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eep your eyes half shut
❚쉼 없이 달려온 여름, 그 부작용
부지런히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춘기 아들과 괜한 감정 대립에 휘말릴세라 최대한 내 일에 몰두하고 내 일에 시간과 관심을 쏟으려는 회피의 수단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현실적인 이유로 조금이라도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으려는 마흔 끝자락의 결단일지도 모른다. 나의 배움이 조금이라도 남에게 도움이 될 수 있고 그게 나에게도 큰 유익까지는 아니라도 조금의 유익이 된다면 난 무조건 해보겠다는 새해 결심을 유지하려는 의식적 노력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번 여름 방학도 참 열심히 달렸다. 여름 방학 절반을 학교 보충 수업을 하며 보냈다. 그것도 점심 시간을 빼고 오전 오후 각각 3시간 풀로 수업을 진행했다. 나에게 배우려는 아이들의 그 똘망한 눈빛에 저절로 에너지를 받아 신나게 수업을 했다. 그리고 이어진 스터디 모임, 그리고 우리집 이사 준비... 이렇게 잠시의 쉼도 없이 짧은 여름 방학을 열정적으로 보냈다.
나태함을 물리치고 극기를 한 뿌듯함으로 새로운 2학기를 맞이했다. 2학기 시작 후 두번 째 토요일이 이삿날이었다. 입주 청소 역시 남편과 내가 직접 하기로 했다. 미국에서 살고 있다면 이사라는 건 엄청 큰일이다. 물론 입주 청소는 집 주인이 해주는 부분이라 세입자가 신경쓸 일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처럼 포장 이사 같은 멋진 서비스는 없다. 주인이 직접 모든 살림 살이를 상자에 넣고 트럭을 렌트해야하고 인부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 큰 짐들은 인부들이 집안으로 들여다 주긴 하지만 상자를 다시 열어 물건을 정리까지는 해주지 않는다. 그런 곳에서 전투적으로 살았던 우리 부부에게는 입주 청소 정도는 우리가 직접 하는 것도 크게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도 대단하게 집을 뒤집어 먼지를 탈탈 털어가며 하는 대청소는 아니었기에 한나절 손품을 팔았다. 그런 것에 비해 우리나라에서의 포장 이사는 정말이지 마법같다. 모든 물건들이 순식간에 공간을 이동해서 다시 각자 자리에 말끔히 들어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청소를 하기로 했지만 결국 남편은 몸살이 났다. 나는 몸살까지는 아니었지만 이사를 다 끝낸 첫 토요일에는 그냥 늦잠을 원없이 자고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그동안 누적된 피로가 몰려왔다. 하지만 나의 이삿날 때문에 한 주 뒤로 미뤄서 잡은 그날 스터디를 또 취소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상태로 거의 남은 에너지를 긁어 모아 스터디를 하러 가기로 했다.
전날 참가 의사를 밝힌 멤버는 고작 4명 뿐이었다. 역대 최소의 인원이었다. 당일 아침 그 중 한 분이 불참을 알려와 결국 스터디는 남편과 나를 포함해서 총 5명이 모여 진행했다. 몸이 지치면 마음도 지치는 건 당연한 이치이다. 그날 아침 나갈 준비를 하며 ‘이번 분기만 스터디를 하고 이젠 그만 할 때가 된 건가?’ ‘이 스터디가 사람들의 니즈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건가?’ ‘내가 스터디 방향을 잘못 잡고 있는 건가?’ ‘나 혼자 뻘짓을 하고 있는 건가?’ ‘기존의 멤버는 모두 사라지고 현재 남은 멤버는 최근 2~3개월 전부터 오시기 시작한 분들인데, 그렇다면 스터디는 늘 새로운 멤버를 구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뜻인가?’ 내 마음에 스터디를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전제하에 그를 위한 이유를 계속 대고 있었다. 그렇게 모임 장소로 갔다.
