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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Apr 18. 2023

묵음

주제 우리 내일 만나

"간다, 내일 봐"

(

2시간 정도 웃음이 끊이지 않는 시간을 보냈다. 나는 나대로 책을 읽어가며, 너는 너대로 할 일 해가. 중간중간 서로의 일상이나 실없는 농담들, 별 관심 없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채워 넣었다. 의 취향으로 선택된 노래들은 창 밖에 보이는 일상으로 스며든 채 흘러가고, 뜨문뜨문 찾아주는 손님들과 정겹게 인사를 나눈다.

어느덧 가득 찼던 커피잔에 투명한 얼음만이 남아 녹고 있었고, 그제야 난 자리를 치우며 일어다.


너를 알게 된 지 벌써 2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인사는 거기까지다. 헤어질 때 내일 보자는 가벼운 인사. 가끔 만날 수 없던 날에는 메시지로 대신했던 내일의 기약들. 대수롭지 않아 보일 그 흔한 인사 뒤에는 호를 벗어나지 못한 너무나도 많은 묵었다.


 하루도 못 채우는 짧은 시간에도 유독 내겐 느리게 흐르 네가 비어있는 시간은 가끔 너무 지루하게 느껴져 세상이 멈춘 듯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그런 지한 시간을 일초씩 일분씩 버려가며 버 다시 의 미소를 마주할 수 있었다.


언제부터 너와의 내일을 기다리게 된 걸까. 하나씩 돌이켜보면 너무나도 많은 계기들이 쌓여있어서 어느 것 인지 고를 수가 없다. 그러나 전부 진부한 거짓말, 실은 알고 있다. 너를 처음 만난 때부터 이미 정해져 버린 것. 다만 조금 더 그럴싸한 유에 기대고 싶을 뿐이다.


나에게 넌 유일하다. 나는 너에 대해 알아지고, 너나를 알아주고,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생각이 아니라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느껴지는 사람. 러한 적이 없었기에 이 순간들이, 감정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가 어려웠다.

서로 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각자 임에도, 너무나도 같아 놀랐던 순간들이 더해지다 보니 너를 제외할 수 없어진 매일 이었다.

단순한 호감이나 연애감정 혹은 사랑. 그런 단어들만으론 내가 너에게 느끼는 감정을 다 담을 수가 없다. 그 이상을 표현해 줄 말이 존재하지 않기에 난 너에게 고백할 수도 없다.


한때는 너를 생각하는 것이 너무 깊어져 곤란하기도 했었다. 옷가게 앞 마네킹걸쳐있는 옷이 너와 어울린다고 느끼고, 길거리에서 스치는 향기 머리카락 흩날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끼니를 거르진 않았을까 지나치는 떡볶이집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우연히 발견한 소품샵에선 너와 어울리는 것들이 눈에 밟힌다. 재밌는 일이 생기면 너에게 말해주고 싶어지고, 새로 산 이쁜 양말을 자랑하고 싶어 진다. 그렇게 모든 것들이 너로 귀결되었던 순간들은 커다란 파도로 밀려들어와 아무런 비도 못한 날 게 만들었었다. 간은 버겁던 시간들.


일 미터 건너편에  앉아있다. 과자를 씹으며 핸드폰을 보고, 난 레모네이드를 마시며 너를 적는다. 오늘도 여전히 같이다. 닭발에 소주 한잔 하던 때에도, 스파이더맨을  보던 순간도, 고장 난 엘리베이터에 갇혀 있던 날이나 벚꽃길을 지나치던 날에도 계속 같이였다. 너를 만났던 지나간 내일들이 쌓여 같이 있던 매일이 남게 되었지만, 우린 서로가 품고 있는 감정은 달랐을 테니 함께였던 적은 없겠구나. 어쩌면 그래서 다행이다. 서로가 서로의 빈자리에 대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너의 곁엔 내가 없었고, 난 그저 혼자였으니 우린 아무런 문제가 없이 그대로일 수 있다. 유일한 위안이다.


하루종일 끼니도 제대로 못 챙겼을 텐데 저녁이라도 맛난 거 챙겨 묵고 신나 져라. 방에서 갑자기 바퀴벌레 같은 거 안 튀어나올 거니까 걱정 말고. 새벽에 애들 칭얼대서 잠 설치지 않길. 아침에 세상 개운하게 일어나. 빈 속에 커피 마시지 말고 가볍게라도 뭐 좀 주어묵고. 손님 너무 많이 오면 너 기운 빠지니까 적당히 왔으면. 바람 은근히 차니까 건방 떤다고 얇게 입지 말고 감기 조심해. 금방 다시 들릴 거니까 웃으면서 보자. 볼 생각 하니까 벌써 기분 좋아지네. 너도 오늘 하루 기분 좋은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아직도 머릿속에선 시끄러운 묵음들 덕에 소란스럽다. 한시도 조용하질 못하는 것들. 지만 이 묵음들은 결코 내 입을 통과할 수 없다. 너의 몇 없는 고요한 순간을 깨뜨리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

)

"조심히 가고 내일 봐요"

그저 너의 인사 뒤에는 묵음이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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