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상하기 전에 예상하자
❙폴란드 갈 거예요.
우리학교 중3 학생A(남자)와 내(중3 담임교사, 영어 담당)가 방과 후 교실에서 나눈 대화였다.
나 : 고등학교 진학은 어디로 할 생각이니?
학생A: 전 우리나라 고등학교 안 다니고 다른 나라 갈 거예요.
나 : 어느 나라?
학생A: 저 폴란드 갈 거 예요.
나 : 폴란드? 얼핏 지난 번에 호주라고 한 거 같았는데, 아닌가?
학생A: 원래 러시아 갈려고 했는데, 전쟁이 나서 폴란드로 바꿨어요.
나 : 아~ .근데, 왜 폴란드 갈려고?
학생A: 저 그 나라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서요.
나 : 폴란드는 무슨 말 하는 지 아니?
학생A: 폴란드어 할 거예요. 근데, 저 러시아어 좀 할 줄 알아요.
나 : 그렇구나. 근데, 부모님도 같이 가시니?
학생A: 아니요. 혼자 갈 거예요. 중3 졸업하고.
나 : 부모님도 찬성하셨니?
학생A: 아니요. 그래도 저는 갈 거예요.
❙미국 갈 거예요.
우리학교 중3 학생B(여학생)와 내(중3 담임교사, 영어 담당)가 방과 후 교실에서 나눈 대화였다.
나 : 고등학교 진학은 어디로 할 생각이니?
학생B: 전 우리나라 고등학교 안 다니고 다른 나라 갈 거예요.
나 : 어느 나라?
학생B: 저 미국 갈 거 예요.
나 : 미국?
학생B: 네.
나 : 아~ .근데, 왜 미국에 갈려고?
학생B: 아빠가 넓은 나라에서 제가 교육 받는 걸 원하세요. 저도 좋을 것 같아서요.
나 : 미국에 아는 사람이나 친척이 있니?
학생B: 아니요. 없어요.
나 : 그렇구나. 근데, 부모님도 같이 가시니?
학생B: 아마, 엄마는 같이 갈 것 같은데, 아빠는 잘 모르겠어요.
나 : 어머니는 영어를 좀 하시니?
학생B: 아니요. 잘하시진 못 하세요.
❙필리핀에서 3년 정도 있었어요.
우리학교 중3 학생C(여학생, 초등학교 졸업 후 엄마와 두 동생과 같이 필리핀에 살다가 올 해 중3으로 전입해 온 학생)와 내(중3 담임교사, 영어 담당)가 방과 후 교실에서 나눈 대화였다.
나 : 중학교 생활은 어때?
학생C: 좀 힘들어요.
나 : 왜?
학생C: 공부가 생각보다 많이 힘들어요.
나 : 그래~. 필리핀에 있을 동안 코로나가 많이 심할 때였는데, 학교는 매일 다녔니?
학생C: 아니요. 주로 집에서 원격으로 수업했어요.
나 : 아~ .근데, 왜 필리핀에는 왜 갔었어?
학생C: 영어 공부하러요.
나 : 혼자 갔었니?
학생C: 아니요. 엄마랑, 제 동생 세 명이랑요.
나 : 그렇구나. 근데, 아빠는?
학생C: 아빠는 한국에 혼자 계셨어요.
나 : 영어는 좀 는 거 같니?
학생C: 아니요. 잘 모르겠어요. 필리핀에서 학교 안가고 온라인 수업을 좀 많이 해서요.
나 : 이제는 다른 나라 가서 살 계획은 없는 거니?
학생C: 중학교 졸업하고 캐나다 갈 생각이에요.
나 : 누구랑?
학생C: 엄마하고 동생들이랑요. 아빠는 한국에 있을 거예요.
