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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 Soon Jun 05. 2023

# 23. 마이너러티 리포트

: 소수인종, 소수집단은 조용하세요.

❚마이너러티 1- 어디로 보나 마이너러티

미국에서 아이들이 다니던 교회 소속 사립학교에 우리 아이들이 유일한 외국인은 아니었다. 유럽에서 유학온 아이들도 있었다. 내 기억에 폴란드쪽에서 온 남자 고등학생들이 교장 선생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그 학교를 다닌다고 들었던 것 같다. 그들은 생김새가 현지 미국 백인 학생들과 전혀 다르지 않아, 비록 문서상 그 학생들은 외국인이지만 현지 학생들과 전혀 달라 보이지 않았다.     


미국 백인 아이들이 99%인 학교에서 우리 아이들은 소수인종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문서상은 물론이거니와 한눈에도 딱 표시가 났다. 외국 학생인 것, 이방인인 것 그리고 소수인종인 것이. 당시 초등학생 4학년인 아들은 자신이 유일한 외국인에다가 유일한 영어 학습자라는 사실에 상당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 공립학교에서는 이민자의 아이들을 위한 ESL수업이라도 운영해주었지만 미국 사립학교에는 그런 수업조차 없었다. 아무런 서포트 없이 우리 아이들은 현지 아이들과 똑같은 수업, 똑같은 과제, 똑같은 시험을 쳐야만 했다. 별도의 학습 도움 없이 유창한 현지 아이들 틈에 끼어 남들처럼 유창하게 발표해야 했었다.   

   

현지 적응 2년째에 사립 학교로 옮겨간 상황이라 다행히 아들은 발표 과제가 많은 수업에서도 잘 적응해 주었다. 그리고 아이들과 잘 뛰어놀고 어울렸다. 아들이 미국 학교를 다니는 기간에 한국 여학생이 새로이 전학을 온 적이 있었다. 부모 없이 친척집에서 머물며 미국 학교를 다니려고 멀리 유학을 온 초등 5학년의 여학생이었다. 아들과 같은 학년인 그 여학생은 우리 아들을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아이로 생각했다할 만큼 아들은 겉보기에는 현지 아이들과 잘 어울리고 영어도 곧잘 했다.      


❚마이너러티 1- 마냥 부러운 친구들

하지만 마음 속에는 남모를 부담감을 늘 가지고 있었다. 기도문을 영어로 외우고 영어로 쓰고 영어로 책 독후감을 써야 했다. 그리고 역사 프로젝트도 현지 아이들 틈에서 영어로 발표했다.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문 정도는 5학년이면 줄줄 암기해야 했다. 첫째인 딸은 그 연설문 암송 과제를 하며 몇 번을 울었는지 모른다. 뜻도 잘 이해 안 되는 그 긴 연설문을 현지 아이들처럼 외워야 하니 그 고충이 얼마나 컸을까? 누나가 울며 외우는 그 몇 일 동안 둘째 아들은 귀동냥을 하며 그걸 외워버렸다. 내가 그걸 왜 외우냐 물었더니. 나중에 자기도 외워야 하니 미리 외워두는 거라 했다.      


아들은 자기 딴에는 현지 아이들 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늘 마음 한 켠에는 혼자 외국인인 상황이 마음에 걸린 모양이다. 한번 씩 지나가는 말로 자기 반 친구들은 잘사는 미국 백인 집의 아이들이라면서 부러움을 드러냈다. 반 친구 생일 파티에 초대되어 가면 친구들의 집이 참 크고 멋지다고 부러워했다.      


외국 유학생인 우리 집은 그에 비하면 참 보잘것없이 초라한 집이었다. 유학 시절 첫 한 두 해 동안 남편은 정식 고용이 되지 못하고 이일 저일을 했었다. 나는 내 공부하랴 아이들 뒷바라지하랴 대학교 한국어 가르치랴 늘 바빠 집에 여유롭게 머무는 다른 아이들의 엄마와는 달랐다. 아들은 늘 밤마다 “왜 엄마는 다른 집 엄마처럼 집에 있으면 안 돼?”하며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자신의 처지가 다른 친구들과는 많이 다름을 늘 마음에 담고 있었다.      


