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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May 02. 2023

나마스떼

주제 응답하라

인생에서 가장 뜨거웠던 시절이 언제였을까? 만약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난 주저 없이 19살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2006년 여름. 친구들은 고3 수험생이라는 치열한 10대의 마지막을 보내던 시기. 하지만 나에겐 조금 다른 의미로 뜨거웠던 순간이다. 한낮 평균온도가 40도 를 가볍게 넘어가는 정말로 뜨거웠던 곳, 다.



2006년은 모두가 4년 전 기적을 다시 한번 기대하던 독일월드컵이 열던 해. 한국에선 백지영이 오랜만에 '사랑 안 해'라는 곡으로 컴백했고, 내가 인생드라마로 손꼽는 '연애시대'가 방영했으며 UN총장으로 반기문이 확정되었다. 하지만 나에게 정작 중요한 이슈는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그날의 식사메뉴라든가 술을 어디서 누구랑 먹을까, 오늘은 무슨 영화를 볼지, 뜨거운 낮엔 어디서 쉬고 있으면 좋을지 같은 한량스럽기 그지없어 보이는 고민들. 그것들이야말로 내겐 가장 가까운 현실이었다.



인도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덥고 습하고 냄새도 유쾌하지 않았으며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거지들이 들러붙어서 구걸을 해댔다. 참고로 인도에서 거지들에게 돈을 줘도 고맙다고 하지 않는다. 듣기로는 선행을 베풀게끔 해줬으니 돈을 준 사람이 역으로 고마워해야 한다고 하던데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어디를 가던 불결함은 떨칠 수 없다. 길거리엔 쓰레기가 넘쳐흐르고 똥오줌은 마려울 때 그 자리에서 싸버리는 사람들. 거리에 나서면 사방에서 호객소리가 들린다. 물건 하나를 사려고 해도 끊임없는 흥정을 해야 하고 음식점에선 당연하게 현지인과 외국인용 메뉴판이 다르다. 막 지불한 돈을 태연하게 숨기고선 모자라다 손을 내미는 것을 보면 허탈한 웃음만 나온다. 바가지와 가벼운 사기는 일상이며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은 넘쳐흘러서 언제나 보디가드를 대동하듯 주위엔 사람들이 둘려 쌓인다. 정전은 고정이벤트로 더운 한낮에 선풍기가 멈추면 답도 없다. 일처리도 엉망이라 여행사에 버스를 전날 미리 예약해도 당일날 갑자기 탑승불가라고 한다. 무언가 정상적인 수순으로 일이 진행되는 경우는 정말로 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난 인도에서 단 한 번도 기분 나쁜 적이 없었다.

Everything is possible.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곳에선 하루에 수십 번도 넘게 듣는 마법 같은 문장. 무슨 일이 있어도 그저 한마디면 납득이 가능해진다. 타는듯한 사막 한가운데서 갑자기 펩시와 맥주를 들고 나타나는 꼬마와 마주쳐도 놀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이 가능한 곳, 인도란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그 이 모든 것 불가능하다는 뜻까지 포함한다는 것 어선 안된다.



만약 인도에서 기차를 타게 된다면, 출발시각보다 최소 1시간 후 역에 도착해야 한다. 먼저가 아니라 후다. 무조건 연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단 한 번도 기차가 제시간에 오는 걸 본 적이 없다. 1시간도 사실 빠른 편이고 보통 몇 시간씩 기본적으로 늦는다. 하지만 기차가 연착되는 것보다 놀라운 것은 기차를 기다리는 인도인들의 태도다. 어느 누구도 역무원에게 찾아가 따지거나, 발을 동동 구르며 당황해하지 않는다. 아침에 해가 뜨는 것을 보고 왜 해가 떴냐며 따지지 않는 것처럼, 그들에겐 그것이 일상이고 당연함인 것이다. 주위 인도인에게 왜 기차가 안 오냐고 물어보면 그들은 다시 Everything is possible이라 말할 뿐이다. 그 말을 듣고 선로를 바라보면 시원하게 일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역시 재밌는 곳이다.


무언가를 사려고 할 때 흥정은 필수이다. 관광객이 많은 나라는 기본적으로 바가지를 몇 개씩 머리에 쓰고 있는 듯하다. 당연하게 인도도 그런 부분에선 세계적인 나라여서, 일단 부르는 가격에 반을 깎고 시작해야 바가지를 덜 쓴다. 아쉽게도 안 쓸 수는 없지만.

