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어 포기자였던 내가 영어교사가 되었다.
❚영포자(영어포기자)이었던 영어교사
아주 시골 중학교에 입학해서 생전 처음으로 영어 알파벳을 배웠다.
대도시로 이사 온 중학교 2학년시절부터 나는 제대로 ‘영어포기자’였다.
망망대해에서 작은 부표하나 부둥켜 안으며 둥둥 떠다니는 듯
조각조각의 문법 지식만 가지고
드넓은 영어 단락 글을 이해하려했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급기야 고1 첫 모의고사 100점 만점에 28점을 받고
영어는 결국 구제불능과목이 되버렸다.
하지만, 나는 영어교사 임용고시를 패스한 현직 영어교사이다.
미국 유학을 가서 영어 교육학 석사와 교육학 박사학위까지 취득 했다.
정말 아이러니하게,
현재 내가 느끼는 삶의 즐거움은 대부분 영어와 관련이 있다.
내가 자신감을 가지고 기꺼이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도
바로 영어다.
❚영포자(영어 포기자)
영어과목에 있어서 자존감은 바닥이었다. 심지어 중2때는 반 친구 중 영어 잘하는 친구에게 점심시간마다 영어 보충수업을 받을 만큼 심각했다. 고1모의고사에서 영어 28점을 받았다. 그 당시 영어를 잘 하려면 성문 기본 영어, 맨투맨 영어과 같은 문법책은 절대적인 필독서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어려운 문법용어, 그것도 한자에서 유래한 용어들로 가득 찬 그런 영어문법책들은 나에게 그저 알 수 없는 기계 사용설명서와 같았다.
❚영포자인 내가 가진 유일한 장점
망망대해에 혼자 둥둥 떠서 이리 저리 파도에 떠밀려 언제라도 엄청난 영어 파도에 뒤덮여 익사할 것 같았다. 그런 열악한 상황임에도 영어 학습자로서 나의 유일한 장점은 바로 그 절박함이었다. 살려달라고 발버둥치는 사람만큼 나는 절박했다. 고1 첫 모의고사 이후 나는 필사적으로 영어공부를 했다. 망망대해 영어 바다에서 익사하지 않기 위해 매일 연습했다. 수영을 잘 하려면 매일 끊임없이 연습해야 하는 것과 똑같이 매일의 연습이 유일한 방법이라 믿었다. 그렇게 고등학교 3년간 매일, 미련스럽게, 우직하게, 연습을 해내갔다. 그 덕분에 조금씩 영어에 자신이 생겼고 수능시험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영어 공부를 진정으로 즐기게 만든 한 사건
수능영어에 좋은 성적을 받았다고 해서 영어 공부를 진정으로 즐겼다는 말은 할 수 없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저 살기 위한 공부였지 즐거워서 한 공부는 조금도 아니었다. 게다가 그 당시 나의 영어 공부는 그저 문법, 단어, 독해에 편파적으로 몰입한 공부였다.
수능을 마친 겨울 방학 중 아주 소소한 계기로 나의 영어에 대한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고3겨울 방학이 시작될 무렵 처음으로 영어회화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한국인 영어 선생님께서 나를 포함한 고3 학생 6명 가량을 한 교실에 두고 기본 생활영어 문장을 가르쳐 주었다. 그 때 익힌 문장은 그렇게 고급 진 영어 표현도 아니었다. 기껏해야 ‘니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 뭐니? (What’s your favorite season?)’와 같은 것들의 나열이었다. 그런데 그 선생님 수업의 초점은 그 문장들을 최대한 통문장으로 그것도 발음과 억양을 잘 살려서 암기하고 서로 연습하는 것이었다.
영어 교사로 보자면 교재연구도 필요 없고 그저 학생들에게 외워오라고 시키고 외웠는지 확인하는 정도의 수업으로 거저먹는 수업인 셈이다. 그런데, 그 수업에서 처음으로 접한 게 하나 있었다. 요즘에서 대유행하는 쉐도잉(Shadowing)기법이다. 지금부터 거의 20년 전인 그 당시에 그 기법을 접한 나는 그 쉐도잉 기법을 매일 같이 연습했다. 심플한 문장을 몇 십번이고 원어민의 목소리를 쉐도잉하는 연습을 했다.
문장을 통으로 암기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문장을 원어민 발음처럼 그럴 듯하게 말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참 놀라운 변화였고 발견이었다. 심플하기 짝이 없는 그 생활 영어 문장들을 아주 열심히 연습했다. 다음 날 영어 학원에 가서 외운 문장을 말해 보는 활동을 설레이는 마음으로 기다리곤 했다. 그 수업 수강생들은 모두 나와 같은 학년이라 나름 우쭐한 그런 느낌마저 가졌었다. 내 평생 영어와 관련하여 처음으로 느끼는 우쭐함이었다.
❚내 삶의 레버리지
그날의 작은 우쭐함은 그 이후 내 삶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 놓았다. 그것의 레버리지는 상상 이상이었다. 그런 작은 자신감은 더 멋지게 영어를 하고 싶은 욕구로 이어졌다. 영어 공부에 진정으로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 이후 영어 회화 학원 및 영어 라디오 방송 , 영어 시트콤 청취, 영어 뉴스 청취를 열심히 했고 토익시험 공부, 영어 스피킹 시험 공부 등 닥치는 대로 했다. 그리고 영어 관련 동아리에 들어서 대학시절 내내 영어 프리젠테이션, 영어 스터디, 영어 스피치, 영어 연극 등 아주 다양한 활동에 참여했다. 대학 졸업 후 중등 영어 교사로 임용이 되었다. 교직 16년차 무렵 미국유학을 떠나 영어 교육학 석사, 교육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영어 전문가가 되었다.
❚영어공부가 즐거운 영어 전문가
영포자였던 그 당시 나로서는 현재의 내 모습을 상상하기도 힘들다.
현재 내 삶의 키워드는 영어다.
영어와 아주 깊은 인연을 맺었다.
영어공부가 즐겁다.
영어 전문가로 일하는 지금이 참 좋다.
나의 외국어 학습경험을 언어학자들은 어떻게 해석할까?
다음 글에는 세계 유명한 언어학자들이 말하는 성공적인 외국어 학습과 그 결정 요인에 대해 알아볼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