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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May 09. 2023

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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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가끔이라 말하기도 애매할 정도의 몇 안 되는 순간이긴 하지만 뜬금없는 생각이 찾아온다.


2004년 어느 초여름 아침이었다. 보통의 하루였다면 잠에서 깨 간단씻은 뒤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 통학버스를 탔을 것이다. 버스에서 만난 친구들과 가벼운 인사를 하며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눴을 것이고, 교실에 들어가 별 관심 없는 수업들을 들었을 것이며, 정규 수업이 끝난 뒤엔 야자를, 야자까지 끝나면 전철을 타고 동네로 돌아와 친구를 만난 뒤 담배 한 대를 태우며 집으로 복귀. 그것이 당시의 일상이었고 대부분의 날들은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형태였다.

보통의 하루였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날은 작부터 조금 다른 하루였다.

침대에서 눈을 뜨자마자 찾아온 어떤 생각. 아무런 계기 없이 불쑥 찾아온 느닷없는 생각이었다.

 

바다를 보러 가


평소에 바다를 딱히 좋아하지 않았다. 잠들기 전 바다 다큐멘터리 본 것도 아니고, 스트레스가 쌓여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마음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때의 생각은 여전히 이유를 찾아낼 수 없다.

바다를 보러 가겠다는 의지는 빠르게 머릿속에 자리를 잡았고 그 의지를 실천해 내기 위한 행동 또한 빠르게 이루어졌다. 일단, 엄마에게 걸리면 안 되니까 보통의 날처럼 평범하게 등교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엄마가 출근하는 시간까지 기다린 뒤에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간단하게 챙겼다. 전철로 청량리역까지 이동한 뒤, 그곳에서 정동진행 열차에 올랐다. 그 일련의 과정이 진행되는 사이에 학교에선 나의 부재를 파악했고 바로 연락을 했 것이다.

그 연락은 학교에서 엄마에게, 그리고 엄마에서 나에게. 전화가 온 건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던 때이다.


"아들 어디야 너 왜 학교 안 갔어?"

"청량리역. 정동진 갔다 올게"

"뭐!?"


스스로도 알고 있다. 상황 황당하다는 것과 좀 더 자세한 부가설명이 필요했다는 것쯤은. 하지만 아침에 갑자기 바다를 보러 가고 싶어 졌다는 이유, 쉽게 납득긴 어려울 거란 사실이 내 대답을 간단하게 만들었다. 설명하기 귀찮기도 했었고 말이다. 그때 엄마는 학교에 뭐라고 말했었을까. 본인도 못 받아들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했을까? 아니면 다른 핑계를 댔을까? 쓸데없는 궁금증이다.

 


덜컹거리는 기차에서 기분 좋게  문득 이상한 느낌에 눈을 떴었다. 느새 어두워진 밤하늘에 깜짝 놀라 어딘지도 모른 채 무작정 황급히 내. 통리역. 조그마한 시골역이었는데 제는 차가 다니지 않는 것 같다. 애초에 의도하지 않았던 장소였기에 목적지 없이 그저 역 근처를 서성이다 관광안내표지판을 발견하여 들여다봤다. 태백산을 중심으로 여러 장소들이 그려져 있었지만 딱히 끌리는  없었다.

가벼운 백팩 하나만 달랑 메고선 하염없이 관광 안내판을 쳐다보고 있던 내가 지나가 그 사람의 눈에 걸렸었나 보다. 오가는 사람이 없는 곳이라 더 눈에 띄었을까. 


"여기 처음 왔어요?"


아무리 많이 잡아도 30대 중반은 넘어가지 않았을 걸로 보이던 외모 별다른 특징이 남지 않는 얼굴. 얇은 하얀 카디건과 청바지를 입고 있었고 머리는 단발에 목소리가 차분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할 준비가 되지 않았던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은 채, 그저 그 사람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차에서 내린 지 1시간쯤 지났지만, 사람이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던 거 같은 시골풍경에 이미 익숙해져 있던 터라 당황했다. 관광안내에 너무 집중했던 건지 그 사람 다가오는 것조차 인지도 못해서 혹시 귀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니.


