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따라가던 앞선 발걸음이 멈춤
❚다들 어디로 가셨지?
학교에서 학년말 마무리 일이 많아 저녁까지 일을 하다 밤 9시 줌 미팅에 늦지 않으려 부랴부랴 퇴근을 했다. 하루 종일 쌓여있던 싱크대의 설거지를 후다닥 하고 나서 내 방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줌 미팅 링크를 클릭했지만 9시가 거의 다 되었음에도 아무도 없었다. 보통은 Lain할머니와 소영 언니가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내가 들어가는데, 오늘은 왠일로 아무도 없었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아 급하게 카톡 단톡방을 체크했다. 내가 열심히 퇴근해오는 그 시각, 할머니의 문자가 와있었다.
“Ladies, I am so sorry to do this, but I must cancel for our meeting. I have had some health issues lately, and I am just not sure I am able to meet with you.
I will explain more later, but for now, we will postpone until a later time.”
“여러분, 정말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되어 죄송하지만, 오늘(이번) 모임을 취소해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 건강상 문제가 있어서 여러분을 만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설명드리겠지만, 우선은 모임을 추후로 연기하겠습니다.”
지난 10년간 할머니를 알고 지내면서도 별다른 병치레가 없으셨던 분이었다. 왜소한 체구지만, 단단함이 느껴지는 할머니였다. 넘치거나 치우침이 없는 그야말로 평온하고 담백한 삶을 살아오신 분이다. 출렁이고 이리 저리 흔들리는 나와는 참 다른 분이시다. 그런 할머니를 감히 닮고 싶어 10년째 할머니를 팔로잉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그런 할머니에게 갑작스런 건강상 문제라니??
무슨 일일까?
대뜸 무슨 일이냐고 여쭤보기도 조심스럽다. 내가 아는 바로는 미국 사람들은 남의 건강 문제를 함부로 제3자에게 전하지 않는 것 같았다. 비록 할머니와 오래 알고 지내왔지만 할머니께서 드러내기 싫을 수도 있는 사안이기에 직접적으로 물어보기가 조심스러웠다. ‘어쩌면 할머니 본인은 모르고 할아버지만 알고 계시는 무슨 심각한 병을 앓고 계시는 지도 모르지.’ 내 마음에 심지어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도 생각하고 있었다.
걱정이 되어 할머니께 바로 문자를 남겼다.
“I’m so worried abou you, Lain. I hope that these health issues aren’t serious. I will pray for you. I believe the Lord will heal you, as He has done before.”
다행히 할머니께서 몇 분 후 문자에 건강 문제를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셨다.
“Thank you so much, Soon.
I have had shortness of breath for about 6-7 weeks now. So far my doctor has not found the cause. It has gotten worse lately so we are heading to the emergency room to see if they can help. Please pray. It’s so important no matter what the issue is.“
(고맙구나, 순아.
숨이 차는 증상이 벌써 6~7주째 계속되고 있어. 아직까지 의사도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했어. 요즘 들어 더 심해져서, 혹시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응급실로 가는 중이란다. 기도해 주렴. 어떤 상황이든 기도는 참 중요하단다.)
응급실로 가면서도 나에게 문자를 남겼다. 나라면 내 감정에 몰입되어 문자 따위는 볼 경황도 없었을텐데, 역시 할머니는 아픈 중에도 여전히 남을 배려하는 모습을 잃지 않으셨다.
그래도 내가 생각한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아니기에 안도를 했다. 하지만 숨이 가픈 증상이 심해지고 있다니, 게다가 원인도 아직은 모른다고 하니 걱정이 되었다. 다음 날 할머니의 문자가 도착했다.
“The tests I had today were all normal. They did not help to know why I have shortness of breath. I have an appointment next Tuesday in Bi** with specialists.
I will let you know when I know something. Thanks for all your prayers!!
(늘 받은 검사 결과는 모두 정상이었단다. 하지만 왜 숨이 찬지는 아직 알 수가 없었어.