❚마이너러티 1- 경제 개념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아들

우리는 피부색뿐 아니라 경제적인 상황에서도 소수인종(마이너러티)이었다. 그마저 같은 한국인이라 하더라도 대부분 현지 한국인들은 기술자들로 한국 회사에 고용된 상황이라 삶이 안정적이었다. 우리처럼 유학을 온 집은 없었다. 아마도 우리가 살던 동네에 유학온 집은 우리가 유일한 것 같았다. 우리 아들은 그런 극소수 가정의 아이였다. 그런 상황을 아들은 본능적으로 잘 알아챘다. 아들의 경제 개념은 그 당시에 조금씩 싹트기 시작한 것 같다. 마트에 가도 뭘 사달라고 떼를 쓰거나 요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귀국을 한 요즘도 농구화나 읽고 싶은 영어책을 가끔 사달라고 한 것 외에는 일절 뭘 사달라고 하는 법이 없다.      


그렇게 아들은 일찍 경제적으로 철이 들었다. 남과 다른 집안 상황에 대해 불평, 불만을 한 적이 없었다. 어렵지만 열심히 생활하는 나와 남편에게 경제적인 부분에 관해 마음 불편한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한편으로 마음이 짠할 수도 있지만 난 오히려 감사하다. 돈 무서운 줄 몰랐던 나와는 달리 아들은 일찍 경제 개념이 생겼다. 지금도 용돈을 받으면 절대 허투루 쓰지 않는다. 그저 지갑에 모을 줄만 안다.      


마이너러티로 산 미국 생활이 우리 아들에게는 영어 공부를 넘어서 삶의 공부를 제대로 시켜주었다. 주류가 아닌 비주류로서의 삶은 아들에게 패배의식을 심어주기보다는 자신이 모자라는 부분을 메우기 위해 더욱 열심히 학업에 몰두하게 했다. 그리고 경제적 여유가 없는 상황은 근검 절약하며 살아가는 마음을 심어주었다. 감사한 일이다.      


❚마이너러티 2 – 같은 민족이지만 여전히 마이너러티(소수집단)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아들은 소수인종이라는 타이틀은 벗었다. 하지만 여전히 소수집단에 속하게 되었다. 다른 아이들보다는 한국말이 좀 서툰 아이다. 귀국 첫 한 두 해 아들은 또래 아이들과 우리말로 이야기 나누는 것에 자신 없어 했다. 말수가 거의 없고 소극적이고 조용히 학교 생활을 했다. 우리 말이 익숙하지 않으니 또래 집단에서 리더가 되거나 학급을 통솔하는 그런 모습을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아들의 언어적 비대칭은 미국에서 ESL학습자 이었을 때처럼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귀국 후 아들은 영어를 배우듯 많은 우리말 어휘를 배워야 하는 우리말 학습자가 되었다. 하지만 미국 사립학교에서 보통의 아이들과 똑같은 시험과 숙제를 영어로 해내는 게 당연시 되었듯이 우리나라에서도 보통 아이들과 똑같은 시험과 숙제를 우리말로 해내는 게 당연시 되었다. 아들이 우리말이 서툴다고 더 쉬운 과제를 준 선생님은 없었다. 아들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핸디캡을 만회하기 위해 노력을 더 많이 기울여야 했다.      


❚마이너러티 2 – 소수라는 이유로 강요된 이중 잣대

귀국 후 일 년간 아들은 자기보다 훨씬 어린아이들만 다니는 책 읽기 학원에 매일 다녔다. 아들은 또래 아이가 없는 그 학원을 전혀 개의치 하지 않고 성실히 다녀주었다. 아직도 우리말 어휘가 많이 부족하지만 3년째 그 책읽기 학원을 다니며 익히고 있다. 다른 아이와 다른 자신의 상황이지만 아들은 있는 그대로 잘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그런 아들이라도 소수집단에 속한 자신의 입장이 대변되지 않는 상황에선 불편한 내색을 드러내곤 한다. 자신의 뒤쳐진 우리말 능력에도 불구하고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과제, 평가를 해내야 한다. 부족한 우리말 실력을 감안해 다른 아이들보다 쉬운 과제를 받은 적도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낮은 평가 기준을 부여 받은 적도 없다.      


