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했으면 알지 못했을 나의 적성
❚ 오늘은 세상 아름다운 날
살짝 늦은 퇴근을 하고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문득 오늘이 세상 아름다운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이 건강하고 밖의 예쁜 벚꽃을 보며 예쁘다고 느낄 수 있는 내 마음이 참 감사했다. 그리고 이보다 더 행복할 수 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 저녁을 챙겨야할 시간이지만, 오늘을 놓치면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이기에 난 얼른 옷을 갈아입고 벚꽃이 아름드리 줄지어 선 강변을 걸었다. 유학을 끝내고 귀국한 이후로 나의 생각 정리는 주로 이 강변 산책에서 이루어 졌다. 오늘은 별달리 정리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저 오늘은 오늘이 너무 아름다웠기에 걸었다.
❚ 세상 아름다운 날에 받아든 거절 이메일
기분좋게 초저녁 산책을 혼자 즐기고 집에 드러 설 무렵 나에게 이메일 수신 알람이 울렸다. 외국 학회지에서 보내온 이메일이었다. 장장 6개월가량 기다린 이메일이었다. 그러나 글 길이로 봐서 나는 당장에 알아봤다. OK 사인이 아님을. 나의 소논문이 그들의 학회지에는 실을 수 없는 것으로 판정되었다면서 다른 학회지에 문을 두드려 보라는 내용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작년 10월에 심사를 위해 제출한 글인데, 거의 6개월이 다 되어 가서 No를 주다니. 진작에 답을 해주지 않고서’ 하는 화도 잠시 났다. 그랬더라면 다른 학회지에라도 알아봤을 텐데. 이미 그 논문은 내가 졸업한 미국 대학교 도서관에서 4월부로 일반인이 열람 가능하도록 약정된 거였다. 그러니, 이제 그 글을 가지고 다른 학회지에 출간하기위해 문을 두드리는 것도 적절하진 않게 된 셈이다.
❚ 근데 내 마음은 안심
아무튼 때늦은 거절 이메일을 받아들고 나는 내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근데, 신기하게도 실망감보다는 뭔가 모를 안심이 들었다. ‘어쩐지, 내가 논문을 쓰고 연구하고 하는 일들을 할 때 별로 신이 안 나더니 결국 나는 그런 일에는 관심이 안 가지고 내 성격에도 안 맞는 거였어.’ 사실, 미국 유학 시절에 내 작은 사무실은 교수 연구동에 있었다. 내 옆방도 복도 건너 방도 모두 교수님들 연구실이여서 정말 가까이에서 교수님들을 볼 수 있었다. 늘 혼자 연구실에 앉아서 연구하고 논문 쓰고 하던 교수님들의 생활을 보면서 나는 그들 자리에 나를 한번 도 투사 시켜본 적이 없다. 물론 자신도 없었지만, 그러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내가 근무하던 마지막 학기에 나를 맡고 있던 아시아 학부 학과장은 일본인 교수였는데, 그분은 정년보장 교수직을 맡고 있었으나 사표를 냈다. 남편 따라 다른 주로 가서 살기 위해서라고 했다. 나와 동갑이었던 그 교수는 뒤늦게 아들을 출산했다. 내가 박사를 시작하던 해에 첫 출산을 하고 나서는 육아에 전념을 하더니, 메시칸 이민자인 남편을 따라 가기위해 교수직을 그만둔 걸 봤다. 남편이 전문직이거나 벌이가 좋은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런 결정을 내렸다. 참 놀라운 소식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일본어 교수는 다른 대학교의 정년보장이 되던 교수였는데, 그 학교가 인문대학교를 축소하면서 하루아침에 해고되었다고 했다. 또 나의 지도 교수는 조교수로 임용받고 4년 정도 후에 하는 정년 교수 심사에 합격을 하기 위해 정말 전력질주를 하셨다. 그러던 어느 저녁 수업 직전에, 그 교수님이 땅에 주저앉으셔서 망연자실하는 걸 봤다. 노트북을 어디에다 뒀는지 모르겠다면서 뭔가 멘붕이 오신 듯 해보였다. 물론 그 이후 정년이 보장되는 교수가 되었지만, 관찰자인 나로서는 그분들의 길을 뒤늦게 쫓아가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교수들의 험난한 과정들을 본의 아니게 목격했다. 그 이후로 나는 소용없을 것 같은 박사 논문도 쓰고 싶지 않아졌었다. ‘어차피 대학교 쪽으로 내가 진로를 바꾸고 싶지도 않는데 힘들게 써서 뭐하겠어’하는 생각이 참 쉽게 들었다. 그래서 박사 세 번째 학기가 될 때가지 논문 쓰는 일에 별 관심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한국어 가르치는 일에 재미를 느끼면서 열심히 강의를 했다.
