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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꿈꾸던 미국 대학원 공부와 엄청난 학비의 현타

: 기왕에 내야하는 학비라면 뽕을 뽑기로

by Hey Soon

❚ 역시 퀄러티가 다른 미국 대학원 수업

첫 학기에 신청한 전공 수업은 아주 신선했다. 이민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영어 교사의 자질에 관한 수업이었다. 지도 교수님이 개설한 강의였는데, 영어를 어떻게 가르치는 것에 앞서서 미국 내의 영어 학습자 및 이민자들의 상황을 올바로 이해하고 그들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 그 강의의 목적이었다. 미국에 가기 전까지 나는 영어 교사였지만, 미국에 사는 이민자들의 눈물겨운 상황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한국에서 영어는 계층 상승을 위한 일종의 교양 수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영어는 생필품과 같은 것이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절대 중요한 도구이다. 그러니 이민자들의 삶을 먼저 이해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어느 저녁 수업에 교수님은 무비 나잇(Movie Night)을 한다면서 우리들에게 팝콘을 들고 오라고 했다. 우리는 기대를 하며 저녁 수업이 있는 강의실로 갔다. 교수님은 다큐멘터리를 하나 보여주셨다. 한 멕시칸 청년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오다가 사막에서 죽은 사건에 관한 비디오였다. 미국에는 그렇게 위험천만한 이민 행렬이 늘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출퇴근 길에 듣던 미국 국내 뉴스에는 국경을 불법으로 넘어오는 이민자들에 대한 뉴스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들렸다. 나는 그 비디오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탈북민들이 오버랩 되기도 했다. 그 비디오를 보고 우리는 이민자들의 삶에 대한 각자의 생각이나 느낌을 토론했다. 조별 그룹 프로젝트로 자기 주변의 이민자들의 삶에 대한 설문 조사를 하고 그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짧은 유튜브 동영상 제작을 하는 과제도 수행했다. 10년 전 첫 아이 임신 즘에 다니던 한국의 대학원 수업과는 그 퀄러티가 달랐다. 나는 아주 흡족했다. 그리고 나 자신 또한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고 있기에 그 수업의 주제와 과제는 아주 흥미로웠다. 미국 현지인이면서 영어 교사 지망생들인 친구들의 답변들도 재미있었다. 그들은 한번 도 외국에 나가 산 경험이 없는 대학원생들이라 외국인 학생인 우리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 주었다. 그렇게 첫 학기는 내가 꿈꾸던 그런 공부를 할 수 있었던 학기였다.


❚ 나는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아주 행복하게 시작한 대학원 수업이지만, 아직 영어가 아주 서툰 두 아이들 뒷바라지가 먼저였기 때문에 나는 나의 대학원 수업에 많은 에너지를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도 교수님께 상의를 드린 후 첫 학기에는 전공을 한 과목만 듣고 나머지 두 과목은 영어작문 수업과 영어 프리젠테이션 수업을 신청했다. 전공이 아닌 두 강좌는 과제도 거의 없고 나에게는 거의 식은 죽 먹기였다. 그 강좌는 원래 대학 입학허가는 받았으나 상대적으로 영어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한 대학원 학생들을 위한 영어 쓰기 및 말하기 강좌이다. 나의 클래스 매이트 중에는 수학 천재인 중국 유학생 두 명이 있었다. 대학원생으로 학부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친다고 했다. 그런데, 그들의 영어는 사실 알아먹기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 친구들은 나의 영어실력을 살짝 부러워하는 듯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친구들이 엄청 부러웠다. 물론 그들의 수학적 머리도 부러웠지만, 진짜 부러운 것은 다른 것이었다.


❚ 나빼고 다 학비 감면자들


그 수업을 듣는 모든 학생들은 나만 빼고 모두 GA (Graduate Assistant 대학원 조교)의 타이틀을 가진 외국 유학생이다. 대부분 공대생이거나 수학, 과학 쪽에 뛰어난 외국인 학생이다. 그들은 입학할 때부터 조교 자리를 부여 받고 입학한 학생들이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은 이미 등록금을 전액 감면받고 대학원을 다니는 대학원생이었다. 미국 대학원은 첫 개강일 이후 20일이 지나면 수강 취소 및 정정기간이 마감이 된다. 그러면 이내 학비 납부도 완료해야 한다. 석사과정동안 내가 납부한 한 학기 학비는 부양가족인 남편, 두 아이의 의료 보험료(International Insurance-Family) $2,861, 내 보험료(Student Insurance) $965, 그리고 외국 유학생 비(International Student Fee) $130, 등록금(Tuition) $14,000 그리고 기타 주차비등 총$18,800정도였다. 이걸 한화로 하면 한 학기에 2천5백만원 정도의 엄청난 돈을 현금으로 완납해야 했다. 현실 자각타임이 성큼 다가왔다. 인터넷 뱅킹을 해서 미국 내 계좌로 돈을 움쑥 송금시켜왔다. 교사로 일하면서 모아둔 목돈의 많은 부분을 자유입출 계좌로 옮겨두고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리고 매 학기 등록금을 지불할 시즌이 되면 미국으로 송금해서 대학원 학비를 현금으로 계좌 이체 시켰다.