그런 인도에서 한국인 역설적으로 경험했던 적이 있다. 숙소에서 만난 누나들 가죽제품을 사 을 때였다. 마음에 드는 카우보이모자를 찾은 누나는 주인과 흥정을 시작했다. 250루피로 시작한 경쟁은 5분 정도 실랑이 끝에 150 100 사이에서 최종 합의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때 2명의 서양인들이 상점에 들어와 누나가 골랐던 모자와 같은 제품을 보며 얼마냐고 물어봤고 주인은 태연하게 750을 불렀다. 나는 속으로 말도 안 된다고 생각고, 역시나 그 서양인디스카운트를 요구했다. 주인은 마치 선심 쓰듯 700으로 깎아주었는데 그 서양인은 기뻐하며 바로 모자를 사고 가버렸다. 한국인과 다른 나라 사람들은 출발선조차 달랐던 것이다. 우리에게 처음 제시했던 250도 이미 바가지 가격이었는데 750이라니... 이런 것도 국위선양이라고 해야 하나 싶었다.


인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 중 하나는 동물다.

이른 아침 거리로 나가면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있고 그곳을 뒤지고 있는 소 개 까마귀들을 볼 수 있다. 가장 자주 마주치는 동물들이다. '인도에 소가 많다는 건 알았지만 소똥도 많은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라며 바로 귀국해 버린 사람 있을 정도다.

도시 외곽으로 조금만 벗어나면 다시 늑대로 회귀 중인 들개들이 어슬렁거린다. 밤만 되면 현지인 외국인 가리지 않고 걸리는 데로 공격하니까 조심해야 한다.

산에서 가까운 숙소를 잡으면 복도바닥에서 자고 있는 박쥐를 마주할 수 있다. 내가 문 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쳐다보는데 괜히 잠을 깨운 것 같아 미안한 마음까지 생기게 했었다.

마른하늘에 갑자기 비를 맞았다면 그것은 비가 아닐 수도 있다. 나무 위에서 원숭이가 깔깔대며 오줌을 갈기고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살면서 누군가의 오줌을, 사람도 아니고 원숭이 오줌을 등으로 받아낼 거란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는데... 옆에 있는 친구에게 지가 맞췄다 웃으며 자랑하던 그 표정. 그 자식의 웃음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인도에선 코브라쇼가 흔한 줄 알았는데 의외로 보기 힘든 생각보다 귀한 구경이다. 한 번은 보고 싶은데 하는 마음이 어느 정도 커졌을 때쯤,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아저씨가 코브라쇼를 보여주겠다며 날 끌고 갔다. 기대 부푼 마음을 가지고 항아리 앞에 앉았다. 아저씨가 긴장감을 조성하며 뚜껑을 열었는데 더위에 지친 코즈라가 제대로 못 일어났다. 거기서 이미 웃음이 터졌는데 아저씨는 당황하더니 억지로 코브라를 일으켜 세우고 뒤통수를 때렸다. 한 대 맞으니까 그제야 코브라가 할 일을 하더라. 쇼의 내용은 이미 뒷전이었고 코브라 뒤통수 맞는 소리만 기억에 남았다. 신선한 재미였다.



19살의 나는 조금 다른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새롭게 알게 된 것도 많았고, 더욱 단단해진 고정관념들도 많아졌다. 그때만큼 새로운 즐거움을 겪을 수 있는 시기는 아마 없겠지 싶다.

하루하루를 생각 없이 내키는대로 보내는 것. 단순히 여행스타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내 삶의 방식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완벽하게 나의 방식대로 살았던 그 시절은 내 기억 속에서 강렬하게 남아있다. 눈이 떠질 때 일어나고 먹고 싶은 게 생기면 찾아가서 먹었다. 더우면 귀찮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그러다가 바람 쐬고 싶으면 스쿠터를 빌려 그냥 떠났다. 사막에서 술 마시며 별을 보다가 오기도 했고, 가방을 잃어버린 일본인을 심심해서 도와주기도 했다. 돌이켜보니 참 생각 없었다. 즐거웠겠구나 싶다.




인도를 마지막으로 간 게 벌써 10년이 넘었다. 나의 인도는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니 내가 아는 것과는 많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대도 이상하지 않다. 모든 것이 가능하니까. 다시 가고 싶지만 다시 가진 않을 것이다. 인도가 변하지 않아도 2006년, 19살의 나는 변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일말의 기대가 생기는 것은 그곳에 가면 19살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 싶어서이다. 다른 곳이라면 당연히 말이 안 되겠지만 인도라면... 내게 인도는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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