❚ 후회를 줄이기 위한 나의 시도 그리고 성공 한 가지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나는 교수가 될 리도 없지만, 박사학위로 뭘 할 리도 없지만, 그래도 박사 논문을 쓰고 박사학위를 따보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나를 한국어 강사로 되게 만들어주신 그 교수님의 조언이 나에게는 아주 결정적이었다. 하루는 고민이 너무 되어서 교수님을 찾아가서 단도직입적으로 말씀을 드렸다. ‘교수님, 제가 논문까지 써서 꼭 박사 학위를 받아야 할까요?’ 그러자, 교수님은 ‘영어교사로 돌아가든, 한국어 강사를 하든 늘 교육 분야에 종사할 거 아니에요? 그러면 앞뒤 묻지 말고 그냥 할 수 있을 때 박사 학위를 따는 게 후회가 없을 겁니다. 그리고 박사학위를 따고 나면 더 많은 것이 보일 수 있으니 할 수 있을 때 하세요’ 하셨다. 나는 그 교수님의 그날의 조언에 참 감사를 한다. 덕분에 꿈에도 없던 박사 학위까지 내 꿈 안으로 포함시켰고, 그 걸 얻기 위해 열심히 달렸다. 다행히 나의 도전은 실패가 아니였다. 그렇다고 대단한 성공도 아니다. 그건 순전히 나와의 싸움에서 내가 이긴 것 뿐이었다. 그것 말고는 별 소득이 없는 학위이긴 하다.
❚ 후회를 줄이기 위한 나의 시도 그리고 실패 두 가지
하지만, 난 그 박사 논문 덕분에 영어 교사로만 지냈더라면 해보지 못 했을 두 가지 실패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난 그 논문 덕분에 어떤 두 가지를 해 볼 수 있었고 그 두 가지는 내가 더 안 해도 되겠다는 증표를 얻었다. 내 인생의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그 두 가지는 x표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하나는 바로 교수가 되는 일이다. 박사 졸업을 앞두고 내가 있던 그 한국어 강사 자리가 객원교수(Visiting Professor)자리로 중요도가 커졌다. 미국 대학교에서 한국어 학부를 키워보고자 마음을 먹은 거였다. 박사 졸업장 덕분에 나는 그 자리에 감히 원서를 내 볼 수 있었다. 교수로 지원하는 과정이며 비대면 면접까지 교수 지원자들이 밟는 전 과정을 다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물론 나는 한국어나 한국 문학 관련 전공이 없었기에 탈락했다. 그리고 깨끗이 단념하고 귀국을 완전 결심했다. 그리고 교수라는 진로의 선택지는 x표를 했다. 내가 해보고 싶거나 할 수 있는 일로 교수는 아닌 거였다. 두 번째는 바로 소논문을 학회지에 투고하는 일이다. 다른 교수님들처럼 나도 외국 학회지에 글을 써서 심사를 받고 결과를 통보받는 일련의 과정을 경험해 볼 수 있었다. 비록 오늘처럼 거절 이메일을 받았지만, 덕분에 나의 진로 선택지에서 연구자는 x표를 했다. 내가 해보고 싶거나 할 수 있는 일로 연구자는 아닌 거였다.
❚ 실패는 나의 이수증, 그리고 진로 표지판
결국 나에게 실패는 내가 그 일을 해봤다는 이수증 같은 것이다. 또, 나의 진로를 안내해줄 표지판 같은 것이다. 내가 해보지 않았더라면 막연하게 꿈만 꾸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현실 직시를 하고 나면 내 마음은 한결 홀가분해진다.
❚ 오늘은 세상 아름다운 날
그리고 한편으로 내가 가진 것, 내가 하면 즐거운 것, 남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찾는 데 한 결 더 쉬워진 느낌이다. 최근에 시작한 브런치에 글쓰기도 그 일 들 중에 하나이다. 오늘처럼 나의 슬픈 실패의 소식도 이렇게 글로서 공유하고 거기에 기꺼이 공감해 줄 사람들이 내 곁에 있다는 느낌은 참 좋다. 아무도 읽지 않는 그 수많은 논문들 보다 브런치에 있는 나의 글이 나에게는 더 값진 것 같다. 그게 나의 최면일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여야 되니 나의 착각이라도 어쩔 수 없다.
최근에는 용기를 내어서 유튜브 채널에 한국어를 영어로 가르치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 지구 저 반대편에 사는 사람들이 내 동영상을 보고 댓글을 달아주는 일이 너무 신기하고 감사하다. 아직은 아주 미약한 걸음마 단계의 시도이지만, 내 마음은 이미 알고 있다. 내가 이일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더 잘 해보고 싶어진다는 것을. 그리고 고맙게도 몇몇은 나의 영상이 도움이 된다고도 댓글까지 달아 주는 것을 보면 나의 새로운 시도가 남에게 도움이 조금은 되는 모양이다. 참 감사할 일이다.
나는 오늘 학회지의 거절 이메일을 받아들고 또 한번 나의 진로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지지 않은 그 길은 나에게 적합하지 않았던 길이였으리라 생각하며 감사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대신 내가 할 수 있고 내가 재미있어하고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더 잘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오늘은 역시 아름다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