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희생의 무가치

왜 아무도 희생하지 않는가?

by Darlia Park 박다리아

희생이 무가치해진 시대에 대하여, ​​우리는 왜 더 이상 희생하지 않는가?

나는 오래도록 ‘희생’이라는 단어의 숭고함을 의심하지 않고 살아왔다.

부모의 희생, 가족을 위한 희생, 꿈을 위한 희생. 기독교적 신앙이 삶의 바탕에 있었기에, 이 단어는 낯설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희생을 말할 때, 그 의미가 미묘하게 어긋나기 시작함을 본다.

그렇다 해서 '희생'이라는 의미를 미련하게 보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이렇게 느끼는 듯하다.

“그게 뭘 바꾸는데?”

“내가 애써도 달라질 게 없어.”

“누군가에게도 의미 없고, 나에게도 남는 게 없잖아.”

이 감각과 말에 의하면 이기심에서 나온 게 아니며, 오히려 굉장히 정직한 자각에 가깝다고 느낀다.

우리는 지금 희생을 거부하는 시대가 아니라, 희생이 더 이상 ‘가치 있는 선택’으로 보이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의미를 순도 높게 살기는 어려울지라도 존재함을 부정할 수는 없다. 마치 공기를 볼 수 없지만 존재함을 부정할 수 없듯

물리적으로나 내적으로나 희생은 역사의 반복 속에서 누군가의 희생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희생으로 인한 무언가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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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의 의미가 사라진 게 아니라, 잘못 쓰여 온 게 아닐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난 헌신 같은 건 안 해.”

“난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싶지 않아.”

이런 선언은 거의 없다. ​대신 훨씬 조용하고 무기력한 말들이 떠돈다.

“각자도생이지.”

“이 정도면 충분히 했지.”

“내 인생도 버거운데…”

이 말들은 희생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희생의 무효화에 가깝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곳에,

아무 책임도 돌아오지 않는 관계에,

아무 의미도 남지 않는 구조에

희생해 왔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 사람들은 묻는다.

​“이 희생은, 정말 필요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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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투자할 만한 가치에 희생한다’는 말은 틀렸다.

​​요즘 자주 들리는 말이 있다.

“그래도 투자할 만한 가치에는 (헌신) 희생할 수 있지 않나?”

하지만 이 말에는 결정적인 오류가 있다. 희생은 투자와 전혀 다른 개념이기 때문이다.

​투자는 돌아오기를 전제한 선택이며 손익을 계산하고, 보상을 기대한다.

하지만 본래의 희생은 다르다.

희생은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알고도 선택하는 행위다.

​‘가치가 있으니까 희생한다’는 말은 희생을 경제 논리로 환원시켜 버린 것이며

그 순간 ​희생은 더 이상 희생이 아니다. 계산된 선택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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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가’의 문제다

​상대가 얼마나 가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질문에 가깝다.

- 나는 어떤 인간으로 살고 싶은가?

- 무엇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남고 싶은가?

- 무엇을 지키는 존재가 되고 싶은가?​

그래서 진짜 희생은

“상대가 가치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그렇게 살고 싶어서” 일어난다.

부모가 아이를 위해 감내하는 선택이

계산이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인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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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지금, 희생이 무너졌는가?

문제는 대상이 아니다.

문제는 의미 구조다.

과거에는 관계가 쉽게 끊어지지 않았고, 공동체가 개인을 보호했고, 책임이 어느 정도 순환했다

그래서 희생이 가능했다. 하지만 시대가 개인화가 더 익숙히 자리 잡은 지금은 다르다.

관계는 언제든 종료될 수 있고, 애쓴 사람만 남고, 구조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희생하지 않는 게 아니라,

희생할 ‘방향’을 잃은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느끼는 공허의 정체는 무엇이길래?

​​요즘의 내외적으로 느껴지는 허기는 말들 속에 숨어 있음을 엿보곤 한다

“내 마음을 쏟아도 닿을 데가 없어.”

“내 감정이 머물 자리가 없어.”

“내가 누구인지 비춰주는 관계가 없어.”

이건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며, 사랑의 실패도 아니다

희생이 향할 곳이 사라진 시대의 공허다.

희생이 무가치해진 게 아니라

‘의미 없이 쓰여 온 희생’이 끝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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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희생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희생이 정확한 자리로 돌아가는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우리는 이제 희생해야 할 관계와 희생해서는 안 될 관계를 구분하는 감각을 배우고 있다.

​이건 냉소가 아니며, 과거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시대 감각이다.

희생은 여전히 필요하다. 언제나 현존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이제는 아무 데나 쓰이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이 변화는, 희생의 몰락이 아니라

희생에 대한 인간의 성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