내가 현재 근무하는 중학교에는 고등학교 때부터 유학을 가려는 학생과 이미 다른 나라에서 유학을 하고 온 아이들이 제법 있는 편이다. 나 또한 두 아이가 초4, 초1을 마치고 난 직후 그 해 겨울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혼자라도 떠나고 싶어 하는 남학생 A의 마음도, 자녀를 유학보내고 싶어하시는 학생B, C의 부모님의 마음도 잘 이해가 된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 가운데에도 많은 사람들이 본인 또는 자녀 때문에 유학에 관심이 있을 것이다.
❙나의 자녀 유학 경험 & 나의 유학 경험
사실, 사람은 본인이 직접 경험하고 나서야 깨닫는 부분이 참 많다. 그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한들, 관련 책을 읽어본다 한들 그것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혹시나 나의 자녀 유학 경험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다. 이미 다른 글들에서 나의 이력을 조금 설명했지만, 나는 우리나라 공립 중학교 영어교사로 20년간 근무하다 40세에 두 아이 (초1, 초4)와 남편을 데리고 미국 유학을 떠났었다. 그리고 5년간 미국에 머물면서 영어 교육 분야 석사와 교육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중학교 교사로 복직해 근무하고 있다. 엄마로서, 대한민국 교사로서, 그리고 영어 교사로서 가지는 나의 정체성의 특성 상 나의 그 5년간의 미국 유학 생활동안 홀로 조기 유학을 온 많은 대한민국의 어린이 혹은 청소년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유학 가기 전에 했으면 좋았을 일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미국 유학을 가기로 하룻저녁에 결정을 해버렸다. 이런 저런 디테일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열정 페이를 할 각오를 했으며 실제로 열정 페이를 하며 미국 유학을 다녀왔다. 되돌아보니, ‘미리 여려가지 측면을 생각해보고 유학이라는 큰 걸음을 옮기었었으면 좀 더 나았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현직에 있으면서 글의 서두에 소개된 그런 학생들을 자주 만난다. 그래서 ‘나의 경험과 나의 아쉬움 등을 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공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유학이나 자녀 유학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아래의 것을 미리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를 추천한다.
❙상세한 그림 그려보기
유학을 가면 어떤 생활을 하게 될지 미리 그려보자. 의식주 해결과 학교생활 그리고 나의 일상적 루틴은 어떻게 될지, 살게 될 그곳은 어떻게 생긴 곳인지, 학교는 어떤 지. 가기 전에 미리 상세한 그림을 그리는 게 힘들 겠지만, 요즘은 유투브와 SNS 및 다양한 온라인 정보 덕분에 훨씬 세부사항까지 예측 가능해졌다. 내가 유학을 갈 당시, 나는 내가 가서 살 게 될 곳에 큰 쇼핑몰이 있는 지 조차 알아보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에서 모든 가구를 새로이 장만해서 가져간 바보짓을 했다. 이유는 정말 어이없게도 ‘내가 가서 살 곳은 남부의 시골이니 아마 가구를 장만하기도 쉽지 않을 거야’ 하며 혼자 생각을 해버린 거였다. 그 일로 이사비용이 상당히 추가 된 일들도 있었다.
또, 학비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유학을 가서 장학금을 신청하면 될 거야.’ 하고 막연히 믿었다. 그런데, 막상 현지에 간다고 해도 나의 정보는 지금 가기 전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그저 학교 홈페이지를 뒤져서 장학금에 관해 알아보는 일이 전부이다. 그러니 그런 막연한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마치 현실이 될 듯이 믿는 건 참 위험한 일이다. 장밋빛 미래만 내 머릿속에 넣은 덕에 나 역시 현지에 가서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며 낙심하고 좌절한 날들이 수없이 많았다.
❙큰 그림 그려보기
현재 자신의 나이나 자녀의 학년을 시작으로 그 이후 5년, 10년 정도의 그림을 미리 그려보기를 추천한다. 많은 사람들은 유학을 우리나라 대학입시의 무한 경쟁에 대한 대안 책으로 선택하는 것 같다. 단순 지식 암기와 과잉학습을 강요하는 우리나라 교육을 자녀에게는 시키고 싶지 않은 부모의 마음이다. 나 자신도 그런 이유에서 자녀를 데리고 유학을 갔었다. 그리고 지식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언어적 경험을 시키기 위해서 유학을 결심했었다. 그 당시 우리 아이들은 초등학생이었기에, 고입이나 대입 그리고 취업에 관한 부분까지는 생각하지 않고 미국생활을 시작했다. 그 이후 첫째가 중학교로 진학한 이후 그제서야 미국 고등학교 및 대입에 대한 그림을 어렴풋이 그리곤 했었다.