"놀러 왔나 봐요?"


어색하게 고개만 끄덕이는 모습이 수상했을 거다. 늦은 시간과 외딴 장소의 조합은 가 그곳에 서있는 것이 적당하지 않은 수상함을 주기에 충분했을 터. 살짝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를 쳐다봤지만 이내 별일 아니라는 듯이 가 보던 관광안내판을 같이 쳐다봤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그 사람은 갑자기 음료수를 건넸다.


"이거 마셔요"


역시나 대답 없이 그저 건네진 음료수를 받아 들었다. 고맙다는 인사조차 하지 않았었네. 그렇게 또다시 이어진 침묵. 주섬주섬 담배를 한대 꺼내 물고 불을 붙이려 할 때였다.


"아!..."


갑작스러 고개를 돌려보니 사람의 담배를 말리려듯한 몸짓이었지만, 별 반응 없는  표정을 살피곤 그냥 두었다. 직업이 선생님은 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담배 펴요?"

"말보로 레드요"


처음으로 들려준 목소리가 담배이름이었던 게 웃겼던 걸까, 아니면 예상보다 앳된 목리여서일까. 가벼운 미소를 고선 다시 관광안내판으로 시선을 다.


"이 주변엔 가 볼 만한 곳이 없는데..."


처음 온 곳이지만 그 말에 동의하는 것이 어렵진 않았다. 역 주변을 돌아봐도 역세권이란 말이 부끄러울 정도로 황망한 풍경뿐, 심지어 불이 켜진 가게조차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학생 맞죠? 고등학생?"

"네"

"지금 방학시기가 아닐 텐데... 가출 뭐 그런 건가?"


가출청소년 이란 말이 뉴스에서도 종종 들리던 시기였다. 나는 가출이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가출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대답하기가 어려워 그냥 대답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오히려 방황하는 가출청소년의 모습이라고 확정을 지어줬을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이미 차가 끊겨서 돌아가기 어려울 거고... 이제 어디로 갈 거예요?"

"태백역이요"


관광안내도가 도움이 되던 순간이었다. 아주 자연스럽고 적당한 애드리브다.


"태백역 꽤 먼데... 어떻게 가려고요. 태워줄까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좀 걷게요"

"걸어가기 힘들 텐데..."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더 강하게 말을 해주셨어야죠. 정말로 아주 많이 힘들 거라고...

그저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대충 둘러댄 말 때문에 산을 넘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었다. 관광안내도는 광활한 공간을 아주 귀엽게 축소시켜 둔 그림이라는 걸 이젠 잘 알게 되었다.

그때 어디선가 '빵빵' 하며 클락션이 들렸고 일행인 듯한 사람이 차를 끌고 나타났다.


"조심히 가고 집에 꼭 돌아가요"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 사람은 차에 올랐다. 차가 떠나는 모습을 잠시 쳐다본 뒤, 갑자기 정해진 목적지인 태백역까지 어떻게 가야 할까 보기 위해 관광안내도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저기요!"


몇 미터 움직이지 않고 멈춘 차에서 그 사람이 다시 내려 나에게 다가왔다.


"맛있는 밥이라도 사 먹어요"


내 손에 만 원짜리 지폐 3장을 쥐어주며 말했다. 내 차림새가 많이 추레했을까, 돈이 없는 상황은 아니었는데.


"아니요 괜찮아요"

"그 빌려주는 걸로 할게요 나중에 갚아요!"


그렇게 던지다시피 돈을 쥐어주고선 다시 뛰어가는 그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람을 태운 차는 그렇게 어두운 시골로 사라졌고, 나는 관광안내도 앞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통리역다시 고요함과 노란 가로등 불빛, 그리고 태백산의 실루엣으로 이루어진 풍경만이 남았다.

손에 쥐어진 3만 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문득 깨달았다.



 어떻게 갚지? 이름도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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