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화요일] 자기 연민에 대하여
오늘은 두 번째 화요일, 자기 연민에 대한 이야기 부분을 읽었다. p.119-127
1. 영어 원서로 읽은 영상 : 영어 자막 사용
2. 우리말로 읽은 영상 : 우리말 자막 사용
“... my visits with Morrie felt like a cleansing rinse of human kindness.” p. 119
모리 선생님을 만나면 인간의 애정이라는 정화제를 뒤집어쓴 느낌이었다.
“I give myself a good cry if I need it. But then I concentrate on all the good things still in my life. On the people who are coming to see me. On the stories, I’m going to hear,......” p.123
난 필요하면 언제라도 속이 시원할 정도로 울어버리네. 그렇게 울고 나면 내 삶에서 아직 좋은 면만을 보려고 애쓰지. 나를 찾아와주는 사람들, 누군가 내게 해줄 이야기들....
“How useful it would be to put a daily limit on self-pity. Just a few tearful minutes, then on with the day.” p.123
매일 일정한 시간을 자기연민에 빠질 수 있다면 얼마나 유익할까. 몇 분이라도 실컷 눈물을 쏟고 하루를 멋지게 보낸다면.
He smiled. “Not everyone is so lucky.” p.123
선생님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누구나 그렇게 운이 좋은 것은 아니거든."
I felt the seeds of death inside his shriveling frame. p. 127
시들어 가는 몸뚱이 안에서 죽음의 씨을 느낄 수 있었다.
I had the coldest realization that our time was running out. And I had to do something. p.127
나는 선생님과 함께할 시간이 끝나가고 있다는 냉혹한 현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뭔가를 해야만 했다.
❚하루치 슬픔만 슬퍼하기
모리 교수님은 매일 아침 자신이 잃어버린 것에 대해 서러워하며 애통해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도 하루치 슬픔을 다 쏟고 나서는 다시 말짱한 마음을 가지려 한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행운아임을 되새긴다. 자신의 인생에서 선한 것에 대해 몰두한다. 자신을 보러와 줄 좋은 사람들, 듣게 될 이야기들에 마음을 둔다.
❚목이 아플 만큼 차오른 서러움 덜기
해질 무렵 캄캄한 방, 불 끈 자취방에서 혼자 물밀 듯이 밀려오는 슬픔을 울음 한 가득으로 쏟아낸 날들을 지금도 기억한다. 엄마한테 혼난 것도 아니고 친구랑 다툰 것도 아니고 언니나 동생 때문에 속상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하루해가 질 무렵 와락 밀려드는 삶의 서글픔을 눈물 말고는 표현할 방법을 그땐 몰랐다. 내가 왜 그렇게 운이 나쁜지, 왜 이런 삶을 살도록 내버려졌는지, 왜 태어나기까지 한 건지. 세상 억울한 마음과 속상한 마음이 목이 아플 만큼 차올랐다.
그렇게 20분을 주주룩 울고 나면 희한한 힘이 생기는 걸 느꼈다. 속이 후련했다. 그리고 다시 눈물을 훔치고 방을 나와 또 해야 할 일들을 해나갔다. 그러나 또 며칠을 열심히 달리고 나면 그 후련함은 사라지고 텅 빈 마음이 되어버리곤 했다. 그 텅 빈 마음엔 또 스스륵 서글픔과 슬픔이 자리를 잡곤 했다. 그러면 또 울음으로 서글픔을 덜어내고 다시 후련함 가득채운 마음으로 달리곤 했다. 마치 내 차에 주유를 하듯이.
❚약효가 사라진 눈물
그땐 난 하루치 또는 일주일치 마음에 쌓인 자기연민을 덜어내는 방법이 눈물 뿐 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마저 아이 엄마가 되고 나서는 통하지 않았다. 물론 가끔은 눈물 처방전을 나 스스로에게 낸다. 그러나 그게 나에게 잠시 진통제일 뿐이었고, 그마저 약효가 서서히 줄어들어 갔다.
엄마를 잃고 나선 그 슬픔을 비워내는 방법이 이제 눈물만으로는 되질 않았다. 눈물 진통제도 이젠 나의 아린 마음을 가시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에겐 다른 처방이 필요했다.
❚마음 충전 루틴
처음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봤다. 남들처럼 혼자 있는 시간에 기도를 해봤다. 그런데, 나에겐 별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눈물도 안 되는 내 마음에 달리 방법이 없어 유학시절부터 매일 아이들 등굣길 차에서 아이들과 기도를 시작했다. 그리고 마음에 평화를 달라고 부탁했다. 그 시절에 시작한 나의 아침 기도 루틴을 다행히 지금도 하고 있다.
내게 주어진, 당연하게 여겼던, 평온한 일상을 큰 축복으로 생각하려한다. 그리고, 내 마음에 감사함이라는 것을 들이기로 했다. 며칠이 지나 그 마음이 텅 비면 이제 눈물이 주던 후련함 대신, 감사함으로 충전하려 한다. 마치 내 차에 주유를 하듯이.
사글어져가는 몸 안에 죽음이 서서히 들어와 차버리는 모리 교수가, 그리고 같은 병으로 돌아가신 존 가이거 교장선생님(우리 아이들이 다니던 교회 소속 학교)이 겪었을 그 두려움과 자기 연민은 나의 상상의 범위 밖에 있다. 하지만 난 봤다. 그 와중에도 자기연민을 떨치고 감사함으로 온 마음 가득 채우는 그분의 모습을. 나는 운이 참 좋은 사람이다.
❚별 게 다 감사하다.
내 곁에는 감사할 게 많다.
“이제 다 들려. 사람들이 무슨 말 하는 지 다 들려”하며 이제 막 귀국한 지인이 기뻐했다. 난 그 말을 진심으로 이해한다. 다른 사람과 같은 언어를 쓴다는 것에 감사하다.
늦은 저녁 슬리퍼를 신고 간식거리를 사서 오는 길에도 나는 감사하다. 늦은 저녁이라도 안전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중학생 아들이 “엄마, 친구하고 농구하고 올게” 하며 집을 나설 때도 감사하다. 아들을 차로 데려다 주지 않아도 아들이 아무 때나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