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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Jun 13. 2023

글로 도착한, 해마를 거친, 대뇌피질에서 출발한 기억

문단의 끝

예상했던 일이 예상대로 흘러갈 때에 느껴지는 감정이 예상과 다를 때, 그 괴리감은 예상보다 무겁다. 이 모든 순간을 예상했지만 예상은 결국 예상이었을 뿐, 현실과 전혀 겹치지 않는다. 그래서 난 짓눌린다.

예전부터 준비해 왔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필연적으로. 이러한 순간이 다가올 것은 정해져 있었고 그 정해진 것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그렇기에 어떠한 기분일지, 무슨 감정일지에 대해 수없이 생각했고 노력했다.

백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꽃밭이 인다. 굳이 다가가지 않아도 그곳에서 꽃내음이 나리란 것은 충분히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향기에 진함에 대해서는 다가가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내가 놓친 것은 그 다가감. 너무 안일했다.




여름이 다가오면서 해가 너무 빨리 나타난다. 조금은 불편하지만 어쩔 수 있나. 이미 밝아진 하늘에 대한 아쉬움은 잠시 제쳐두고 산책을 한다. 이 동네에서 내가 살아온 시간이 벌써 30년이 넘었다는 게 새삼 신기하다. 동네마트에서 일을 하던 때, 자신이 이 동네 토박이라며 진상을 부리던 꼬장꼬장한 어르신이 있었다. 그 진상 토박이 지금의 나보다 동네경력이 짧았다는 게 새삼스레 웃긴 추억으로 떠올랐다. 난 이제 진짜 토박이가 되어가고 있다.

동네 전체가 익숙하다. 아무리 걸어도 낯선 곳은 나타나지 않는다.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도로가 뚫려도, 그 자리가 원래는 어떠했는지가 기억 속에 남아있기에 불편함이 없다.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보이는 30년짜리 타임랩스를 보는 기분. 은근히 재밌는 부분이다.


100걸음에 한 번씩. 짧거나 길거나, 옅은 혹은 짙은, 오래전인지 아니면 그냥 그렇게 느낀 건지 정할 수 없는 기억의 편린들이 남아있다. 깨복쟁이 친구들과 불장난하던 냄새, 엄마 손을 잡고 교회에 가던 길, 선배형들에게 혼나던 무서운 뒷골목, 해 질 녘 더 놀지 못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귀가하던 공놀이의 마무리. 그저 걷는 것만으로 보게 되는 영화가 수십 수백 편이다. 모든 발길이 닿는 공간들에 걸려진 스크린에서 상영 중인 그것들은 바래지도 않고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 아름답게 각색된다. 


집 앞에 새로운 카페를 발견했다. 그곳이 문 닫는 금요일을 빼고 매일 들리고 있다. 커피를 딱히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일과가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 바쁘게 사는 것도 아니고 머리가 복잡할 일도 없지만, 휴식이 절실한 사람인 양 시간을 보낸다. 하얀 테이블과 벽, 그리고 옅은 밀짚색깔 의자와 라탄소품들이 진열되어 있 거슬리지 않는 볼륨으로 재즈음악이 흐른다. 매장이 그리 크지 않아서 온도도 적당하고 대로변이 아니라서 유리창 밖 오가는 행인들도 별로 안 보인다. 보홀라나, 어느 외국의 도시 이름일까 싶은 가게 이름은 궁금증을 자아낸다.

요즘엔 동네에 카페가 우후죽순 늘어났지만 20년 전엔 딱 한 군데다. 중앙로에 자리 잡은 디토라는 곳이었는데 지금의 카페와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당시의 카페는 불량청소년과 성인들만 가는 음험한 곳이었다. 다른 동네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동네는 딱 그랬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학생들이 블랙커피를 한잔 시키고 담배를 피우거나 맥주를 마시던 곳. 말 그대로 불량의 온상지였지만, 내 첫 카페이기도 했다. 다시 카페에서 담배를 태울 수 있는 날은 오지 않겠지. 아쉽다.


