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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윤성 Aug 22. 2021

그럼에도 일어나는 일들..

주목하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개개인들의 역사를 생각하다.

#어떤 장면

전주 시내를 지나가다가 곁눈으로 우연히 보게 된 아주 작은 반 지하..

사실 반 그 밑에 내려가면 공간이 실재할까 의심이 들 정도로 좁은 통로를 보았다. 마치 과거 조작된 간첩사건을 다루던 음습한 취조실의 입구처럼 생긴 그곳은 폐지를 줍는 노인들이 모여서 폐지를 묶고 정리하는 창고이자 작업실이었다. 입구가 보이지도 않는, 비가 많이 오면 혹 물이 차오르지 않을까 싶을 만큼 좁고 어두운 곳이지만, 분명 사람의 온기가 있고, 누군가가 무언가를 도모하는 곳 이리라.


매일같이 쏟아지는 뉴스에 정보에 가십거리에 우리의 눈과 귀는 거의 쉬지를 못하는 요즘. 누군가는 가짜다 진짜다 논쟁을 벌이고, 영원히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주관적인 잣대를 내세우며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 적절하다, 부적절하다.'와 같은 끝날 수 없는 논쟁을 벌인다. 어쩌면 그런 논쟁과 토론의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북극과 남극처럼 정 반대에서 서로 대립하고 있다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 따지고 보면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 사실처럼, 이러한 갑론을박을 늘 즐기는 사람들은 누가 나를 좀 공격해줬으면 하는 묘한 욕구가 자라나기도 하는 듯하다.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가 올바르게 작동하도록 유지하는 언론의 기능은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셀 수 없이 많은 종편채널과 그 프로그램들에 등장하는 소위 '평론가' 들은 사실 강 건너 불구경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우리는 권력자와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 사회 지도층의 부조리와 부패에 대해 관심을 갖고, 어떤 때는 그들 개인의 사회적인 몰락과 굴욕을 목격하며 이러쿵저러쿵 멘트를 달기에 바쁘다. 그리고 세상 몇몇의 사람들의 소식으로 인터넷과 언론은 도배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는 정치에 관심이 많다. 양쪽에서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저렇게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왜 저런 바보 같은 말을 할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내가 보지 못하는 어떤 다른 세계가 그 이면에 있을 거라는 확신을 하게 된다. 정치는 무엇일까? 권력을 잡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라 생각하는 일반인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분명 우리는 정치인들에게 적어도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줄 거라는 거의 실현되기 힘든 기대를 한다. 그러면서 이번 선거가 지나고 나타나는 인물은 세상을 바꿀 것처럼 강력하고 참신한 선언과 단단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그러나 세상을 좀 살아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세상은 누가 움직이는 걸까? 동네 미용실, 분식집, 카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 우리가 주말에, 명절에, 연속되는 징검다리 연휴에 쉬지 못한다고 불평할 때도 항상 똑같은 기차와 버스를 운전하는 분들, 백화점이나 할인마트에서 계산대에서 일하시는 분들, 코로나 시대 집콕하며 먹은 맥주 캔들 수거해가시는 청소부들, 하루도 쉴 수 없는 화장실 청소하는 아주머니들, 우리가 즐겨하는 온라인 쇼핑의 서버를 관리하는 전산실 직원들, Tablet PC, 스마트폰이 아무리 스마트해도 절대 없어서는 안 되는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 직원들, 자연이 주는 선물을 직접 알현하는 어부들, 농부들, 우리가 편리함이라 부르는 실체인 택배기사, 우체부들, 오늘은 밥하기 귀찮으니 시켜먹고 싶을 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추우나 더우나 음식을 배달해주는 배달부들, 에어컨 수리 기사님들, 콜센터 직원들, 아파트 경비원 분들, 더운 여름 도로 공사하는 인부들, 맛집으로 소문이 나면 날 수록 많아지는 뚝배기 나르는 아주머니들, 주차관리인들, 온갖 더러운 꼴을 다 보게 되는 밤 10시의 지구대 막내 경찰, 노량진에 있는 공시생들, 해외에 파견되어 있는 연구원들, 건설 노동자들, 목숨 바치는 군인들. 이런 사람들이 아닐까?


'열심히', '묵묵히' 같은 형용사들의 무게감이 주는 그런 느낌처럼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그 결과가 휘황찬란하지 않더라도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 하찮아 보이는 일들도 사실 다 역사와 이유가 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일은 어떤 것을 하찮게 여기는 것이 아닐까. 우리 주변에서 매일 보는 일 일지라도, 당연하게 생각이 되는 작업이라도, 누군가의 노력이 들어간 어떤 일들을 경험하게 될 때, 땅에 묻혀있거나 보이지도 않는 작은 것들이 탄생하기까지 필요했던 일들과 노력과 고민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매일 밟고 지나가는 보도블록처럼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이 어디로부터 왔을까 생각해본다. 우리가 그동안 쌓아오고 이루어온 모든 것들은 실상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들로부터 이루어져 온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맥락에서 세상과 삶에 대해 생각해보면, 내가 경험하고 아는 세상이 얼마나 작고 좁은지 깨닫게 된다. 지금도 길 건너편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 수 없듯이, 나의 시야는 아주 좁다는 것을 알고,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일전에 경험해 본 것이든, 사실 우리는 가장 겸손한 태도로 그러한 현상들을 맞이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고 모른다고 해도 모든 일은 일어난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 꿈을 꾸는 사람들 묵묵히 반지하와 같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따뜻하고, 편안한 사회에 살게 되었다. 조금 시끄러울 때도 있는 사회이지만, 코로나와 같은 치명적 변수에 휘청이는 지금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사실 아주 잘하고 있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고 또 개개인의 원동력과 철학은 후대에 계승되어 삶은 계속될 것이다. 지금 이 시기, 아주 힘들지만 그럼에도 사람들 덕분에 일은 일어나고 삶은 유지되고 좋은 미래가 눈앞에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 


반드시 그렇다.


Br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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