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들의 영어 공부 로드맵
❚세계 공용어로 영어 (lingua franca)
영어는 더 이상 미국, 영국, 호주 등의 유럽피안들의 언어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온라인 세상에서 국경을 넘나드는 수많은 경제, 문화, 정치와 관련된 일들은 대부분 영어로 이루어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은 지구촌 사람들은 이제 그런 온라인 세상을 더욱 더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최근 가장 인기 있는 소셜 플랫폼 중 하나인 유튜브를 예로 들어 보자. You Tube 공식 인증 컨설턴트인 Alan Spicer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나라별 및 언어별 유튜브 조회 수를 제시하였다. 그 중 상위 5개나라는 미국, 인도, 영국, 브라질, 태국이었다. 언어별 조회 수에서는 영어(1,428 billion)가 나머지 세 개 언어(인도어, 포르투갈어, 태국어)의 조회 수를 합한 것(863 billion)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 https://alanspicer.com)
만일 우리가 컨텐츠 소비자 즉, 유튜브 시청자일 경우 영어로 검색어를 넣을 경우, 훨씬 더 많은 정보를 볼 수 있음을 나타낸다. 반대로, 컨텐츠 제작자 즉, 유튜버일 경우, 자신의 채널에 영어로 된 비디오를 업로드하면 거의 전 세계 사람들이 잠재적 시청자들로 산정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소수의 인구가 사용하는 한국어만 가지고는 그 온라인 세상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 우리도 온라인 세상의 멤버로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AI 시대에 외국어 학습이 필요할까?
대부분의 영어 학습자인 우리는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받을 때마다 자신의 영어 능력을 향상시키려는 마음보다는 온라인 실시간 번역기, 파파고와 같은 외부적인 도구에 더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AI기술의 발달과 함께 우리의 언어 장벽은 많이 낮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구글 번역기나 파파고와 같은 온라인 번역기는 왠만한 문서를 다른 언어로 자동번역을 한다. 하지만, 그런 AI를 활용한 언어 번역기도 여전히 한계가 있다. 유튜브의 자동 자막을 한국어로 설정해두고 영어로 된 영상을 본 경우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상한 번역으로 인해 원래 메시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컨대, 링거병을 꽂고있는 친구가 있다고 하자. 당신은 그 친구와 축구를 하고 싶을까? 축구를 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혹시나 링거 줄에 걸려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지?’하는 걱정이 앞설 것이다. 많이 과장된 비유이지만, 우리가 온라인 번역기를 사용하면서 원어민들과 대화를 한다는 것은 마치 링거병을 꽂고 그들과 축구를 하는 것과 같다. 참 불편하고 부자연스럽다. 차라리 축구를 아예 못 배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런 거추장스런 장비가 없이 축구를 할 수 있는 사람과 하는 게 더 즐거울 것 이다.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것도 마찬가지다. 유창한 영어가 아니라도 비언어적 도구(눈치, 몸짓, 소리, 표정 등)를 잘 사용하거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영어 능력의 최대치를 잘 발휘하면 일상의 의사소통은 가능하다. 그런 장비 없이 나누는 대화에서 더 깊은 교감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영어를 완벽하게 하지 못한다고 스스로 주눅들 필요는 없다. 조금씩 자신의 능력치를 늘려 가며 좀 더 섬세한 의사소통까지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노력을 하면 되는 것이다.
❚영어 공부의 로드맵
Cummins, J. (2008)라는 유명한 언어학자는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에게 두 가지 갈래의 길이 있다고 했다. 그 중 하나는 일상의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BICS: Basic Interpersonal Communicative Skills)을 키우는 길이고 나머지 하나는 학문적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CALP: Cognitive/Academic Language Proficiency)을 키우는 길이라고 한 바 있다.
‘BICS (Basic Interpersonal Communicative Skills)’는 쉽게 말해서 ‘일상의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를 말한다. ‘I like dinosaurs. (나 공룡 좋아해)’와 같이 대체로 문장이 짧고, 일상 생활을 소재로 한다. 또한, 깊은 사고를 요구하지 않는다. 대체로 1~2년의 학습 기간이 필요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한편, CALP(Cognitive/Academic Language Proficiency)은 ‘학문적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을 말한다. 예를 들어, ‘According to the reading passage, do you feel John is guilty or innocent?(읽은 글에 따르면, John은 유죄라고 생각하니, 무죄라고 생각하니)’에서처럼 BICS에 비해 어휘가 다소 추상적이고 문장의 구조도 복잡하며 깊은 사고를 요구한다. 전문가들은 이 능력이 키워지기 위해서는 최소 3년에서 최대 9년가량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출처: https://twitter.com/miri_munn/status/971080738190880771
❚우리가 받아온 대한민국 영어 교육
초등학교: BICS에 집중
중학교 : BICS 유지 + CALP 시작
고등학교 : BICS 약화 + CALP 본격적 집중
대학교/대학원: CALP 몰입
1997년부터 도입된 초등학교 영어 교육은 기본 영어 회화 능력(BICS) 향상을 목표로, 주로 듣기, 말하기 기능에 중점을 두고 있다. 중학교레벨의 영어 교육은 기본 영어 회화 능력이 바탕을 이루고, 학문적 영어 사용(CALP)을 위한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된다. 이때에 어휘 및 문법 지식이 많이 형성되고, 읽기에 많은 중점을 두며 쓰기도 주변적 기능으로 다뤄지고 있다.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영어는 대부분 학문적 영어 사용 능력에 편중되어 있다. 나머지 기능(듣기, 말하기, 쓰기)이 거의 무시되는 현상이 보이고 읽기에 과잉 집중을 하는 편이다. 기본 영어 회화 능력은 아주 주변적인 내용으로 다루어진다. 끝으로 대학교/대학원에서 영어는 학문적 영어 사용 능력에 집중되어 있으며, 역시 읽기에 과잉 집중되어 있다.