지금은 동네에 고등학교생겼고 초등학교도 하나 더 늘었지만 원래는 초등학교 중학교 하나씩만 있었다. 래서 동네 아이들은 모두가 동창이고, 기본적으로 10년 지기 친구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당사자들 간의 교류가 전무해도 친구의 친구나, 가족들을 한두 다리만 건너면 모두가 아는 사이다. 그러다 보니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인사를 건네오는 처음 본 아주머니가 친구엄마이고, 짜장면 배달 온 기사는 동생 친구고 그렇다. 지역사회라는 단어를 저절로 실감하게 만드는 동네다. 요즘은 재개발 이야기와 치솟는 집값들 때문에 동네 사람들이 떠나고 새로 온 사람들이 많아져 낯선 이들로 가득해졌지만, 아직도 다니다 보면 뜻밖의 그리운 얼굴들을 종종 마주칠 수 있다.


우리 집은 이사를 여섯 번이나 했는데 모두 동네 안에서만 움직였다. 걸어서 15분이면 끝에서 끝까지 갈 수 있는 자그마한 동네이니 이사를 한다 해도 새로운 감각은 그닥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 이사는 아무런 감흥이 없는 이벤트가 되었다.

한 번은 우리 집이, 우리 집이 아닌 적있었다. 내가 군대에 있던 동안 이사를 갔는데 아무도 말을 안 해준 것이다.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라 엄마도 이사를 갔다는 자각이 없었나 보다. 집주소를 묻기 위해 찾은 공중전화까지의 거리보다, 이사 간 새집 위치가 더 가까웠던 것이 연스러웠다.


지금은 호수라고 하지만 몇 년 전까진 저수지였다. 그래서 나와 내 친구들에겐 여전히 저수지라 불린다. 가끔 산책코스로 저수지를 선택하면 색다른 기분이 들기도 한다. 녹조가 가득한 물비린내 나는 곳이었지만 그래도 경치는 좋았다. 물가가 가까이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장점이다. 우리 집 옥상에서도 보이는 저수지는 이 근방 어지간한 호수들보다 훨씬 크다. 그래서 예전부터 철새들도 자주 들렸고, 요즘엔 외국인관광객들도 단체로 놀러 오는 곳이 되었다. 레일바이크, 짚라인 같은 놀거리도 생기고 생태공원에 글램핑장도 들어서서 주말엔 저수지 입구 한참 전부터 차들이 미어터진다. 그렇게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나에겐 텐트 치고 고기 구워 먹던 저수지일 뿐이다. 이래저래 변한 들, 내겐 의미가 변하지 않는 것이 이렇게 있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마주치지 않는다. 우연을 가장한 순간을 기대하며 찾아다니지만, 진정 바라는 것이 마주침인지 엇갈림인지는 정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우연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원래부터 아무것도 없었지만 한번 채워졌다 빠진 빈 공간이 유독 휑한 것은 별로다. 너는 보이지 않고 핸드폰은 울리지 않는다. 이 좁은 동네에서 너를 포함한 기억을 새긴 것은 잘한 일이 아닌 것 같다. 자주 가던 감자탕집에 가기 불편해졌고 원래 다니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돌아가야 한다. 당연한 동네에서 당연하지 않은 것들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내 공간들이 온전한 내 것이라 할 수 없게 된 것이 불편하다. 예상보다 과하다. 그렇다 해 별 수 있나. 어차피 난 이 동네에서 계속 살 테고 매일 돌아다닐 것이다. 새로운 건물이 지어지고, 처음 보는 상점이 생기겠지. 또 근처로 이사를 갈 테고, 도로가 더 넓어질 수도 있다. 너무나 익숙한 풍경에서 티 안 나게 하나씩 바뀌면 눈치채지 못할 거다. 10년, 20년 뒤에 지금의 모습과 전혀 달라진 동네 풍경을 보며 새삼스레 느끼지 않을까. 이젠 너를 기억하지 않는다는 걸. 아직은 조금 먼 미래의 예상이다. 역시나 다가감 배제되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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