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 할 수 없는 그
엄마의 전화기가 울렸다. '여보세요?'라는 흔한 한마디에서 느껴지는 흔하지 않은 감각. 이전에도 몇 번 느낀 적 있는 재수 없는 감각이다. 주위 공기는 적막을 품고 가라앉는다. 시끄러운 티브이 소리가 물속에서 듣는마냥 먹먹해지고 시간의 흐름이 아주 조금 느려진다. '삐-' 하고 이명이 고막 안쪽에서 울리며 엄마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어떻게 어떻게' 하며 안절부절못하는 엄마를 보면 나의 예감이 빗나가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재수 없는 감각은 가까운 누군가를 다신 볼 수 없다고 내려지는 일종의 선고. 오랜만에 검은 정장을 입어야 한다는 걸 알려준다. 티브이에서 지저귀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엄마와 달리 차분하다.
어지러이 널브러진 건물의 잔해, 주위를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소방관들과 주변을 통제하는 경찰들, 방송국 로고가 박힌 카메라와 기자들은 앞다투어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고 구경꾼들은 저마다의 웅성임을 표출하며 쳐다보고 있었다. 새벽이 되며 기온은 더욱 떨어져, 입고 온 옷만으론 버티기 힘들어진 고모들은 두터운 담요를 몸에 두른 채 기자의 질문에 울면서 답하고 있었다. 종로에서 벌어진 철거작업 중 건물이 붕괴되며 2명의 인부가 매몰되었다. 형태를 잃은 철근과 콘크리트 더미들을 조금씩 들어내고 있었지만 2차 붕괴의 위험이 있어 작업속도가 매우 답답했다. 무너진 사고 현장을 바라보던 내 입에서 흩어져 나온 것은 담배 연기인지 한숨인지 모를 것. 붕괴된 건물 아래 매몰 된 인부 중 한 사람은 나의 큰아빠, 답을 할 수 없는 그가 거기 있었다.
나의 큰아빠는 농아다. 어렴풋이 들었던 기억으론 어렸을 때 병을 앓고 나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당연하지만 그와 대화를 하진 못했다. 수화를 전혀 모르던 나와 대충만 익힌 그였기에, 약간의 손짓과 '으, 으'하는 소리로 의사를 전달하는 게 전부였다. 그리 멀리 사는 것은 아니었지만 보통의 친척관계가 으레 그러하듯, 정해진 만남의 총량은 그리 많지 않았다. 명절이나 가족행사가 있을 때 가끔 보는 정도였으니 아무리 많이 잡아도 1년에 10번을 넘기진 않았을 것이다. 그냥 그 정도였다.
아빠는 7남매 중 딱 가운데 넷째다. 위로는 누나 둘과 형 한 명, 밑으론 여동생 둘과 막내남동생 하나. 정말 애매한 위치에 끼어있지만 남들과 조금 다른 형 대신 장남 노릇을 해왔다. 실제 대접은 그대로 중간 차남이지만, 책임만 장남인 일종의 명예직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남매들의 사이가 좋다는 것이다. 부산 사는 둘째 고모만 빼면 모두 수도권에 살고 요즘도 꽤나 자주들 만난다. 그런 사이좋은 7남매는 자식들도 두세 명씩은 있어서 다들 모이면 꽤나 바글바글하다. 나 같은 조카들이 15명이나 있는 것이다. 그는 그런 수많은 조카들 중에서도 나를 유독 좋아했다. 도끼병 같은 착각이려나 싶지만 물어볼 방법은 없다. 그와 단둘이 시간을 보냈다거나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 스치며 느껴졌던 감정은 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빠는 형을 아주 각별히 여겼다. 나는 장남이라 모든 동생들이 형에게 각별함을 느끼는지 알 수 없지만, 아빠가 누나들이나 동생들보다 형을 더 좋아했다는 것은 잘 안다. 아빠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큰아빠에게 잘하라는 말을 종종 했다. 그래서일까, 고모들이나 막내삼촌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긴 했다. 그렇다 해서 그와 특별한 추억이 있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사소한 기억조차도 희미하다. 그럼에도 따뜻한 감정만 남은 것은 그가 나에게 전해준 애정이려나.
