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교사이던 내가 한국어 강사가 된 일
❚ 허락되지 않은 기회에 분노하지 말고 ‘나에게 적합한 일’이 아니었으리라 믿고 받아들이기.
애초에 미국으로 유학을 결심할 때는 인생의 쉼표를 찍고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고자 했을 뿐이었다. 그 때는 박사과정까지 하리라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게다가 박사 학위까지 얻겠다는 계획은 꿈에도 없었다. 석사 두 번 째해 인근 대학교 영어 강사 자리를 지원한 적이 있었다. 그 곳 책임자는 면접 후에 나를 고용하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마지막 서류 심사에서 내가 학교 밖에서는 일 할 수 없는 F1비자 신분이라 대학교 측으로부터 부적격을 통보받았다. 그 당시의 상실감은 참 컸다. 내가 해 온 영어 교사 일을 새로운 곳에서도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잠시 가졌으나 허락받지 못 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기를 쓰고 얻고자 해도 얻어지지 않았다. 그런 경험을 갖고 나서 나는 마음을 비우고 초연해지기로 했다. 교사로 재직하며 모아둔 돈의 상당 부분을 미국 석사 시절 나의 소중한 경험의 대가로 지불하고 난 이후, 나는 홀연히 한국으로 귀국을 결심했었다. 소기의 목적을 다 이루지는 못 했지만, 더 이상 머무를 이유도 없었기에 남편과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석사 마지막 학기 가을 무렵, 나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나니 뜻밖의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 내가 꿈에도 생각 못한 한국어 가르치는 일이 생겼다. 미국유학기간 중 특히 박사과정을 하던 시기에 나는 그 대학교의 한국어 전임 강사로 선정되었다.
❚ 뜻하던 일을 하다 발견한 뜻밖의 일
내가 공부하던 미국 대학교에는 일찌감치 세종학당이 한국어 강의 및 한국 문화 확산에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는 유학가기 전까지는 영어 교사라는 직업에 몰입하느라 한국어 수업이나 해외 한국어 문화 사업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으로 가서 보니 세종 학당이라는 기관이 이미 여러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내가 다니던 대학교도 세종 학당이 있었다. 나는 그곳의 운영 구조를 전혀 파악하지 못 하고 그저 ‘단순 파트타임이라도 할 게 있겠지’하는 마음에 미국 석사 시절 첫 학기에 무작정 찾아 간 적도 있었다. 결국 그곳은 한국 정부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것이라는 걸 알고 바로 단념했다. 참 좋은 일을 하신다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일본어하고 중국어는 현지 대학교가 돈을 투자하면서 그 학점 강의를 운영하는데 왜 우리나라말은 그 대학교에 우리나라가 돈을 줘가며 가르쳐야 하는 거지?’ 살짝 불편한 마음도 들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 같은 한국 유학생이 그나마 한국어를 가르치며 학비도 보조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텐데’ 하고 씁쓸해 한 적도 있었다. 결국 나는 한국어 강사 일에 별로 눈독을 드릴 수도 없이 그냥 포기했다. 사실 그 때만 해도 내가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나는 영어교사였고 영어를 가르치는 일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나에게 그 기회는 2년 후에 찾아 왔다.
운이 좋게도 그 즘에 미국에는 한국어 배우기 열풍이 시작되고 있었다. 내가 있던 곳은 한국인의 유입 인구도 급격히 늘던 터라 인근 초등 및 중학교에서 한국어 과목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그래서 대학교에서도 당연히 그 수요를 포착하고 새롭게 아시아어 학부에 중국어, 일본어에 이어 한국어를 키워보려고 하고 있었다. 내가 박사과정을 하면서 하게 된 한국어 전임 강사 자리는 이전에는 없던 자리였다. 예전에는 세종학당에서 선생님이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학점 수업을 한두 개 보조해주는 수준이었다. 미국 대학교는 한국어 강의 개설의 필요성을 별로 가지지 않았었다. 그저 우리나라 정부가 후원하는 세종학당을 통해 한국 문화 및 한국어의 확산을 목격하고 있을 뿐이었다. 미국 대학교는 돈 한 푼 안 쓰고 학점수업을 개설한 셈이었다. 그러다가 2018년도 본격적으로 현지 미국 대학교도 그 수요를 인식하고 정식으로 직원을 고용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 아주 작은 우연처럼 생긴 인연이라도 소중하게 이어나가기
유학생으로 있던 석사 첫 학기, 나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낯선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해야 했었다. 그래서 공부도 공부지만 우선 인맥을 넓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공부하던 대학교 홈페이지를 뒤져 교육관련 전공 쪽의 한국인 교수님의 이메일을 알아냈다. 그 한국인 교수님께 이메일을 보내고 찾아가 인사를 드린 적이 있었다. 초면에는 많은 한국 유학생 중에 그저 한 명일 뿐인 나를 그저 사무적으로 맞이하셨다. 하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일이니 나는 그것으로 만족해하며 교수님의 연구실을 나왔다.
