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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Jun 18. 2023

넋두리

주제 내 인생의 이방인

길가에 피어난 샛노란 이름 모를 꽃

유달리 채도가 강해 눈에 확 뜨인다

여리고 가느다란 줄기에 애처로이 매달려

스치는 바람에 제멋대로 흔들린다


어디서 들리는지 알 수 없는 산비둘기의 울음소리

아직은 이어져야 할 듯하지만 그냥 끝내버린다

왜 지금이냐는 궁금증만을 남기고

다시 울어달라는 나의 바람은 들어주지 않는다


날씨가 무더워지고 커피는 더 차가워졌다

한잔이 두 잔으로 늘고 해는 갈수록 길어진다

아직 여름은 제대로 오지도 않았는데 이미 겨울이 그립다

쌀쌀한 것은 너의 표정만 빼고 다 좋다


뛰어가는 아이들이 경쾌하다

마치 나와는 다른 중력의 영향을 받는듯하다

아이들의 웃음은 이미 관성에 의해 멈출 수가 없고

그것이 끝나는 순간은 아이들이 커져버릴 때


그 나무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대로다

못 본 지 3년이 된 듯하다

변한 게 없을 나무를 뭐 때문에 보고 싶을까

변하지 않았으니 보고 싶은 것인데 말이다


담배연기가 퍼져가는 것을 본다

흩어진 뒤에 보이는 것은 구름

아무런 뜻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보이는 것은 보고 싶은 마음


우연히 들여다본 사진 속 미소

언제일지 모를 미래에게 남겨둔 과거의 그것

그때의 너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도 마찬가지다


외국의 길거리에 서있으면 낯설다

수많은 이방인들이 스쳐 지나간다

한참 동안 그들을 바라보다 문득 깨닫는 것은

내가 이방인이라는 단순한 사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생각이 떠오른다

기대와 체념은 서로의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떨어져 있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 닳아진 소매 끝단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손 끝은 닿을 수가 없다

잠시 뒤돌아 쳐다보는 게 전부이다

지나는 수많은 인파 속 이름 모를 이방인

그중 한명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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