다음 주 화요일에 버**에서 전문의들을 만날 예약이 되어 있단다. 무슨 소식이 생기면 바로 알려줄게.
기도 많이 해줘서 정말 고맙다!!)
❚깊은 신앙심의 할머니
매일 아침 출근길엔 할머니를 위해 기도를 했다.
그리고 1주정도 흘렀다. 그 와중에 할머니는 우리의 다음 스터디 모임을 염려하고 계셨던 모양이다. 아래처럼 문자가 왔다.
Soon, I don’t know whether to schedule our next meeting, or wait a little longer.
I have appointments with doctors in B** for January 8 and 9. The shortness of breath continues, and we hope these doctors can give us insight into the cause. I have generally not felt good, and have had trouble sleeping, which makes everything a bit more difficult.
So, let’s wait a little longer, and see if I get to feeling better.
I am still eager to meet with you all, and pray God will be pleased to allow that to happen.
(순, 다음 모임을 잡아야 할지, 아니면 조금 더 기다리는 게 좋을지 모르겠구나.
1월 8일과 9일에 버**에서 의사 선생님들 진료가 잡혀 있단다. 숨이 찬 증상은 계속되고 있고, 이번에는 원인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 전반적으로 몸 상태가 좋지 않고 잠도 잘 못 자서 여러모로 더 힘들구나. 그래서 당분간은 조금 더 기다렸다가, 몸이 나아지는지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래도 여전히 너희 모두를 만나고 싶은 마음은 크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단다.)
할머니께 나와 여러 스터디 멤버들이 기도해주고 있다고 문자를 보내니 또 이렇게 신앙인의 마음가짐을 보여주셨다.
”Your text is one of the most encouraging ones I have ever received! Thank you so much.
Please tell anyone who asks (and how kind of Angie to ask) that we are completely confident God has a purpose in all this. Nothing surprises Him. Please pray we will respond with faith, in God honoring ways, no matter the outcome.”
(네 문자는 내가 지금까지 받은 것 중에서 가장 큰 격려가 되는 말 중 하나란다. 정말 고맙구나.
누가 묻거든(앤지가 이렇게 마음 써서 물어봐 준 것도 참 고맙고) 우리는 이 모든 일 가운데 하나님께서 분명한 뜻을 가지고 계시다고 전적으로 믿고 있다고 전해 주렴. 하나님께는 놀라운 일이란 없단다.
결과가 어떻든지 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태도로 반응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면 참 고맙겠구나.)
❚새해 기도
주일 예배를 볼 때도, 퇴근 후 저녁에 혼자 강변을 산책할 때에도 내 마음의 한켠은 할머니에 대한 염려와 기도로 채워져있다. 10년 전 돌아가신 엄마의 빈자리를 그 10년이 흐르며 Lain 할머니께서 조금씩 채워주고 주셨고 나에게는 할머니의 존재가 누구보다 위로가 되고 있다. 그런 할머니를 난 언제나 할머니가 그곳에 있어주실 거라 당연시 여겼다. 그리고 언제나 할머니 발걸음을 따라 가면 될 거라 생각하며 나 스스로 발걸음의 방향에 대한 생각도 내가 있는 위치에 대한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따라만 가려 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먼저 가던 할머니의 발걸음이 멈춰설 때가 오겠지. 그때가 되면 내가 온전히 방향을 찾으며 길을 잃지 않으려 온정신을 차리며 발걸음을 떼어야 하겠지. 할머니를 따라가던 내 발걸음이 할머니의 발걸음 없이도 방향을 잃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을까? 아직은 정말 자신이 없다. 매번 길을 잃고 헤맬 것 같다.
2026년, 이제 또 한 살을 더 먹었다. 할머니께 전적으로 의지해서는 안 될 나이가 진즉에 넘었지만. 아직 할머니의 도움이 너무 많이 필요하다. 빨리 할머니의 병세가 호전되어 다시 예전처럼 할머니와 하나님 말씀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