❚어른 학습자들의 니즈
모임 장소에는 남편 말고는 미리 오신 분은 아무도 없었다. 나의 분주한 생각들을 잠시 접고 일단 그날 준비한 스터디를 정성스레 해보리라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다행히 오시기로 한 3분은 시간에 맞게 오셨다. 시작하면서 썰렁한 그 분위기를 없앨 겸 새로운 분기를 위한 스터디의 방향에 대해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소수의 학습자들이지만 그들의 니즈는 과연 다양했다. 영어로 프리토킹을 희망하는 분, 그게 부담이 된다는 분, 영어 원서를 계속 읽을면 좋겠다는 분, 영어 원서 읽기는 부담이 된다는 분, 영어 말하기를 더 훈련하고 싶다는 분.....역시나 나의 예상대로 멤버들의 니즈는 참 다양했다. 솔직히 90분이라는 시간 안에 그 많은 니즈를 다 충족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물론 영어 원서의 선택에 있어서는 다소 간극이 있긴 하지만 다행히 영어 원서 읽기는 공통적으로 계속하고 싶어했다. 영어 말하기 훈련은 다소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부분이니 그건 홀수 토요일에 남편이 운영해 보기로 했다. 짝수 토요일은 현재처럼 영어 원서를 중심으로 스터디를 운영하기로 했다. 추가로 영어 문장 파악이 힘든 부분을 위해 10월부터 시작되는 4분기에는 영어 문장 구조를 한눈에 알기 쉽도록 강의를 넣기로 했다. 올 봄에 출간한 나의 영어 문법서<워크북, 한국식 영문법 말고 원어민식 그림 영문법>을 교재로 해서 10강에 걸쳐 무료 강의를 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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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스터디 모임에 이미 내 문법책을 1회독 한 바 있었다. 그분들의 피드백이 아주 긍정적이었다. 멤버가 거의 다 바뀐 현재 다시 그 문법 강의를 하면 좋을 것 같았다. 영어 원서를 계속 읽어나가며 영어 문장을 파악하는 힘을 동시에 기르는 게 영어 학습자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작년과 올해 걸쳐 출간한 나의 <한국식 영문법 말고 원어민식 그림 문법>의 핵심 내용을 쉽게 풀어 직접 설명을 해드려 영어 문장에 대한 이해를 선 그림으로 쉽게 직관적으로 파악하도록 해드리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다. 기회가 되면 그 강의를 녹화해서 많은 사람에게 공유해드리는 것도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새로운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내 문법 강연을 한다는 생각을 하니 기대감도 생겼다. 이걸 계기로 다시 에너지를 되찾아보려 한다.
❚초심
모임 지기인 나에게 이 일은 일상의 많은 걸 해가며 나의 부캐로 하는 일이다. 참가자들에게 이 모임에서의 배움 역시 당장 자신의 본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기에 누구든 모임을 계속 열심일 수는 없는 형편이다. 그럼에도 스터디 모임을 계속 해나가기를 희망한다면 이런 상황을 쿨하게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쉽지는 않지만 애초에 모임을 꾸려보기로 한 나의 초심을 계속 붙잡고 가는 게 문제의 답이란 생각을 한다. 내가 애초에 스터디를 해보기로 한 이유가 뭐였더라?
❚나의 초심 질리지 않는 일 그리고 나의 이유
내가 어른 학습자들을 위해 영어 스터디를 운영하기로 한 이유는 우리 엄마의 무료한 일상을 본 딸의 안타까움이었다. 결국 무료한 일상에서 삶의 동력과 이유마저 잃은 엄마를 보며 중년층을 위한 배움과 모임의 장을 열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애초에 그런 이유에서 스터디를 하려했던 거다. 내가 평생해도 질리지 않는 영어 공부, 그걸 남들과 평생 같이 하며 삶을 나누고 서로 좋은 인연을 맺으며 지내는 일상. 그게 내가 그리는 그림이었다. 그런 나의 초심은 기회 비용을 따지는 습성으로 조금씩 흐려진 건 사실이다.
유명한 한 유튜버는 이런 말을 한다.
“내가 좋아하서 하는 일, 그게 남에게 도움이 되기까지 하는 일, 결국 나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 지금 당장은 큰 유익이 없지만 서서히 나에게 유익이 될 일, 그 일이 계속해서 나의 시간과 돈이 엄청 들어가야 하는 일이 아니라면 그 일은 계속 이어나가 볼 가치가 있다.”
어느 유명한 카페 창업자가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었다.
“나만의 스토리를 넣어 고객이 원하는 니즈를 정확히 찝어내면 그곳이 바로 블루오션이 될 수 있어요.”
어쩌면 나의 초심은 경제적 기회 비용의 측면을 구지 따져본다고 해도 손해볼 일이 없고 나에게 유익이 되는 일일 수도 있겠다. 새로이 다시 기운을 내어 작은 변화에 활력을 얻어 또 앞으로 걸어 나가 보리라 마음을 다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