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지도 않는데 영업당해서 러닝화 산 후기
나는 원래 안 뛰는 사람이다. 발목이 좋지 않고 조금만 뛰어도 종아리에 통증이 심해진다. 학창 시절에는 조금만 뛰면 지각을 면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그냥 지각했다. 체력장을 할 때 말고는 자의적으로 뛰어본 적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신발을 사러 가면 수많은 러닝화를 누가 신는 것 인지 궁금했다. 나는 러닝화 섹션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친구와 말복을 맞아 삼계탕을 먹으러 갔다. 친구는 러닝의 장점을 끊임없이 설파했다. 실은 이전부터 그런 말을 많이 해온 친구이지만 그날은 유난히 집요하게 설득했다.
요즘은 부쩍 러닝을 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 같다. 예전에도 이렇게까지 러닝 이야기를 많이 했던가 싶다.
직장 동료, 오랜만에 만난 동네 친구, 심지어 로직을 가르쳐주는 선생님까지 러닝을 하는 사람들을 러닝의 효과에 대해 칭찬 일색이었다.
‘아니 도대체 그냥 뛰는 게 뭐가 좋다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뛸 때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살이 빠지는 것은 덤이라고. 각자 자신의 속도에 맞춰하면 되는 거라 부담이나 부상의 위험도 적다고 했다. 요즘 살이 붙고 있던 터라 순간 솔깃했다.
친구의 기나긴 설득에 절대 뛰지 않겠다던 나의 오랜 다짐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나는 유산소를 정말 싫어한다. 그래서 러닝머신에서는 단 한 번도 뛰어본 적이 없다. 트레이너 선생님은 꾸준히 유산소의 중요성을 늘 강조했고, 나는 꾸준히 흘려 들었다. 유산소를 하면 살이 처질 것 같고, 종아리는 굵어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숨차고 땀나는 게 싫었다. 근데 신기하게도 만나는 사람들 마다 러닝을 찬양하는 거다.
그러다 새로 가방을 구매하려고 나이키 사이트에 들어갔다. 그때 지금 러닝화와 눈이 마주쳐버렸다. 디자인이 너무 예뻤다. 러닝화가 다른 신발보다 기능이 좋든 말든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너무 예뻐서 그 신발을 당장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사버렸다.
베송이 오기까지 주말을 끼고 4일이 걸렸다. 실제 영업일로는 2일.
그맘때 기다렸던 택배 중에 가장 기다린 택배였다. 배송을 받자마자 신어봤다.
흰검이라고 생각하고 샀는데, 실버색상이 더욱 강조되어 보였다. 그마저도 예뻤다. 역시 러닝화는 달랐다. 신고 걸으니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신발에서 작은 요정이 내 발을 밀어주는 것 같았다. 미약하지만 도움이 충분히 될 정도의 추진력이 생겼다.
아니. 나는 정말로. 진짜로. 뛸 생각이 없었는데 신발을 신어보니 괜히 뛰어도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발목도 짱짱하게 잡아주는 게 러닝 후 고질적인 나의 발목과 종아리의 통증도 덜 할 것 같았다.
결국 성능 시험을 핑계로 러닝을 하러 나갔다. 누군가에겐 쉬운 일이겠지만, 나에겐 정말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내가 나의 자의로 뛰러 바깥에 나가다니.
밖은 여름이 채 가시지 않아 후덥지근했다. 순간 스쳐가는 바람이 때론 따뜻하고 종종 시원했다. 휴대폰 엡에서는 끊임없이 나를 북돋아 주는 러닝 코치의 칭찬이 들렸다. 달이 밝았다. 트랙을 뱅글뱅글 돌다 보니 그동안 지인들의 말처럼 잡생각이 사라졌다. 다 뛰고 나서는 뿌듯했다. 이런 사소한 뿌듯함을 느끼며 사는 건가. 갑자기 인생의 대단한 진리를 깨달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러닝화를 샀더니, 러닝이 되더라.
직장인은 역시 장비빨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