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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 Soon Oct 25. 2024

#55. 영어 스터디 서른 여섯 번째 모임 후기

: It’s surreal. (비현실적인 느낌)

❚꿈에 그리던 두 분

요즘 들어 부쩍 생각이 나던 두 분이셨다. 2년 전 한국을 방문하고 이번이 두 번째이시다. 미국 유학 시절 우리 부부와 아이들에게 애정 가득한 손길로 감싸주시던 두 분이셨다. 그 분이 또 이렇게 우리에게 오신단다. 어쩌면 내 마음을 읽으신 걸까? 고1 아들의 사춘기를 힘겹게 바라보고 있는 요즘, 더군다나 농구에 진심 그 아들이 허리 부상으로 몇 달째 농구를 못 해 그 쌓인 에너지를 풀 길 없어 짜증이 심해졌다.      

그런 와중에 내 마음의 평정심은 서서히 사라지고 마음 둘 데 없었다. 그런데 9월 18일 레인 할머니로부터 장문의 카톡 문자가 왔다. 두 분이 9월 말부터 10월 중순까지 한국과 일본, 괌 등을 다니러 오신다고 하셨다. 이런저런 대략적 스케줄을 조율하다가 우리와 5일이나 함께 있을 수 있다고 하셨다.


❚어떻게 하면 특별한 추억이 될까?

그 시간들을 어떻게 하면 더 특별하게 보낼 수 있을까 며칠을 두고 생각했다. 지난 번 첫 방문에서는 관광명소를 함께 둘러 보는 걸 주로 했다. 아무래도 한국이 첫 방문이니 호기심이 많으셨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흔한 관광 말고 내가 알고 지내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소개시켜드려 그분들과 소통을 할 기회를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들 사이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좋은 기운이 나쁜 기운으로부터 공격을 덜 받을 것이기 때문에.      


나의 스터디 멤버들이 좋은 기운을 뿜는 사람들이기에 무조건 소개 시켜 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그 만남의 시간을 구성할지 즐거운 고민이 며칠 이어졌다. 그냥 좋은 사람이시고 스터디 멤버들에게 두 분에 대한 소개를 해드리고 각자 하고 싶은 질문을 하시도록 할까? 무형식의 진행이 장점은 있지만 행여, 할 말이 없어지거나 질문을 위한 질문이 될 위험도 있다. 게다가 영어 스터디를 하러 오시는 분들에게 유명한 연예인도 아닌 그 미국 노부부에게 그저 질문을 하시라 요구하는 것도 참 안 될 말일 것 같았다.      


그러자 남편이 문득 드는 생각이라며 두 분을 모시고 원래처럼 영어 스터디를 하는 게 오히려 더 재미있을 것 같다고 한다. 두 분을 그냥 스터디 멤버로 여기고 같이 스몰 토크도 하고 소설도 같이 읽고 의견도 나누면 훨씬 알찬 대화가 될 거란다. 그분들을 모시고 맹탕 아무 질문을 던지는 것 보다 보통 우리 스터디 순서대로 진행하면서 그 두 분에게 중간중간 질문이나 설명을 부탁하는 게 훨씬 더 좋을 것 같았다.      


중간 중간 원어민이신 그 분들게 영어 표현도 여쭙고 소설 전반에 흐르는 종교적 세계관에 대한 참고 설명을 부탁드리면 그것도 좋을 것 같았다. 또 오늘의 quote도 레인 할머니에게 미리 한 두 개를 달라고 요청하면 좋은 대화의 시작점(conversation starter)으로 딱 좋을 것 같았다.


사실 그분들을 스터디 멤버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이유는 그 두 분이 뭐 대단한 사람이라서기 보다는 신앙심이 깊으신 두 분의 삶의 방식을 보여주고 알려주고 싶어서이다. 우리 보다 훨씬 삶의 경험이 많으신 두 분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시는 지 그 이야기를 함께 듣고 싶었다. 물론 미국 유학 시절 나는 그분들의 삶을 직접 보고 많은 걸 배웠다. 하지만 스터디 멤버들에게 백번 말로 내가 전하는 것보다 직접 두 분을 뵙고 이야기 듣는 것이 훨씬 더 마음에 와닿을 것 같았다. 게다가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그 경험 자체도 스터디 멤버에게는 좋은 추억 거리가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서 새로운 세계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소통을 하는 것이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의 특권이다. 그런 특권을 스터디 멤버들도 누리게 하고 싶었다   

  