또, 남편이 학생비자(F1)의 동반자 신분(F2)으로 미국 생활을 시작하다 보니 경제적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았다. 학생 비자의 경우 미국 내 경제활동이 거의 전면 금지되다 시피 한 상황이다. 학생 비자(F1) 신분으로 현지에서 경제활동을 시작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재정적 압박도 커져만 갔다. 그래서 경제활동이 가능한 비자로 바꾸려 애를 많이 썼었다. 이 또한 미리 사전에 계획을 하지 못한 부분이라, 그 전환점에서 생활적인 고충이 엄청 컸다.
만약 현지에서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한 한국 유학생일 경우, 이것은 상당히 심각하고 무거운 현실적인 문제이다. 졸업 후 당장 비자를 바꾸는 문제에 봉착한다. 케이스마다 다양하지만, 대부분 공통적인 방법은 자신의 스펙을 거의 무시당하고 최저 임금의 생활을 몇 년 감수해야 하는 것이 태반이다. 그 이후에도 영주권 및 시민권까지 취득하기에는 넘어야 할 것들이 많았다.
미국생활을 하면서 친하게 지낸 한 친구가 있었다. 그의 남편은 한국에서 특성화고등학교(구.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장 기술직으로 종사하다가 미국에 있는 한국 기업으로 이직을 하였다. 그 친구 가족은 미국에서 이미 경제활동이 가능한 비자로 왔고 한국에서 하던 비슷한 일을 하면서 영주권과 시민권을 따는 순조로운 길을 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처럼 한국에서 고학력자로 미국에 유학을 온 경우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 힘든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이고 험난한 로드맵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미국에서 살기 위해 일찌감치 아이를 유학 보내는 것이라면 이런 서로 다른 케이스도 한 번 눈여겨 볼 만 하다.
❙이유 적어보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또는 자녀를 해외로 유학 가거나 보내려는 결심을 했다면, 왜 그런 결정을 한 것인지 그 이유를 적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중에 유학을 가서 중간에 자기 의심이 들거나 회의감에 빠질 때를 대비해서 나의 현재의 초심을 정리하면 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 지나친 경쟁만을 부추기는 한국 교육이 싫다.
-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교육을 받고 싶다.
- 더 많은 기회가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
- 영어만은 확실하게 마스터 하고 싶다.
- 도전정신을 발휘해서 더 나은 나를 만들고 싶다. 등등.
❙잃어버릴 것 적어보기
이번에는 반대로 한국을 떠나서 다른 나라로 유학을 가게 되면 잃어버릴 것에 대해 적어보자.
예를 들어,
- 한 나라의 시민으로 누리게 되는 법적 권리(현지에 가면 그저 뜨네기로 취부된다.)
- 언어가 통하는 것 (현지에 가면 언어 장벽이 있을 것이다.)
- 공통의 문화를 가진 것 (현지에 가면 다양한 문화에서 온 사람들 사이의 오해도 많다.)
- 현재 내가 가진 신용도 (현지에 가면 금융권의 신용 등급은 제로에서 시작되어 시간이 흘러야 겨우 조금씩 쌓이게 된다.)
- 현재 나를 둘러싼 인적 네트워킹(현지에 가면 혈연, 학연, 지연과 같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던 나의 인적 네트워킹이 사라진 채 철저히 나 홀로 된다.)
- 손쉽게 받아 볼 수 있는 의료서비스(예를 들어, 미국에 가면 엄청난 의료비 때문에 쉽게 병원 진료를 받지 못 한다.)
