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업병인가? (2022. 7. 31)
❚우린 멋진 4인방
지난 4월 인근 대도시에서 3대3 길거리 농구 대회를 처음으로 아들은 농구 대회에 아주 열심이었다. 함께 출전하는 아이들은 우리 아들보다 1살 위인 중3 형들이었다. 우리는 동쪽 끝자락에 그 세 명의 형들은 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중학교를 각각 다닌다. 아들은 그 형들의 학교까지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1시간 10분 남짓한 거리를 마다않고 농구 연습을 하러 가곤 한다. 또 그 형들도 우리 동네 실내 농구코트로 원정을 와서 함께 농구 연습을 하기도 했다. 대부분 주말은 두 학교 중간 지점에 있는 큰 공원에 모여서 코치와 함께 농구 연습을 한다. 한국으로 귀국한 후 6개월 후부터 현재까지 거의 일 년 이상을 그렇게 농구 연습을 함께 해오던 형들이었다. 그래서 지난 4월에는 처음으로 3대3 길거리 농구대회를 나가서 우승까지 차지했다. 상금은 50만원이나 되었다. 하루 즐겁게 운동하고 용돈까지 두둑하게 챙긴 날이었다.
그 네 명은 각자 체격조건이 달라 맡은 포지션과 팀에서의 역할이 조화롭게 잘 어울어졌다. 188Cm의 장신인 준현이(가명), 비만경계였다가 다이어트 중인 현빈이(가명), 중3 평균키에 날렵한 민성이(가명), 그리고 중2 평균키 정도에 장거리 슛을 열심히 연마 중인 우리 아들 우진이(가명)가 그 4인방이다. 4월의 첫 대회에서 보여준 그 4인방의 팀웍은 참 보기 좋았다. 코치가 없어도 자기들끼리 작전을 짜고 서로 의기투합해서 경기를 이끌어 우승까지 차지했다. 지켜보는 부모로서 참 뿌듯했었다. 그 첫 대회를 시작으로 여러 번 더 대회를 참가했다. 4인방은 수도권에서 열리는 대회도 마다않고 참가하는 열성을 보이기도 했었다.
❚마음이 안 맞으면 아무 일이 안 돼!
어제는 우리 집 근처 체육관에서 3대 3 농구 대회가 있었다. 그런데 대회 당일인 어제 아침부터 그 중3형들 사이에서 뭔가가 불편한 기류가 흐르는 걸 느꼈다. 대회 전날 현빈이만 준현이집에서 잤다고 한다. 거기서부터 나는 뭔가가 낌새가 느껴졌다. 게다가 대회로 오는 아침, 준현이 부모님차에는 민성이가 포함되지 못 했다. 결국 현비이가 민성이를 배타적으로 대한 데서 감정싸움이 시작된 거였다.
막내인 우리 아들은 그저 멀뚱멀뚱 지켜만 볼 뿐 이었다. 형들 사이의 어색한 감정들을 막내인 우리 아들이 나서서 처리하지는 못 할 이다. 인솔한 보호자인 나조차도 대회 직전인 그 상황에서 아이들의 감정을 건드리는 게 현명할 것 같지 않아 묻어두었다.
어쨌거나, 대회는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서로에게 아무런 말도 파이팅 넘치는 제스추어도 일절 하지 않았다. 팀웍이 없어졌다. 넣는 골은 늘 네트를 피해갔다. 가끔씩 멀리 3점 라인에서 쏜 아들의 공이 가뭄에 단비처럼 네트를 뚫었다. 하지만 그 마저도 많은 골 미스와 패스 미스등으로 아이들은 4강 진출에도 실패 했다.
❚멀뚱멀뚱 지켜만 보는 아들
우리 아들은 또래 남자아이들의 그런 감정적 소모전에 대한 처세술이 없다. 그저 몸으로 운동하는 것 말고는 세세한 감정의 영역은 아는 게 없다. 사실 겪어본 적이 없다. 미국에서 아이들은 서로에게 참 솔직하다. 비록 금전적인 문제가 있다하더라도 서로 말로 속 시원히 털어 놓고 해결을 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곳 한국은 그런 솔직한 면이 조금 부족하다. 서로 간에 감정적 시그날과 눈치 뭐 이런 것들을 봐야한다. 말도 참거나 가려해야 한다.
그 아침의 차량 문제 말고도 나중에 알고봤더니, 현빈이가 민성이에게 돈을 좀 빌리고 갚지를 않고 있다고 했다. 그 바람에 현빈이와 민성이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고 한다. 게다가 현빈이가 대표로 대회측으로부터 첫 대회 우승 상금을 세금제외 상금 45만 가량을 받았다. 그런데 현빈이가 그 상금을 투명하게 나누지 못 했다.
어제 대회를 끝내고 현빈이와 그런 불편한 감정도 풀겸 통화를 했다.
“현빈아~ 오늘 고생 많았다. 그런데 뭐 물어 볼 게 있어서~”
“지난 번 옆 도시에서 한 첫 3대 3 대회 상금은 총 얼마가 입금되었니?”
“45만6천원요. 5만 6천원은 코치님한테 감사표시로 하기로 했고, 나머지 40만원을 각자 10만원씩 나누기로 했어요.”
“그런데, 코치님이 돈을 받으셨니?”
“아니요. 안 받으시고 저보고 하라길래 그냥 제가 5만 6천원을 했어요.”
.......?? 난 할 말이 없었다. 순간 어이가 없었다. 그 아이의 상식이 이해가 안 되었다.
“코치님이 그 돈을 사양하고 너희한테 준 게 너희 같이 하라고 준 거지 왜 너 혼자 하라고 준 거 겠니?”
“그냥 코치님이 저한테 하라 길래 제가 했는데요?”