반면, 아들은 5년의 미국 생활과 영어 독서를 즐긴 덕분에 또래 아이들보다 영어는 좀 더 잘 한다. 하지만 그런 능력을 인정받기는 커녕 교내 영어 글짓기 대회에서 아들은 해외 거주 경험이 2년 이상이라는 이유로 수상에서 제외되었다. 아들은 소수집단이라는 이유로 그 대회에 참가할 이유를 받지 못한 셈이다. 그 대회에서 잘하면 상을 받는 메리트를 다른 아이들은 부여 받았지만 아들은 박탈당한 것이다.      


물론 출발선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기준으로 채점을 한다는 것은 불공평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들에게 대회에 참가할 이유조차 주지 않고 그 아이를 제외시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같은 논리로 하자면 해외 거주 경험이 많은 아이들에게 국어 글짓기 대회에서는 좀 더 쉬운 과제를 주거나 많이 미흡해도 점수를 좀 더 주는 일이 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국어 글짓기 대회에서 아들에게는 해외 거주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더 쉬운 과제를 주거나 낮은 기준으로 채점한다거나 한 일은 없었다.      

하지만 영어 글짓기 대회에서는 같은 이유로 아예 참여 자체를 가로막은 셈이 되버렸다. 적어도 해외 거주 경험이 있는 아이들에게는 더 어려운 과제를 주거나 더 높은 기준을 부여해서 똑같이 기회를 주어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해외 거주 경험이 있다는 것이 아들에게는 이래 저래 불이익의 이유가 되었다.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공리주의가 정의롭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다수의 이익이 된다고 하면 소수의 이익은 무시되어도 좋다는 식의 논리는 위험한 발상이다. 그 소수도 자신의 삶은 소중하다. 그 사람도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충분히 있다. 미국이었으면 소수인종 차별이나 소수집단 차별로 문제가 되고도 남는 상황이다. 하지만 소수집단의 목소리는 이곳 한국에서는 내기가 힘이 든다. 목소리를 낸다고 한들 소용이 있기나 할까?      


영어 책읽기를 즐기는 아들은 영어 글짓기 대회에 나름의 자신감이 있었던 모양이다. 영어 문장 하나 써내려가기 힘들어하는 몇 명의 친구를 보며 내심 수상까지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반 아이 중 하나가 아들에게 대회 안내문을 가져오면서 “너는 아무리 잘 써도 수상 제외 대상자이니 잘 써도 소용없다.”라고 했단다. 웬만해서 아들은 나에게 학교 일에 관해 재잘재잘 말하는 법이 없는 사춘기 중3 아들이지만 이번 만큼은 마음이 불편했던지 나에게 물어온다. “엄마, 내가 영어 글짓기 대회에서 잘 써도 상 못 받는대. 해외 거주 경험이 2년 이상이면 상을 안 준대. 그래도 되는 거야?”      


아들의 영어는 5년의 미국 생활 덕분에 또래 아이들보다 앞서있다. 어찌 보면 참 부러움의 대상일 수 있다. 영어가 중요한 시대에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참 부러운 일이다. 하지만 남과 달리 아들은 우리말을 더 열심히 배워가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그런 상황에 대한 우대나 혜택을 받은 적이 없지만 영어를 잘한다는 이유로 불이익은 감수해야하는 그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사춘기 아들은 받아들이도록 강요당하고 있다.     


