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드넓은 초원에 깃든 그림자

: 미국인들의 총기 소지, 끝없는 견제

by Hey Soon

❚부럽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

전형적인 한국의 아파트촌에서 살았다. 유치원생인 아들과 초등학교 저학년인 딸을 데리고 놀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집 옆 초등학교 운동장하고 중학교 운동장이었다. 퇴근 후 두 아이를 데리고 거의 매일 인근 학교 운동장으로 향했다. 해가 질 무렵까지 기차놀이도 하고 넓은 운동장에 막대기로 선 그으며 달리기 놀이를 하곤 했다. 그러다가 집 근처에 농구골대도 있고 인라인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제법 사이즈가 큰 공원이 생겼다. 늘 주말이면 언니네 가족, 여동생네 가족들은 거기에 모여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뛰놀 시간을 마련해곤했다. 그곳이 우리 아이들에게 유일한 주말 쉼터였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나는 미국에 관한 모든 것들이 부러웠다. 그들의 ‘자유로움, 교육, 민주주의’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선망했었다. 하지만 막상 그곳에 도착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그들의 넓은 땅덩어리였다. 지도에 그려진 한국이라는 나라와 미국이라는 나라는 나라라는 같은 카테고리로 하기에는 미국은 커도 너무 큰 나라이다. 가도 가도 끝없는 넓은 초원과 그 울창한 소나무 숲과 원시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들판은 보기만 해도 가슴이 탁 트였다. 내가 머물던 미국 남부에는 가족들과 같이 피크닉을 즐길 만 한 곳이 온 천지에 널려있었다. 가족들이 그리운 유학시절이라 그 당시 나는 한국에 있는 가족들을 데리고 이 곳 어디메라도 함께 피크닉 가는 상상을 자주 했었다.


❚미국 인디언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유학을 시작하고 첫 여름 방학에 가족과 같이 스모키 마운틴(Great Smoky Mountain)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 넓은 초원과 멋진 산맥이 어울어진 그 곳의 풍광에 나는 감탄을 멈출 수 없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위도에 있는 곳이라 그런지 우리나라의 숲 모습과 참 닮아 보였다. 그 산맥 일대는 체로키 인디안들이 대대로 살아오던 삶의 터전이었다. 미국 역사에 별 관심과 지식이 없던 나였다. 1838년에 시작된 그 체로키 인디언들의 강제이주 사건은 ‘눈물의 여정(Trail of Tears)“으로 불린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건 나와 별 상관이 없는 그저 역사책 속에 나오는 한 줄 역사적 상식에 불과했다.



잠시 인디언 이주 정책에 대한 위키피디아의 영문 설명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인디언 강제 이주 법안(The Indian Removal Act)는 1830년 5월 28일 미국 제 7대 대통령인 앤드류 잭슨(Andrew Jackson)에 의해 승인이 되었다. 그 법은 남부에 머물던 미국 인디언들을 미시시피강 서쪽으로 이주시키고 그들의 삶의 터전을 백인들에게 내어주기를 강제한 법이다. 그 법은 남부 및 북서쪽에 머물던 백인 이민자들에게 대대적인 옹호를 받았지만, 미국 인디언들은 강력히 반대했다. 특히 스모키 마운틴 근처에 위치한 체로키 (Cherokee) 인디언 부족이 가장 강렬히 저항했다. 하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1838년 10월에 대대로 살아오던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떠나 미시시피 서쪽 인디언 보호 구역인 오클라호마(Oklahoma)와 알칸사(Arkansas)를 향해 ‘눈물의 여정’을 시작했다. 거의 1만 4천 명의 체로키 인디언들이 강제 이주 당했고 6개월의 긴 여정의 과정에 추위, 배고픔, 질병 등으로 인해 4천명 이상의 사람들이 사망하였다. 이로 인해 이 인디언 강제 이주는 대량 학살로 불리게 된 역사적 비극이다.

인디안 강제 이주 경로 (1830–1838) / 연초록 지역: 인디언 보호 구역 (현재 오클라호마 주)

출처: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Trails_of_Tears_en.png#/media/File:Trails_of_Tears_en.png


그런 인디언들의 슬픈 과거를 생각하고 몇몇 남은 체로키 인디언 후손들의 가난한 삶을 보며 나는 백인들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 내 마음의 한 켠에 자리잡았다. 미국 인디언들의 생김새가 우리와 닮아서 일까 아니면 약자의 편이 들고 싶어지는 정의감일까? 스모키 마운틴 일대 여행은 내 마음에 아련한 슬픔을 남긴 여행이었다.


❚드넓은 초원에 깃든 검은 그림자

그렇게 강제하다시피 빼앗은 그 넓은 땅은 그 이후 백인들이 들어와서 살도록했다. 그리고 거의 200년이 다 되어간다. 결국 총으로 빼앗은 그 곳은 총으로 밖에 지킬 수 없는 땅이 되어 버렸다. 내가 살고 있는 그 곳이 ‘누구라도 총을 소지할 수 있는 나라’라는 사실을 자주 깜빡하며 살았지만, 한 번씩 들려오는 크고 작은 총기 사건 보도는 나에게 이따금씩 두려움을 주었다.