❚ 학비 문제를 해결하려고 별의 별짓 다 하고 나서 깨달은 것


첫 학기 등록금을 그 어마한 금액을 내고 나서 현실 자각이 시작되었다. 일단 첫 학기 등록금을 이렇게 쌩으로 낸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학기는 어떻게든 학비를 마련하고자 애를 썼다. 일단, 학교 홈페이지에 장학금 신청란을 샅샅이 뒤져서 필요한 지원서를 써서 제출을 했다. 하지만, 살짝 기대를 하고 기다림의 며칠을 보내고나서는 어김없이 자동 이메일을 받았다. 나는 자격요건이 되지 않는다는 이메일이었다. 대부분 대학교 홈페이지에 소개된 장학금은 외국인 학생에게는 해당이 안 된다. 나는 몇 번의 시도를 한 이후 그 사실을 깨닫고 더 이상 부질없는 노력은 안 하기로 했다.


그렇게 장학금을 포기하는 대신 나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를 벌어 보려고 마음 먹었다. 지도교수님을 찾아 가서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미 있는 조교 자리를 내가 차지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무엇보다 석사 과정의 외국인 학생에게는 특별히 뛰어난 능력이 없는 이상 조교 자리가 부여되지도 않는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옵션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학교 밖의 파트 타임도 F1 비자 학생에게는 아주 제한적이라 거의 현실 상 금지 되어 있었다. 그나마 겨우 나는 학교 도서관의 쓰기 센터에서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시간당 최저 임금이다 보니 경제적 도움은 절대 되지 못하는 일자리 였다. 하지만, 나는 첫술에 배부를 수 없으니, 그저 경험을 쌓는다는 생각으로 그 일을 시작했다.


❚ 외국 유학생들을 호구로 아는 미국 대학교


한 학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재정상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자 나는 더 이상 잃을 게 없다 싶어 교육대학원 학장에게 ‘항의성 이메일’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도무지 미국 대학교는 외국인 유학생을 그냥 호구로 생각하는 것 같아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기왕에 호구가 되더라도 그네들의 유학 장사에 쓴 소리를 하고 싶었다. 미국 대학교는 나같은 유학생들에게 아무런 동기를 부여하지 못한다. 열심히 공부해서 모든 성적을 올 A를 받고 평점 만점을 받아도 외국인 대학원생은 아무런 장학금 혜택을 받지 못한다. 교육에서 동기는 아주 필수 요소이다. 하지만 미국 대학교는 필수 요소, 즉 학습 동기를 진작시키는 것 (장학금 같은 것)이 빠진 미완성된 제품을 외국인 학생들에게 상품으로 팔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 이메일을 보내고 나서 며칠은 기분 좋게 지냈다. 뭐 대단한 내용은 아니지만, 그냥 깽판을 놓고 싶은 나의 욕구는 해결했으니 그걸로 족하다 싶었다. 결국 두 주가 지나도록 이메일 답장은 없었다. 나는 미친 척하고 같은 이메일을 한 번 더 발송했다. 그랬더니, 몇 주 있다가 학과장 밑에 일하는 직원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나를 좀 만나자고 했다. 나는 기대를 하며 그 직원의 사무실로 갔다. 내가 계속 이메일을 보내니까 무마는 해야겠다 싶었는지 그냥 ‘언젠가 좋은 기회가 올 것이다’라는 막연한 위로를 하려고 나를 부른 거였다. 결국 아무런 재정적 도움을 받지 못하고 그 항의성 이메일 사건은 끝이 났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가을 학기 무렵 나는 대학원으로부터 ‘Outstanding Interntional Student’ (올해의 유학생상)을 받았다. 짐작컨대, 그 이메일 덕분인 듯하다. 근데, 허당인 것이 나는 그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시상식에 오라는 이메일을 나중에 확인하는 바람에 그 시상식을 놓쳐버렸다. 하지만, 그 상도 그저 상패만 있을 뿐 상금은 없다고 했다. 나는 그 시상식이 지난 며칠 후 담당자로부터 그 상패만을 전해받았다. 그 걸 받아들고 나는 혼자 생각했다. 내가 눈에 띄는 (outstanding) 짓을 했으니 ‘그 상은 받아 마땅하다’하고. 그리고 어이가 없었지만 그냥 웃어 넘겼다.


❚ 내 돈 내며 하는 미국 유학생활, 제대로 뽕을 뽑기로 했다.


결국 별 짓을 다했으나 소용없이 나는 두 학기 등록금을 고스란히 내야 했었다. 기왕에 내야하는 학비라면 나는 내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낸 만큼 뽕을 뽑기로 했다. 뭐든지 열심히 살아 보기로 마음먹었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현지인들과의 교류도 열심히 해보기로 했다. 나의 ‘열심 모드’를 풀가동 하기로 했다. 그 덕분에 석사 박사 과정 모든 과목에서 평점 만점을 받았다. 그리고 현지인 친구들과 좋은 추억거리도 만들었다. 돈을 내며 배워야 제대로 배운다는 말도 맞는 거 같다. 엄청난 돈을 냈기때문에 나의 열심 모드는 꺼지지 않았고 그 때문에 나의 미국 유학시절은 다양한 경험으로 꽉찬 세월일 수 있었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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