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함 그 너머에
❚대한민국 학교와는 영 딴판인 미국 공립학교
대한민국의 현직영어교사로서 잠시 휴직을 하고 두 아이와 남편을 다 동반하고 미국 유학을 떠났다. 두 아이를 미국 공립학교에 초1, 초4로 각각 입학시키고 그 직후부터 그 학교 도서관 도우미로 자원 봉사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주 가까이에서 미국 공립학교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었다. 1년 반의 세월동안 내가 가진 인상은 다음과 같았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아주 엄격한 규율을 지키게 했다.
학생들의 소지품 관리를 철저하게 했고 심지어 투명 책가방만 허용하는 인근 학교도 있었다.
교사들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며칠이건 학교를 결근하는 일이 잦아 수업 결손이 많았다.
선생님의 날이나 선생님의 생일에는 선물을 대놓고 요구했다.
아예 학부모 이메일로 그 선생님이 좋아하는 식당 이름이나 제품의 이름을 보내왔다.
교사로서의 소명의식보다는 그저 노동자로서 권리 옹호에 심혈을 기울이는 듯 보였다.
물론, 학교마다 교사마다 개인차이는 어디에든 존재한다. 하지만 전반적인 나의 인상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미국 공립학교는 우리나라 학교와 상당히 달랐다.
❚학교 담임 선생님을 우리 아이 과외 선생님으로 고용한 일
미국 학교와 관련하여 가장 충격적인 것은 현직 교사가 자신의 반 학생의 과외 교사로서 일을 하는 게 합법적이라는 것이다. 참 이상하고 이상한 일이었다. 청렴을 강조하고 강조하던 대한민국의 교육계에서는 꿈조차 꿀 수 없는 일이다. 뭔가 꺼림직한 느낌이 들긴 했으나, 엄연히 합법적인 일이고 다들 그렇게 하기에 나 또한 두 아이의 영어가 부족함을 보충하기 위해 담임 선생님을 과외 교사로 고용했다. 시간당 대략적으로 30불을 주면 흔쾌히 승낙을 했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 미국학교에서의 교육적 공정함은 우리나라에서의 교육적 공정함과 그 개념자체가 다른 것 같았다. 청렴을 철칙으로 교육받은 나로서는 도저히 그런 미국 교육을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다른 학부모들은 그런 상황을 전혀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 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미국에서 넘을 수 없었던 언어 장벽
영어교사를 엄마로 둔 우리 두 아이는 의외로 영어 사교육이나 조기교육을 받지 못한 채 미국으로 가서 초4, 초1로 미국 공립학교에 각각 입학했다. 둘째인 아들은 초1의 교육 내용이 그리 어렵지 않았기에 학교 적응이나 언어 적응에 별 무리가 없었다. 워낙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던 아이라 미국 학교에 가서도 영어 책 읽기에 아주 열심이었다. 그 덕분에 언어 장벽이 크게 높지는 않았다. 반면, 초1 동생과 비슷한 영어 수준을 가진 첫째는 초4로 전입한 데 에다가 책 읽기에도 흥미를 갖지 못하는 편이어서 언어 장벽은 늘 그렇게 그 아이의 학습을 가로 막았다.
첫째가 초등학교 6년이 되던 해 미국 교회 소속 작은 사립학교로 두 아이를 전학 시켰다. 보통의 사립 학비의 절반수준인 저렴한 학비였고, 신앙교육이 아이의 교육에 참 필요한 부분이다 싶었다. 기왕 미국에 온 이상 공립학교 뿐 아니라 사립학교도 경험해보는 게 다양한 문화 체험을 위해 좋을 것 같아 그런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립학교는 들어 갈 때 입학시험을 치른 후 학력이 일정 수준을 된 걸로 판단이 되어야만 입학이 된다.
그 학교 입학 시험결과 둘째는 입학에 별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 첫째의 학업 수준이 아주 저조하여 학교장 선생님이 나에게 이메일로 면담을 요청해오셨다. 학교장 선생님은 내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면서 다른 학교를 생각해둔 곳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없다고 했다. 공립 중학교로 보내기에는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았고 다른 사립학교는 학비가 한 달에 거의 130만원에 달했기에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상황을 이해하신 교장 선생님은 결단을 내리셨다는 듯이 우리 두 아이를 유일한 외국인으로 그 입학을 허가해주었다.
❚현직교사가 시험 유출시킨 사연
시작부터 많이 뒤쳐진 우리 딸은 유일한 외국인이기까지 하다 보니 학업 수준이 보통 아이들보다 많이 낮았다. 수학 같은 경우는 그런대로 괜찮았으나, 역사과목은 완전히 구제불능이었다. 영어가 원활하지 않으니 역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숙제며 시험 준비는 혼자서 해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역사 시험을 치기 며칠 전이었다. 평소 수업 중에 적어둔 노트 필기도 정확한 영어가 아니라 그걸로 공부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담임께 말씀드렸더니 아주 안타까워하시며 관련된 학습 자료를 주셨다. 그 다음 날 학교로 나를 부르시더니, 시험지를 미리 한 부를 주셨다. 교장선생님께 우리 아이의 상황을 의논을 드린 후 두 분이 내린 결정이라고 했다. 대신 내가 시험지를 들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아이에게는 말하지 말고 집에서 역사 공부를 시킬 때 시험문제를 내가 먼저 살펴보고 그것에 준해서 아이 역사 공부를 좀 시켜 달라는 거였다.
❚교육의 공평(equality), 공정(equity), 그리고 정의(justice/fairness)
교육에서 모든 문제의 핵심은 공평함과 공정함, 그리고 정의로움이다. 사전의 정의에 따른다면 '공평(equality)'은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고름'을 뜻하고 '공정(equity)'은 '공평하고 올바름'을 뜻한다. 아래 그림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 나무 펜스 너머로 키가 서로 다은 세 사람이 축구 경기를 본다고 해보자. 키가 아주 큰 사람, 보통인 사람, 아주 작은 사람에게 키와 상관없이 같은 높이의 발 받침대를 하나씩 모두에게 주는 공평(equality)을 발휘한다고 해보자. 키 큰 한 사람은 나무 팬스 너머로 축구 경기를 관람할 수 있다. 하지만 나머지 두 사람은 받침대 하나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그 둘에게 발 받침대를 1~2개씩 키에 맞게 더 주는 공정함(equity)을 발휘할 경우에서야 비로소 그들도 그 경기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애초에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그 펜스를 구멍이 숭숭 뚫린 펜스로 설치했었으면 어땠을까? 키에 상관없이 모두들 펜스 너머로 경기를 볼 수 있게 한 정의로움(justice)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교육은 결국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출처:
결국 선생님이 우리 아이에게 준 그날의 학습 자료와 시험지는 공평을 넘어 보다 공정한 시험이 될 수 있게 한 조치이다. 비록 해당 시험지를 한국어로 출제 했으면 정의로울 뻔 했으나 그것까지 할 여력이 못 되는 상황이니 공정함만으로도 아주 감사하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