- 효율적이고 빠른 각종 서비스들 (현지에 가면 뭐든지 느릿느릿 진행될 것이다. 그게 뭐가 됐던지 간에.)
- 막대한 생활비 및 학비 (현지에 가면 경제활동이 전면 금지 되므로 매달 쓰이는 집세, 생활비, 학비가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등등.
❙얻을 것으로 예상되는 것 적어 보기
가려는 이유와 어쩌면 비슷하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확실하게 얻고자 하는 그 무엇을 적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예을 들어,
- 영어 실력( 실생활영어 또는 학문적인 영어)
- 현지인들과의 교류 경험
- 다양한 사람들과의 새로운 인맥 형성
- 어려운 여건을 견디고 난 이후 더욱 강건해질 나 자신
- 평생에 소중한 추억 만들기 (현지 여행, 현지 생활인으로 경험)
❙잃어버릴 것과 얻을 것을 동시에 보기
결국 우리는 언제나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도록 되어 있다. 내가 잃어버릴 것을 진짜 잃어버려도 되는지, 없어도 살 자신이 있는지. 그리고 내가 얻을 것을 얻으려고 최선을 다해 살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 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출발선 상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상황을 철저히 받아들여야 한다.
❙나의 솔직한 조언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글 머리의 아이들이 고등학교 시절부터 다른 나라에 유학 가는 것을 말리고 싶다. 차라리 국내 고등학교를 외국어 고등학교나 특별한 교육 과정을 하는 곳으로 가기를 권한다. 현재 내가 있는 도시에는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고등학교가 몇 군데에 있다. 그 곳에서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해외에 진학할 때 고등학교 학력이 인정이 된다. 그 이후 대학교 또는 대학원 진학을 할 때, 다른 나라 유학을 생각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나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중,고등학교는 성격 형성에 아주 결정적이다. 엄마와 아빠의 부재는 아이의 성격 형성과 인격 형성에 아주 치명적이다. 부모 없이 홀로 외국으로 유학을 하는 아이들은 학교 교육 과정 이외의 모든 일상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어렵다. 방과 후 운동이나 친구 집에서 놀기, 주말 여행 등과 같은 것은 부모의 도움 없이는 이뤄지기 힘든 활동들이다. 특히 내가 살던 미국의 전형적인 중소 도시에서는 주말의 활동은 대부분 가족 단위로 이뤄지다보니, 홀로 유학을 간 경우에는 혼자인 그 서글픔을 감내해야 한다. 또, 친구네 집에 간다 하더라도 부모들끼리 친밀도가 있어야, 편하게 만날 수 있는 편이었다. 그래서 같은 한국인 엄마 말고는 다른 집 아이를 우리 집에 와서 놀게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드물다. 나 역시 미국 생활을 시작한 지 2년 정도가 흐른 뒤에야 우리 아이가 미국 친구 집에 놀러가는 게 가능했다. 마약과 총이 언제든 일상의 평화를 위협할 수 있는 나라이기에 보통 백인 중산층 부모들은 다른 집에서 아이들이 노는 것에 상당히 조심을 하는 편이었다.
또, 언어가 폭발적으로 발달되는 중,고등 학교 시절은 언어를 통해 친구 관계가 형성된다. 언어 장벽은 그런 이유에서 생각보다 교우관계를 형성하는 데 많은 지장을 초래한다. 반대로 한국으로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한국어 발달이 미흡한 상태라 돌아와서도 힘들다. 결국 영어, 한국어 두 언어의 중간 어디에서 언어가 멈출 가능성이 높다. 영어로도 생각 표현이 완전히 안되고 한국어로도 안 되는 그런 애매한 상황이 발생한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소중하게 여기는 부분은 같은 말, 같은 배경,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친구도 쉽게 만들어진다. 반대로 이것들은 한국을 떠나는 순간 완전히 빼앗길 부분이다. 현지에 도착하는 그 순간부터 다시 처음부터 완전히 혼자 힘으로 탑을 쌓아갈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그렇기에 그 첫 발을 내딛기 전에 좀 더 심사숙고하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