❚특별한 손님과 특별한 스터디, 특별하게 시작하기

스터디를 일주일 정도 남겨두고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원래 스터디에서 하던 순서대로 하기로 마음은 먹었지만 특별 손님들에게 포커스를 주면서 스터디 진행을 이어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이런 저런 궁리를 하며 어느 하루 산책하다 문득 그 두 분의 소개를 말로 하기 보다 두분과 우리 가족이 함께한 그 당시 찍은 사진으로 짧은 동영상을 만들어 깜짝 선물로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여기 저기 흩어져 있던 사진 폴더에서 그 두 분과 우리 가족과이 함께한 시간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사진들을 뽑아냈다. 미국에서 머문 5년 동안 우리 아이들을 조부모님처럼 대해주시던 분들, 아들이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조부모 방문의 날. 아들을 위해 우리 아이의 할아버지가 되어주신 밀튼 할아버지. 그리고 그 집 근처 연못가에서 낚시를 같이 하던 사진, 가을이면 hay-ride (가을 행사의 한 활동으로 트랙터에 건초 더미를 싣고 그 위에 사람들이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도는 행사)를 즐기던 사진, 교회 한 멤버의 넓은 목화 농장의 커다란 창고에 다들 모여 하던 가을 저녁 만찬, 해질 무렵 그 들판을 아이들은 풋볼을 던지며 시간 가는 줄 모르던 그 시간들, 그 시절의 사진들을 짤막하게 영상으로 만들었다.      


❚특별한 손님과 특별한 스터디, 특별한 이야기 나누기

스터디 문을 여는 Quote도 미리 레인 할머니께 부탁하는 생각은 내가 한 거지만 참 멋진 계획이라 생각이 바로 들었다. 역시나 레인 할머니는 너무 기쁜 마음으로 평소 마음에 담고 계시는 성경 구절을 주겠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너무 많은 구절들이 있어서 고르는 데 며칠 걸린다고 하시더니 정말 많은 고심을 하셨는 지 며칠 뒤 문자로 세 가지나 보내오셨다. 그 중 우리가 읽고 있는 소설과 맥이 통하는 걸을 스터디에 넣기로 했다.     

 

❚Just Perfect Match

이번 스터디를 계획하다보니 새삼 두 분의 방문 시기와 우리가 읽고 있는 책의 내용이 너무 멋스럽게 잘 어울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Number the Stars는 성경의 한 구절에서 인용한 것인 만큼 소설 전반에 성경적 세계관이 잘 묻어나 있다. 소설의 끝자락인 만큼 전체 소설 내용을 정리도 할 겸, 소설의 내용을 성경의 말씀과 연결하며 해석해보는 것은 의미있는 접근이다.          


❚꿈인가 생시인가?

드디어 특별한 스터디가 시작되는 툐요일이 다가왔다. 남편이 일찍 두 분이 머물고 계신는 호텔로 모시러 갔고 나는 먼저 스터디 장소에 가서 맞이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결국 또 미리는 가 있지 못 하고 거의 비슷한 시점에 도착했다. 두 분이 내 앞으로 걸어 오고 계셨다.  

머릿 속 과거의 시간과 지금 이 순간 현재의 시간이 그 사이의 세월은 온 데 간 데 없이 딱 마주한 그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행복한 네트워킹

내가 너무 좋아하는 두 분이 내가 하는 스터디에 오셔서 그 자리를 든든하게 채워주셨다.

좋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로 한 가득 방을 채우니 그 순간이 행복이다. 게다가  내가 이런 좋은 사람들을 서로 알게 만든 장본인이라니, 유치하지만 다들 자기 소개를 나와의 관계를 먼저 밝히고 자기 소개를 부탁드렸다. 내 대학교 동창 친구들, 나의 배우자, 내가 아끼는 스터디 멤버들, 그리고 내가 너무 존경하는 레인할머니와 밀튼 할아버지.... 이제 그 모임 이후 그들은 모두 내가 가운데 끼이지 않아도 서로 친구 관계가 되었다.      


❚드디어 스터디 시작

이번 모임 만큼은 거의 영어로만 진행했다. 살짝 떨리는 마음에 내 말 수가 너무 많아져 버렸다. 최대한 자제하며 간단한 각자의 소개의 시간을 가지고 준비한 프리젠테이션을 띄우며 스터디 문을 열었다.     

준비한 밀튼, 레인 부부와의 추억이 담긴 사진 영상을 먼저 시청하며 그 두분이 우리 가족에게 따뜻한 정을 나눠주신 날들을 회상했다. 미국의 파티 문화 중 가을 농장에서 하는 hay ride (건초 더미가 실린 트랙터에 올라타 동네를 한 바퀴 도는 행사), 추수감사절이나 미국 아이들의 놀이 문화에 대해도 이야기를 나눴다.      

본격적인 스터디는 Quote 한 구절를 나누며 시작되었다. 레인 할머니가 미리 보내오신 성경의 한 구절이다.      