❚2022년 5월 24일 미국 텍사스주 유밸디 총기사건

2022년 5월 24일 미국 텍사스주 유밸디에 있는 롭 초등학교에서 18세의 살바도르 라모스(Salvador Ramos)가 학생 19명과 교사 2명을 살해하고 17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사건 당일 라모스는 할머니의 얼굴에 총을 겨누고 심각한 부상을 입혔다. 학교 밖에서 약 12분간 총기 난사를 한 후 별다른 저항 없이 소총과 권총으로 무장한 후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라모스는 교실에서 한 시간 동안 희생자들을 살해한 후 미국 국경 수비대 요원에게 살해당했다. 사건의 명확한 동기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는 2007년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과 2012년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에 이어 3번째로 사망자가 많은 미국 학교 총기 난사이며 텍사스주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총기 난사 사건이다.


지난 화요일 텍사스 주, 초등학교에 발생한 21명의 인명 피해를 낸 사건은 또 한 번 미국 총기 사건의 심각성을 보여주었다. 18세의 고등학생이 정신적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파악된 그 아이가 그런 엄청난 짓을 해버린 사건이다. 물론 충격적인 사건이긴 하지만, 미국 사람들에게는 그 수많은 총기 사건 중에 하나로 또 취부 될 게 뻔하다.


❚흔한 미국 내 총기사건

미국에 머물며 마지막 3년간 살던 동네에는 밤이나 이른 새벽에 멀리서 총성이 들리곤 했다. 우리 아이가 다니던 교회 학교 근처에도 총기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다. 방과 후 프로그램으로 동네 뛰기 (Cross Country)라는 것이 초, 중, 고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늘 연습하던 공원에 총기 사건이 발생하여 몇 달 간 그 공원을 피해 다른 곳에서 연습을 했었다. 친하게 지내던 한 친구는 집 근처 쇼핑몰에 갔다가 어떤 사람이 총을 쏘는 것을 보고 겨우 겨우 도망 나왔다고 한 적도 있었다. 한국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인근 공립 초등학교에도 아침 출근길에 아이들을 등교 시키는 차량 행렬에서 총기 사건이 발생했었다. 사소한 일로 언쟁을 벌이던 두 남자가 차에 비치하고 다니는 총을 꺼내 발사한 사건이었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그날 학교는 문을 닫았고 그 사건은 지역 뉴스에도 났었다. 다행히 우리 아이들이 다니던 옆 학교라 가슴을 쓸어 내렸지만, 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나서도 늘 마음이 놓을 수 없었다. 내가 다니던 대학교도 한 번씩 총기 사건이 발생했다. 대부분 학교가 시작하기 전인 이른 새벽이긴 하지만, 그런 일이 생기면 모든 학생 및 교직원에게 주의하라는 경고성 이메일이 학교로부터 전송되었다.


❚미국에서 총이란

미국에는 일정 조건을 만족하기만 하면 18세 이상이라면 누구나 총을 구매할 수 있다고 한다. 총이라는 물건에 대한 정의가 참 달라 보였다. 나에게 총은 보기만 해도 다리가 후덜 거리는 공포스러운 물건이다. 하지만, 교회에서 만난 한 미국 백인 친구는 부인 생일 선물로 총을 선물해주기까지 했다. 그 친구 부부와 교회 예배를 끝내고 코스트코에 장 보기를 하러 같이 다닌 적이 있었다. 하루는 자켓 안쪽 주머니에 총을 넣어 왔다며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마트에서 간혹 총기 사건이 일어나니 가족 및 선한 이웃을 보호하겠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매주 교회 예배 시간에도 몇 몇 장로들이 돌아가며 총을 가지고 온다고 했다. 역시 같은 이유에서라고 했다. 우리가 다니던 미국 교회의 목사님도 총기 소지를 옹호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이었다. 총은 가족과 선한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기에 그걸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논리이지만, 그들의 역사를 돌아보면 절로 이해가 된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의 목적으로 총기 소지를 헌법이 허가한 나라이니 이를 막을 길이 없어 보인다.


https://youtu.be/d8eFmGp7pSk

<골든스테이트 워리어( Golden State Worriors) 미국 NBA 농구팀, 스티브 커(Steve Kerr) 감독 인터뷰/ 총기규제 강력히 촉구>

https://youtu.be/vQX6a2IvJC4

<2022년 5월 14일 미국 뉴욕주 버펄로 흑인 11명 피해자 중 최고령 여성 피해자의 아들/ 미 상원 의회에서 총기규제 법규 제정을 호소함>


❚좁디좁은 그러나 안전한 땅

5년의 유학을 끝내고 좁디좁은 우리 나라로 다시 돌아왔다. 그 세월 간 새로이 지어진 고층 아파트들이 참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숨이 절로 턱턱 막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에 이 곳에 대한 감사함이 절로 생긴다. 늦은 밤이라도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이곳이 감사하다.


늦은 밤이라도 마음 편히 강변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이곳이 참 감사하다. 지난 주말은 인근 공원에서 여러 가족들이 모여 조카의 생일 파티를 했다. 늦은 밤이었지만, 우리는 평화로운 휴식을 취하고 즐겁게 담소를 나눴다. 사소한 일상이지만, 총성이 들리는 동네에서 살다온 나로서는 감사함이 절로 생겼다. 총기 사건이 흔한 그 나라에서 두 아이를 데리고 5년이나 살다가 온 내가 참 용기 무쌍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무사히 다시 귀국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저녁 9시경 우리 동네 강변 산책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