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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차 May 29. 2024

피부과에 가다

평생의 숙제 여드름 흉터치료 시작!

오늘의 소비 요약


총 사용비용 : 약 200만 원 ( 회당 약 35만 원 )  

가성비 3.5/5

재구매 의사 5/5

좋았던 점 : 자존감이 올라간다.

아쉬웠던 점 : 시술시간이 길어 시간이 아깝다.




나의 가족 중 여드름 피부인 사람은 없다. 고등학생 때까지 피부고민은 나와 먼 일이었다.

대학생이 되자 급격히 피부가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건성 피부인데, 여드름 피부는 다 지성인줄 알았다. 여드름이 나길래 나도 지성피부로 바뀐 건가 했다. 기존에 사용하던 기초제품을 모두 기름을 없애는 제품으로 바꿨다.

맞지 않는 제품을 쓴 것이다. 유수분의 균형이 깨지자 화농성 여드름이 났다. 이때부터 내 볼에는 여드름이 가득했다. 명절 때 나를 보는 모두가 한 번씩 내 피부를 언급했다. 내 상태는 내가 제일 잘 알았다. 내가 봐도 얼굴이 엉망이었는데, 사람들이 꼭 한 번씩 입을 대니 참견 같아 기분이 상했다.

스트레스가 심해져 근처 피부과에 갔다. 대학생인 내가 감당하기에는 높은 금액대였다. 내 통장 상황상 치료는 무리였고, 약을 몇 주 먹었다. 그마저도 효과가 없어 관뒀다. 취업 준비를 시작하자 여드름은 폭발했다.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게다가 코로나19 때문에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다. 내 피부 상태는 더 안 좋아졌다. 그래도 마스크를 끼면 여드름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여드름의 존재를 애써 무시하며 지냈다. 압출하지 않고 손으로 만진 여드름은 모두 얼굴에 흉터로 남았다.


마스크 벗을 때가 되니 피부가 신경 쓰였다. 얼룩덜룩한 여드름 흉터가 마치 내 20대의 고생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다행히도 취직을 하고는 여드름이 심하게 올라오지는 않았다. 흉터는 그대로였다. 돈을 아낀다는 이유로 취직 후에도 흉터 치료를 하지 않았다. 피부가 나쁘다고 해서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흉터치료 안 한다고 굶어 죽는 것도 아닌데 뭘..'

그때 나는 피부과를 연예인들이 가는 곳쯤으로 생각했다. 당장 문제가 일어나는 곳 이외에는 돈을 쓸 줄 몰랐다. 얼굴로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내가 피부과에 가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역설적으로 새해 위시리스트에는 흉터 치료가 빠지지 않았다. 아닌 척, 모른 척했어도 안 좋은 피부에 신경이 쓰였나 보다. 엉망인 피부 탓에 외모에 열등감이 생기도 했다. 돈을 쓰겠다고 결심한 뒤, 첫 소비로 피부과를 택했다. 100만 원이 넘는 고액의 소비였다. 흉터 치료는 한 회당 35만 원 정도였다. 3회/ 5회/ 10회 단위로 결제 가능했다. 제일 작은 선택지인 3회로 결제했다. 피부과에 한 번 방문할 때마다 35만 원이 날아가다니. 아까우면서도 궁금했다.

'정말 효과가 있을까?' 


내가 받은 시술은 쥬베룩과 포텐자였다. 시술 처음 받는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시술 전 마취크림을 도포하고. 약 30분간 방치한다.

간호사님이 여쭤보셨다. "많이 아플 수 있어서, 혹시 마취 주사 맞으실래요?"  

나는 대답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마취크림으로 마취하고 있는데, 주사는 필요 없겠지'

안일한 생각이었다. 진짜 정말 너무 아팠다. 내가 살면서 겪어본 통증 중 1등이었다. 너무 아파서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시술 후 거울을 보며 나는 한 번 더 깜짝 놀랐다. 꼭 어디서 싸우고 온 몰골이었다. 얼굴이 온통 빨갛게 퉁퉁 부어있었다. 비싼 돈을 주고 고통을 산 느낌이었다. 그래도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시술시간이 처음에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오래 걸렸다. 게다가 의사와 관리사의 노동력도 투입되었다. 손이 많이 가는 시술이라 충분한 값어치가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총 5회의 흉터 시술을 받았다. 앞으로 5회를 더 받을 예정이다.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아프지만 흉터가 연해져 가니 거울을 보는 게 이전만큼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나아지고 있는 피부 상태를 관찰하는 재미가 생겼다.

'그동안 자기혐오가 있었구나' 새롭게 깨달았다.

피부과에 가면 나의 상처를 관리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나. 썩 좋더라.


그동안 여드름 흉터로 인해 꼭 물리적인 상처만 있던 게 아니었다. 내 피부 상태를 언급하는 사람들의 말에 스트레스받고 있었다. 걱정해 주는 말에 화를 낼 순 없었다. 그래서 피부 같은 건 상관없는 척했다. 속은 상하는데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게 힘들었다. 한 번은 지나가던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말을 걸어 여드름 관리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아닌 척했지만 무척 짜증 났다.

피부과에 가며 스스로의 상태를 살피게 되었다. 지금은 나의 상태를 파악하고, 필요한 치료에 돈을 쓴다. 돈을 쓰는 건데도 나를 소중히 여기는 느낌이 든다.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다.  

여드름은 제때 압출하고 관리해 주면 흉터관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그때를 놓쳐서 하는 수 없이 돈을 쓰고 있지만.


앞으로 어떤 상처도 방치하지 말아야지. 비싼 돈을 지불하고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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