결국, 1997년 이전 초등학교를 다닌 대부분 현재 기성세대들은 우리나라에서 영어 교육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기본 영어 회화 능력에 초점을 둔 수업을 받지 못 했다. 그저 학문적 영어 사용능력을 향상하기 위한 초기 단계에 잠시 기본 영어 회화능력을 키우는 활동을 할 뿐이다. 전국적으로 실시하는 EBS 영어 듣기 시험은 그런 기본 일상 영어 회화능력 중 말하기를 제외한 듣기 기능만을 측정하는 평가 도구이다. 일상 회화를 하기 위한 말하기, 읽기, 쓰기와 같은 것은 수행평가로 평가하게 되어있지만, 학교 마다 그 행태가 각양각생이라 딱히 그런 일상 회화능력을 평가한다고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편, 학문적 영어 사용능력은 지나칠 만큼 아주 오랜 세월동안 연마하도록 교육하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영어시험은 그것을 반증한다. 수능 영어의 듣기 파트는 일상생활을 소재로 하는 쉬운 영어로 구성되어있다. 학문적 영어 사용을 위한 듣기 능력은 완전히 제외되어 있다. 반면, 수능 영어 읽기 파트는 원어민조차 파악하기 힘든 어려운 지문으로 가득 차 있다.
결국, 우리나라 영어 교육은 BICS와 CALP라는 각각의 갈래 길에서 4가지 기능(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를 균형있게 발달시키지 못하고 있다. 물론 기본 회화 능력과 학문적 영어 사용능력이 서로 공통요소가 없이 완전히 분리된 그런 트랙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영어 교육은 기본적으로 말하고 듣는 능력을 키우도록 충분한 시간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 결과 대부분의 영어 학습자들에게 4가지 언어 기능 간 비대칭적인 발달이 일어나고 있다.
듣기: 아주 초보적인 생활영어 듣기 교육
말하기: 거의 전무후무한 교육
쓰기: 문장단위의 단순 번역 교육
읽기: 지나치게 오랜 시간 지나치게 어려운 내용까지 읽게 하는 읽기 교육
❚평생 영어 공부시대
아마도 학자들에게는 읽기 능력이 결정적 스킬일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일상을 살고 학자가 아닌 일반인인 우리에게는 영어로 듣기, 말하기, 쓰기 능력이 골고루 중요하다. 대학교까지 졸업하고 난 뒤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읽기능력을 제외한 나머지 세 가지 기능(듣기, 말하기, 쓰기)의 결핍을 깨닫는다. 또, 각종 영어 시험들은 우리는 일상적인 소재를 다루는 의사소통과 자기 전문 분야의 내용을 다루는 의사소통 모두가 가능한지를 측정하고 있다. 그것도 4가지 기능(듣기, 말하기, 쓰기) 모두에서 말이다.
우리는 학교를 떠나 이제 알아서 영어를 평생 공부하도록 요구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말 못하는 영어 교육을 받은 탓에 직장인이 되어서야 이른 새벽, 영어 회화 학원을 다닌다. 모자라는 영어 듣기 능력을 채우기 위해 각종 영어로 된 프로그램을 청취한다. 업무상 필요한 이메일을 쓰기 위해 우리는 그제서야 각 분야에 필요한 쓰기 능력을 남몰래 기르려 애쓰고 있다.
우리나라의 영어 교육은 진정한 언어 능력을 기르는 과목이 아니라 그저 한 줄 세우기를 위한 도구로 전락한 상황이다. 무엇 때문에 그런 상황이 된 건지는 또 다른 차원의 토론이 될 것이기에 여기서는 잠시 접어두려 한다. 다만, 그 시스템에서 교육 받은 우리 개개인은 이제 어떻게 미발달된 그 부분을 채워나가야 할지 고민할 때인 것 같다.
참고문헌:
Cummins, J. (2008). BICS and CALP: Empirical and theoretical status of the distinction. Encyclopedia of language and education, 2(2), 7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