“그건 상식에 맞지 않는 행동이다. 공동 우승 상금으로 탄 돈인데 니가 그 돈의 일부를 더 가져갈 이유가 있니? 그리고 친구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니?”
“잘 기억이 안 나는데, 그 때 그 돈 쓸 때 준현이도 같이 있었어요.” (혼자 쓴 게 아니라고 말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우리 아들은 그 대회 상금을 그 대회 후 거의 두 달이 지나서 내가 그 현빈이에게 먼저 문자를 넣고 나서야 겨우 받았다. 그마저도 일부가 없어진 채로 받았다.
“현빈아, 그 대회 상금 그냥 1/N하기로 했다면서? 아줌마 계좌번호 알려줄 테니 그리로 보내줄래?
“근데, 제가 우진이 (우리 아들이름, 가명) 유니폼비를 그 돈에서 내주고 대회 참가비도 내주고 10만원 중에 3만 8천원만 남았어요.”
“ 아~ 그랬구나, 니가 관리해주느라 고생이 많았네. 그럼 잔금을 그 계좌로 넣어 주면 되겠네.”
“근데, 제가 그 돈 다 써버려서 지금은 없어요. 제가 천천히 갚아드리면 안될까요?”
헉!. 난 어이가 없었다. 이 맹랑한 중3 남학생을 내가 어째??
아들은 귀국한지 이제 겨우 2년째라 한국말도 또래 아이들처럼 야무지게 하질 못 한다. 물론 한국적인 그 눈치 시그널을 꿰뚫는 데도 기술이 부족하다. 그런 아들을 대신해서 나는 그 중3아이들 틈바구니에 끼어서 금전적인 상황의 교통정리를 해줘야 했다. 어제 대회 당일의 그 불편한 감정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현빈이와 통화를 하면서 현빈이라는 아이의 잘못을 알게 되었다.
❚미묘한 아이들 감정싸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준현이는 민성이의 농구공을 허락없이 쓰다가 대회장에서 그 공을 분실해버렸다. 그리곤 사과도 없이 모른 척 해버렸다고 한다. 그렇게 딸랑 3명 뿐 인 중3형들은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 틈에서 막내인 우리 아들은 영문도 모른 채 그저 풀리지 않는 경기를 묵묵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3점 슛을 3번이나 성공시킨 반짝 운이 아들에게 왔었다. 하지만 돈과 관련하여 신의가 깨어진 아이들은 경기 당일 서로의 감정싸움으로 인해 결국 경기에 참패를 하고 말았다.
❚직업병인가?
미묘한 아이들 감정싸움을 혼자 알게 된 나는 엄마로서 그리고 교사로서 그냥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오늘 아침 마음이 영 불편하여 다시 현빈이에게 전화를 했다.
“현빈아, 우선 금전적인 투명성을 위해 대회로부터 받은 입금 상황을 화면 캡쳐해서 친구들에게 공유해. 개인 사비로 써버린 5만 6천원에 대해서는 친구들에게 먼저 본인의 실수를 말하고 1만 4천원씩 갚는 게 맞는 것 같다. 갚지 않고 그냥 말로만 미안하다고 하면 아마도 친구들은 이제 돈과 관련해서 너를 더 이상 믿지 않을 거다. 너는 너의 신뢰를 팔아서 5만6천원을 갖고 간 셈인 거야. 돈을 갚고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되찾던지 그걸 팔던지 그건 본인이 알아서 잘 판단하길 바란다. 우리 아들, 우진이 한테도 다른 친구들한테 주는 것과 같이 1만 4천원을 줘라. 갑자기 돈이 필요한 상황이 되어 버렸으니, 부모님께 상의해서 문제를 빨리 해결하면 제일 좋을 것 같다. 하지만 니가 그렇게 하기가 싫으면 그건 니가 알아서 해라~.” 그렇게 전화로 일장 조언을 했다.
❚멋진 팀웍이 다시 생기길
미안하다고 연거푸 말하는 영빈이는 여전히 민성이에 대한 원망이 깔려있었다. 전화 끝자락에 현빈이가 이제 민성이랑 3대 3대회에 안 나갈거라고 했다. 그리고 준혁이도 민성이의 뾰류퉁한 성격이 마음에 안 들어서 아마도 민성이랑 3대 3대회에 안 나갈 것 같다고 말했다.
현빈이와 통화하기 전 민성이와 통화를 먼저 하여 그 셋 간의 감정싸움에 대한 대략적 가닥을 잡았었다. 결국 잘못을 저지른 현빈이와 준현이 두 아이는 같은 편을 먹고 지극히 상식적이고 경우 바른 민성이를 따돌린 셈이다. 마음이 아팠다. 민성이가 옹졸하다고 영빈이는 욕하지만, 나는 민성이 편을 들고 싶어졌다. 하지만 금전적인 부분이외에 아이들 사이의 감정만큼은 아무리 어른이라 하더라도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제 경기가 어쩌면 그 4인방의 마지막 경기가 되었을 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아이들이 서로의 허물을 인정하고 마음을 다시 합칠 날이 오기를 바란다. 함께 의기투합하면서 같이 농구대회를 나갈 형들을 졸지에 다 잃어버린 우리 아들은 이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 버렸다. 집 근처 실내 농구코트에 그 형들과 같이 농구 연습을 할 계획으로 거금 2만 5천원을 들여 대여했지만, 그 형들은 오지 않는다고 한다. 같이 온라인 게임을 할 친구들은 많아도 함께 농구할 아이들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라도 가서 농구연습을 할 거라면서 태워달라는 아들 뒷모습이 그저 대견할 뿐이다. 마음이 쓰였던지 남편은 아들의 농구메이트를 자청하며 일찍 일을 마치고 실내 농구코트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