이 일이 이외에도 소수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무시당한 적이 또 있었다. 아들은 또래 아이보다 농구에 아주 진심이고 열정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보통의 아이들은 농구보다는 축구나 핸드폰 게임을 더 좋아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 농구 동아리를 조성하거나 농구 대회를 출전하는 데 학교가 적극적으로 지원을 하거나 나서는 법이 없다. 극히 소수에 불과한 농구쟁이들을 위해 아들이 다니는 학교는 교육감배 대회 참가조차 귀찮아하며 출전시키지 않았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Noblesse Oblige)인가?     

노블레스 오블리주(프랑스어: noblesse oblige, 영어: nobility obliges)란 프랑스어로 "귀족은 의무를 갖는다"를 의미한다. 보통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회지도층에게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국민의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단어이다.      


One must act in a fashion that conforms to one's position and privileges with which one has been born, bestowed and/or has earned.

(타고났든 부여받았든 또는 스스로 얻게 되었든 그런 직책이나 특권을 가진 사람을 그에 버금가는 방식으로 처신해야 한다.) 가진 자가 좀 더 솔선 수범해서 사회를 위해 힘쓰고 희생해야 한다는 의미다.      

- 위키피디아-          


연거푸 두 번이나 아들은 학교에서 소외되었다. 그 두 번은 아들이 유일하게 자신 있어하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 영어와 농구. 공교롭게도 그 두 가지 모두 대회에 출전 기회가 박탈 당했다. 이유는 같다. 소수집단이라서다. 이런 현실을 사춘기 아들에게 있는 그대로 말한다는 건 참 불편한 일이다. 그 아이가 받아들일 지도 미지수이지만 받아들이지 못해서 생길 반항심은 더욱 걱정이 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우연히 남들과 다른 경험을 한 아들이다. 그 경험으로 아들은 남과 다른 곳에 특기가 생겼다. 그 특기는 없는 것 보다 있는 것이 훨씬 좋은 일인 것은 맞다. 영어 학원을 따로 매일 같이 다니지 않아도 되니 좋은 일이다. 핸드폰 게임 보다 농구를 더 즐길 수 있게 되었으니 좋은 일이다. 하지만 반대로 남들과 같지 않기 때문에 감수해야 할 게 많다.      


“엄마, 내가 영어 글짓기 대회에서 잘 써도 상 못 받는대. 해외 거주 경험이 2년 이상이면 상을 안 준대. 그래도 되는 거야?”

이 질문에 대해 잠시 생각하다 난 아들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라는 말을 설명해주었다. 그 대답이 참 석연찮긴 하지만 그렇게 말고는 달리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할 방법이 없었다. “너의 능력이 어디로 사라지는 게 아니니 이번 영어 글짓기 대회에 상을 못 받아도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 옆에 친구들에게 영어 공부하기가 얼마나 힘들겠어. 너는 그렇게 힘든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니 그걸로 감사하다 생각하고 말아.”


내가 만일 아들이라면 “엄마, 나는 국어 학원 매일 다니면서 국어 공부하고 있잖아. 그런데 난 우리말 글짓기 대회에 더 쉬운 문제 받은 적이 없는데...”라 했을 것 같다. 하지만 아들은 그런 생각까지는 하지 못 한 건지 하고도 말하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더 이상 그 영어 글짓기 대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남다름 위에 너다움을 보태면 된다.

중3 아들은 파파고를 돌리며 낑낑거리는 반 친구들 이야기를 해주며 그날의 일을 웃어 넘겼다. 우리말을 익혀야 하는 아들, 남들이 시큰둥하는 농구를 텅 빈 운동장에서 혼자 하루 종일 슛 연습을 할 지언정 아들은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불평을 심각하게 토로하지 않는다. 다만 이를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은 학교에 몇 번이고 문제 제기를 하고 싶다. 하지만 이곳은 미국이 아니다. 이곳은 전체를 위해서라면 소수의 목소리 정도는 무시되는 대한민국이다. 이곳에 우리는 다시 와있다. ‘남다름에 대한 불편함을 감수하고 너다움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너가 되기를 바란다.’ 아들에게 차마 하진 못한 이 말을 혼자 되내이며 그 씁쓸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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