밤새도록 이어진 큰엄마의 부름에 아무런 답이 없던 그를 아침이 다돼서야 찾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는 크게 상하진 않았지만 잔해에 깔려 생긴 상처들과 얼룩진 멍자국은 어쩔 수 없었다. 쓰러지는 큰엄마와 오열하는 고모들, 침통한 아빠의 얼굴. 푸르스름해진 하늘에 풀어지는 담배연기를 보며 그가 혹시 답답하진 않았을까 생각했다. 스무 시간 정도를 그 아래에 있었으니... 살려달란 말 한마디 못했을 그가 안타까웠다. 결국 그곳에선 벗어났지만 여전히 그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납골당은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절로 정해졌다. 차로 10분이면 갈 가까운 거리다. 하지만 나는 3번 정도 가보고 그 후론 간 적이 없다. 막상 그를 봐도 할 말이 없어서 인 듯하다. 딱히 그립다거나 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저 "큰아빠!" 하고 불러도 대답해 줄 사람이 없는 것이, 그게 조금 허전할 뿐. 전에도 답을 할 순 없었지만 말이다.
대답 하지 않는 너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지 말고 대답을 해. 너가 잘못한 거잖아. 아니야?"
너의 다문 입술은 열리지 않는다.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눈빛은 나를 답답하게 만들고 한숨만 불러온다.
백옥 같이 하얗고 투명한 피부, 찰랑이는 머리칼과 잡고 싶은 너의 손가락, 진귀한 보석 같은 눈동자와 정갈하게 뻗어진 속눈썹. 그래, 이런 순간에도 여전히 넌 아름답다. 진전 없는 너와의 대화에서 느껴지는 부정적인 감정과는 관계없는 감상이다. 나에게 살며시 다가와 안아주던 때나, 뺨에 닿던 부드러운 입술의 감촉도 아직 생생하다. 그냥 바라만 봐도 행복함을 느끼게 해준 너인데...
"계속 그렇게 입 다물고만 있을 거야?"
나의 다그침이 불편해진 것일까? 내게서 고갤 돌린 채 멀어져 간다.
처음 만났던 날을 기억한다. 날이 밝았지만 너의 미소보단 어두웠고, 본능적으로 너의 소중함에 대해 느껴졌다. 우리의 미래가 자연스럽게 그려지며 입가에 미소를 지어지게 만들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들을 해주고 싶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넌 왜 내게 이런 답답함을 주는 것일까.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수 있을까?
"딴쯘! 딴쯘!"
한바탕 난리 쳐둔 거실상황을 추궁할 땐 모른 척하며 입 다물고 있더니, 결국 지가 필요한 장난감을 꺼내달라는 부탁을 할 때가 돼서야 입을 열었다. 눈 녹듯 사라지는 답답함은 나의 재빠른 행동으로 바뀐다. 장난감을 손에 쥐어주자 환히 웃는 너. 이제 2살인 나의 조카다.
드라마를 볼 때 자주 나오는 장면이 있다. 어렸을 때 잃어버린 자식을 후에 만나는 내용. 처음엔 서로가 서로를 못 알아보지만 은근히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고 점점 끌려한다. 그러다 마지막엔 서로가 가족이었다는 걸 알게 되며 눈물의 상봉을 하는 뻔한 클리셰. 엄마는 그런 드라마를 보면 언제나 하는 말이 있다.
"역시 핏줄이 땡기는거야"
조카 놈을 보며 엄마가 한 말을 조금씩 실감하고 있다. 자주 봐서 그런 건지 정말 핏줄이라서 땡기는건지 확신은 못하겠다만 녀석을 보면 점점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난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 녀석에겐 삼촌이다. 나중에 큰아빠가 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큰'이란 글자는 이미 확보해 둔 상태다.
세상엔 수많은 아빠 가이드북이 널려있다. 좋은 아빠가 되는 방법은 간단하게 찾을 수 있다. 정 어려우면 오은영 선생님 영상만 봐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큰아빠 매뉴얼 같은 건 없다. 녀석에게 어떤 큰아빠로 있어줘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큰아빠를 떠올린다. 내가 볼 수 있는 교과서는 그것뿐이다. 너무 얇고 대부분이 공백이지만 따뜻한 책. 내용은 다 외우고 있으니 이제 실전만이 남았다.
"일로와 김도준"
큰아빠는 내 이름을 부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어떤 반응이 정답인지 모르지만, 적어도 저렇게 무시하고 있는 것은 확실히 답은 아닐 것이다. 왜 자꾸 선반에서 후추통을 꺼내려는 걸까. 후추가 금보다 비쌌던 건 몇백 년 전이고 지금은 흔한 향신료니까 그만 집착했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한참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더니 결국 지쳐서 잠이 들었다.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평온하다. 살며시 너의 오동통한 발바닥을 눌러본다. 금방 징그럽게 커져서 뛰어다니겠구나. 어떤 말썽을 피우며 다닐지 벌써 걱정스럽다. 그래도 괜찮다. 내가 그에게 받은 것들을 너에게도 전해줄 것이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들, 말은 필요 없는 것들을 너에게 전해주겠다. 넌 그냥 받기만 하면 될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삼촌 해봐 삼촌"
여전히 넌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본 채 아무런 답을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