얼마 후, 그 한국인 교수님은 우리 전공 수업에 초청 강사로 한번 오셔서 외국인으로 미국 교수를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미 그 분은 나의 미국인 지도교수님과도 아주 절친한 사이셨다. 나는 ‘이때다’ 싶어 열심히 그 한국인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고, 질문하는 타임을 가졌을 때 여러 가지 질문을 하여 ‘나’라는 사람을 알렸다. 또 그 얼마 후 인근 한국 교회에서 그 교수님이 이민 온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역시나 거기에 가서도 맨 앞자리에서 그 분의 말씀을 열심히 경청했다. 그 두 번의 강의 이후로 난 그 한국인 교수님을 좀 더 알게 되었고, 그 교수님도 나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그런 작은 인연이 나에게 큰 행운을 가져 다 주었다.
❚ 매일 조금이라도 나의 열심을 기울여 내가 할 수 있는 가지 수 늘리기
그리고 1년이 흐른 뒤였다. 그 교수님이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오셨다. 그 대학교가 새롭게 한국어 강사를 모집한다면서 나보고 그 자리에 지원을 해보라고 하셨다. 그 한국인 교수님은 아시아 학부의 학과장과도 친분이 있었다. 그래서 한국어 강사를 모집하는 걸 미리 알고 계셨고, 그 자리에 내가 적임자라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아시아 학부 학과장이 원하는 사람은 한국어가 모국어인 사람으로, 영어 회화실력이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초급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영어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은 절대적으로 요구된 다고 했다. 그리고 학부생을 위한 학점수업이라 학과 측과 의사소통이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했다. 대학교의 시스템을 이해하고 주어진 업무를 수행 해나가는 데 영어 실력이 없이는 곤란하다고 본 것이다. 그 당시 그 자리에 지원한 또 한 분이 있었다. 그 분은 한국에서 국어 교사를 하시던 분이셨다. 누가 봐도 한국어의 전문가이다. 그리고 미국 영주권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 쉽게 고용 계약을 맺을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분은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능력이 많이 부족하고 외국어로서 한국어를 가르친 경험이 없어서 고용하기 곤란하다고 했다.
반면, 나는 그 분에 비해 영어 의사소통 능력이 뛰어났고, 비록 한국어를 가르친 경험은 없었으나, 외국어로서 영어를 가르친 경력이 많아서 외국어로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방법은 안다고 보셨다. 하지만, 일 할 수 없는 F1 비자의 신분이고 그나마 석사 마지막 학기라 이제 비자도 만료되어 가고 있던 터였다. 그 상태로 내가 다음 학기부터 한국어 강사 일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대학교 측은 나에게 박사과정을 제의해왔고 등록금 전액 감면과 매달 생활비 조로 한 강좌 당 900불을 주겠다고 했다. GTA(Graduate Teaching Assistant: 대학원 조교)로서 나를 고용한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매 학기 마다 2개 강좌를 개설할 수 있어서 한달 월급은 괜찮은 편이었다.
❚ 그리고 내가 깨달은 몇 가지
그 당시 그 일로 내 마음에 몇 가지 삶의 교훈 같은 게 생겼다.
한 인간으로 나는 나에게 최적의 기회가 뭔지를 알지 못 한다. ‘내가 얻고자 하는 기회라 하더라도 내게 절대 허락되지 않은 일이 있다. 그건 내게 적합한 기회가 아니었기에 얻지 못했으리라’ 믿기 시작했다. 얻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보다는 차분히 받아들이는 지혜를 발휘해보기로 했다. 그렇다고 수동적으로 매사를 살아서는 안 된다는 거다. 오히려, 미래의 어느 포인트에서 나에게 소중한 기회와 전환점이 생길지 알 수 없는 한 작은 존재로서 오늘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작은 인연도 소중하게 생각했고, 작은 인연이라도 더 만들고자 했다. 또,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가지 수를 늘려야 겠다’고 생각했다.
먼 옛날 시골 중학교에서 알파벳을 겨우 배운 이후 그 뒤쳐진 실력을 만회하려고 미친 듯이 영어 공부에 몰입했었다. 대학생 시절, 교사임용고시에는 영어 말하기 능력이 별로 요구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남들보다 더 열심히 영어 회화 학원을 다녔다. 가난한 가정환경을 탓하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보기로 하고 매일 열심을 떨었다. 그렇게 다져진 나의 영어 소통 능력은 비록 비자 문제로 집 근처 다른 대학교에서 풀타임 영어 강사로 고용되는 것은 거절되었지만, 내가 다니던 대학교내 ESL 프로그램에서 파트타임영어 강사로 일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나의 영어 소통 능력은 한국어를 가르치고 나의 학비를 전액 감면 받는 기회를 잡는데 결정적이었다.
내가 예상치도 못한 그 일을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가지 수를 늘려왔었기 때문이다. 무엇에 써먹을 수 있을까를 지금 당장 생각하기 보다는 그저 할 수 있는 일의 가지 수를 늘리고 내 삶에 들어오는 작은 인연도 소중하게 이어 나가는 게 중요하다. 나에게는 뜻밖이지만, 어쩌면, 하늘의 뜻인 일이 나에게 어느 날 주어진 다해도 내가 감당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는 게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인 것 같다.
❚뜻하던 일을 하다 발견한 뜻밖의 행운을 얻는 이유:
1. 매일 조금이라도 나의 열심을 기울여 내가 할 수 있는 가지 수 늘리기
2. 사람의 힘은 아주 강력하므로 아주 작은 우연처럼 생긴 인연이라도 소중하게 이어나가기.
3. 허락되지 않은 기회에 분노하지 말고 ‘나에게 적합한 일’이 아니었으리라 믿고 받아들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