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벌어지는 내 마음 속 변덕스러운 날씨
간단하다.
내가 제주에 오는 이유는. 아무것도 생각 할 필요 없이 모든 것이 느리기 때문이다. 문법도 단어도 외모도 신경 쓸 필요없지. 누구를 만나게 될 이유도 계기도 의도도 없는 그저 순수함 그 자체.
애월 앞바다에서 목격했던 것 처럼, 바닷물이 사람들을 맞이하려 해안가에 다다르면서 파르르 떨리는 그 긴장감처럼 그저 그런 어느 보통수준의 떨림이 있을 뿐이지.
저승으로 가는 비행기를 탄 것처럼
검은 밤 활주로의 엔진소리는 귀를 찢을 듯 파고들지만 사실 내 모든 과오와 후회와 아쉬움과 기억조차 버릴 수 있는 기회가 눈 앞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런 소리의 괴롭힘은 그저 그런 것이리라.
Project 제주.
제주에 오면 모든 것이 거리감으로 충만하다.
거리를 두고, 여유를 두고, 자의든 타의든 존중하고
구름이 지나는 것에 대해 거대한 태풍에 대해 거친 파도에 대해 자연스러워지는 겸손해지는 그런 태도를 스스로 내면화 시킬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
Project 터널.
현실세계와 제주의 비현실적 비주얼은 묘하게 연결되어 내가 마치 이 시대 최고의 자유인인 것 처럼 만들어준다. 편안한 복장, 눌러쓴 모자, 느린 발걸음, 폭넓은 선택, 이방인과의 대화, 너그러운 허용. 내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나 자신과의 연결. 그리고 내가 얼마나 강박속에 각박하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깨달음. Awareness.
Project 귀가.
이제 돌아갈 시간이 다 되어. 임시적 인연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나를 목격했던 사람들과 이별하는 자연스러운 과정. 배움은 모든 곳에서 일어난다는 우리네 스승님의 옛 말처럼 그대로. 오늘 하루 이렇게 소중하게 다른시간에서 보낼 수 있었다는 무한한 감사함. 그리고 따뜻한 내 보금자리.
제주에 오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좁고 작은 이자카야.
그곳에서 별 맛없는 오뎅국물과 한라산 소주 한 잔 기울일 수 있다는 육체와 시간과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
제주에 가면 언제든 그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뛰어넘는 어떤 다른 장면.
또 다른 국면. 결국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
Project 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