And we know that for those who love God all things work together for good, for those who are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

-Romans 8:28-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획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결국 모든 일이 유익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로마서 8:28-     



소설은 당연히 일련의 사건들이 서로 인과 관계로 맞물려 흘러간다. 나쁜 일은 결국 더 나은 결과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냄새를 못 맡게 만드는 약물이 든 손수건을 Mr. Rosen이 떨어트리는 사건, 그리고 엄마가 무사히 미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다리를 접질러 집 앞에 쓰러진 사건, 결국 Annemarie 자신이 그 팩킷을 전달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은 어린 Annemaire에게 큰 도전이었지만 용기를 내어 독일군의 검문도 무사히 통과해서 결국 전달하게 된 경험으로 이끈다.


이런 일련의 사건이 연속적인 원인과 결과가 되는 현상은 비단 소설의 일 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삶 역시그런 면이 다분하다. 각자의 삶에서 그런 경험이 있는 지를 공유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일 것 같아 아래와 같은 질문을 준비다.      


스몰 토크를 위한 질문들

Q1. Can challenges or difficulties in life lead to good things? Share your experiences.     

Q2. How do you stay positive when things aren’t going as planned?     


나보다 더 많은 세월을 사신 두 분에게는 그런 경험을 여쭤보는 건 흥미로울 것 같았다.

밀튼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회사를 이직하시며 새로운 회사에서 동료로부터 모함을 받은 경험을 떠올리셨다. 그 일 때문에 퇴사를 하고 개인 사업을 시작하셨고 사업은 잘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결국 나쁜 일이 좋은 일의 계기가 된 셈이다.      

이어 레인 할머니는 그 나쁜 일을 겪는 시간은 인간이기에 고통스럽지만 그 순간에도 하나님의 동행하심에 큰 위안을 삼으며 그 시간을 잘 인내할 수 있었다고 회상하셨다.      


❚소설 <Number the Stars> 15장 그리고 어린 아이 같은 마음

두런두런 둘러 앉아 함께 이야기를 읽는 것은 그 자체가 즐겁다. 함께 소설의 끝 부분을 번갈아 가며 읽었다. 소설 속에 “철없음”에 대한 묘사가 지나칠 만큼 세세했다. 이에 대성경구절( 마태복음 18장 3절)인용하여 그 의미를 이해해 보았다.  


<Mathew 18:3>

    And he said: “Truly I tell you, unless you change and become like little

    children, you will never enter the kingdom of heaven.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독일 군인을 숲 한 가운데서 마주한 주인공 Annemaire는 그녀를 보호해줄 그 누구도 없는 그 위기의 상황에서 "그저 어린 아이와 같음"이 그녀가 독일군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한 셈이다. 어쩌면 우리의 아이와 같은 절대자에 대한 전적인 의존은 오히려 나약함이 아니라 신앙심이라는 강한 무기가 된다.


나에게 그런 부분을 알게 해준 분이 바로 오늘 모신 밀튼, 레인 부부이시다. 우리 가족에게 그런 든든함을 가지게 해주신 분이다. 이렇게 이번 모임에 그분들을 모시고 귀국 후 새롭게 시작한 일상, 그리고 그 사이 맺은 좋은 인연들을 소개하게 하며 철없는 아이가 부모에게 자랑하듯 나의 요즘 삶을 그 두 분께 멋지게 자랑한 셈이다.  내가 택한 삶의 방향과 매일을 채워가는 나의 일상의 루틴들이 결코 무의미한 세월의 소모가 아니라 그 두 분께 배운 삶의 모습을 조금씩 따라가려는 나의 발자취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두 분은 내가 좋은 사람들과 한국 생활을 잘 하고 있음을 보시고 좋아하셨을 테다. 하지만 역시나 나와 우리 가족을 위한 기도도 해주신다는 말씀을 챙겨 해주셨다.      


스터디 멤버들은 스터디가 끝나고 점심 식사와 미술관 구경 그리고 티타임까지 함께 해주셨다. 뭐 그리 대단한 구경도 아니고 유명 인사도 아닌 미국인 노부부와 그저 그런 일상의 것을 나눈 시간들이다. 하지만 내가 알고 지내던 이쪽의 좋은 사람들과 미국에서 알고 지내던 좋은 두 분을 함께 같은 공간에 두고 몇 시간을 함께 보내며 행복을 만끽했다.      


❚레인과 함께하는 새로운 스터디 구상

차를 마시며 레인할머니께 멤버들 중 희망하는 사람들과 함께 줌 바이블 스터디를 해줄 수 있으신지 여쭤보았다. 이곳과 그곳의 시차가 있지만 우리 쪽에 편한 시간을 잡으면 되니 언제든 세부 사항이 생기면 말해달라고 하신다. 마침 기존에 하던 미국 현지 교회의 레이디 바이블 스터디가 다소 부진한 상황이라 시간이 난다고 하셨다. 딱 좋은 상황이 펼쳐졌다. 내가 이끄는 영어 스터디와 별도로 레인 할머니가 이끄는 줌 바이블 스터디가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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