크나큰 돌발 사태라 할지라도 고작 이메일 밖에는 내가 손 쓸 방법이 없었다.
❚ 이메일, 나의 유일한 S.O.S 수단
나는 일단 한 번 써서 보내보고 연락이 없으면 또 쓰리라 작정을 하고 일단 글을 작성했다. 먼저, 지난 번 GRE 논리적 글쓰기때처럼 부부싸움 한다 생각하고 나의 주장을 펼쳐 나가는데 몰두했다. 나의 실수가 아니라 입학처 직원의 실수임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리고 새로운 입학 허가서를 요청했다. 아울러, 그 쪽 실수이니 당연히 서류 항공 운임료도 미국 대학교에서 지불해야 한다고 써서 보냈다. 영어로 이메일을 쓰는 것도 처음 하는 일이였지만, 사실, 이렇게 클레임을 거는 영어 이메일도 난생 처음 쓰는 거였다. 하지만, 나는 정의감에 불타올라 열심히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 몇 주를 기다리고 기다렸다. 난 아직 학비를 낸 게 아닌 상태라서 일이 꼬여서 설사 못 가게 되더라도 금전적 손해를 본 게 아니라 그나마 차분하게 기다렸다.
❚ 인종차별은 아닐지라도 인간차별은 맞는 듯
마침내 내가 계획한대로 봄 학기 입학 허가서가 국제 우편으로 다시 배달되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뭐든지 느릿느릿 진행한다는 것을 듣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느릴 줄은 몰랐다. 그 당시 나의 입학 허가서를 담당한 직원은 제니퍼라는 흑인 여자였고, 나는 미국에 도착 후 얼마 안 되어서 신입생이 받아야할 미국 출입국 기록서(I-94)를 받으러 다시 그 직원을 찾아갔다. 역시나 첫 인연이 좋지 않아서 그런지 나에게 상당히 퉁명스러웠다. 더 웃기는 건, 그리고 1년 후 즘 내가 그 대학교 ESL영어 강사로 일하게 되면서 ESL담당 부장이 그 제니퍼라는 직원에게 나를 소개시켜준 적이 있다. 웃기게도 그 제니퍼라는 직원은 이제 같은 부서 소속 직원이 된 나에게 180도 완전히 다른 얼굴 표정으로 나를 맞았다.
이 일은 미국인의 인간성에 적응이 안 되었던 수많은 일화 중 하나에 불과하다. 관련 없는 사람일 때는 한없이 퉁명스럽고 불친절하다가 관련이 있는 순간부터 사람이 완전히 친절 모드로 바뀌는 그런 전략적인 인간관계라고나 할까? 내가 업무로 만난 미국 사람들은 물론 몇몇 예외는 있었지만, 대부분 그랬다.
❚ 공든 탑이 무너질세라....
나의 유학 준비 마지막 단계는 미국 대사관에 가서 비자 승인을 받는 거였다. 당시 지나치게 많은 한국 사람들이 해외로 나가는 추세라 비자 승인이 다소 까다롭게 될 거라는 생각했다. 그래서 대사관에 비자 승인을 신청하기 직전에 유학원에 잠시 조언을 얻었다. 여러 가지 예상 질문을 알려줬고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미리 생각해 두었다. 비자 인터뷰를 하러 남편과 기차를 타고 서울을 향했고 가는 길 내내 마음을 졸였다. 지금껏 쌓아온 나의 수고와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바로 앞에 인터뷰하던 30대의 한 남자는 거의 10분가량 대사관 직원과 실랑이를 벌였다. 그리고 결국 비자 승인 거절을 받고 실망을 하고 지나가는 걸 봤다. 드디어 나의 차례가 왔다. 내가 준비해간 서류들을 내밀었다. 나는 최대한 당당한 표정을 짓고 얼굴에 미소를 띄울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나의 인터뷰는 불과 1분 정도 만에 끝이 났다.
현장에서 바로 잘 갔다 오라는 말과 함께 나에게 비자 승인 도장을 찍어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영어교사인 내가 영어를 더 공부하러 가는 나의 목적이 정당성이 있었던 거 같다. 그리고, 내가 공무원 신분이라 휴직을 내고 다녀오는 것이기 때문에 다시 돌아올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쉽게 승인을 받은 것 같다. 참 다행이었다. 남편과 두 아이를 모두 데리고 미국 유학을 떠나려는 결심을 한 지 거의 2년 만에 모든 준비가 끝이 났다.
❚ 좋아하는 일에 미치다
그렇게 유학 준비의 마지막 산을 넘었다. 하지만 그건 서류 준비의 마지막 산일 뿐, 살던 집을 정리하고 이사준비 라는 물리적인 준비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그 많은 일들을 앞두고 있었지만 그래도 난 매일이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