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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Mar 27. 2023

무제

주제 나에게 글쓰기란

눈으로 듣는 말을 적것, 입 대신 사용 하는 것.

표현할 수 없는 생각을 최대한 납득하기 쉬운 형태로 변환해 둔 것. 존재하지 않는 과거를 될 수 있는 한 남겨두는 것. 머리에서 감당하지 못한 것들을 옮겨둔 저장소.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는 진심. 절대로 전달하지 못할 마음. 가장 순수한 진심을 담은 거짓말의 기록. 아무런 의미를 담지 않는 낙서. 그림이나 음악 대신 사용하는 수단. 모순의 개념을 풀어내기 위한 도구. 의미 없는 끄적거림. 어쩌지 못하는 것 들의 정리.


아무도 보지 않을, 못 것 들은 내 안에서만 떠올랐던 것들과 전혀 다른 게 없을 텐데.

그렇다면 그것들의 의미는 무엇일까. 내가 아닌 타인에게 읽힘이라는 사실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것들이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고 있다면 그것들은 그냥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라 생각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무언가를 적는 행위를 멈추진 않을 것 같다.

결론은 같을지언정, 도달하는 과정이 다르다면 다르다. 그렇다면 그것의 의미는 나름대로 부여가 되는 것이니까. 그렇게 나름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한 들 결과는 여전히 같지만 말이다.



최초의 글쓰기는 아마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쓴 일기였다. 지금도 책꽂이에 그 시절 적어뒀던 일기가 남아있는데 다시 봐도 나는 그대로이더라. 쓰는 단어나 어휘 문법등이 모자란 건 학습이 부족했던 탓이라 어쩔 수 없지만 사고방식이나 생각하는 가치관 등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난 30년 전과 비교해서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표현할 수 없던 생각들을 풀어내는 방법이 늘어났을 뿐이다.

이후로는 한동안 일기 이외엔 글을 쓴 적이 없다. 다시 무언가를 끄적인 건 입대를 하고 나서였다. 짬이 낮은 신병에겐 책을 볼 여유가 존재하지 않았고, 그래서 활자에 대한 갈증이 꽤 컸었다. 책을 읽을 수 없으니 그냥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끄집어내서 적어두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것을 읽음으로써 어느 정도 나의 부족한 욕구를 해결해 나갔다. 아마 살면서 다시 갈 일 없을 교도소라는 장소와, 군대에서의 제한당한 자유, 처음 겪는 여러 가지 정신적 고통들은 자그마한 수첩에 끊임없이 무언가를 적게끔 만들어줬다. 그때부터 이어진 나의 글쓰기는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나에게 글쓰기란... 글을 쓰는 특별한 목적이 있던 적이 있을까?

그런 생각 자체를 해 본 적이 없어서 여전히 모르겠다. 그냥 풀지 못한 감정을 해소해 둔 나만의 감정 쓰레기통 일 수도 있고, 스스로에게 취해 흘러나온 감정의 취기인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목적이나 의미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여전히 별다른 생각을 하진 않는다. 그냥 억지로 찾아보려고 하다 보니 이런저런 것들을 끼워다 맞추는 것뿐.



프로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고 모든 이들이 공감하는 멋진 글을 쓰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저 나 스스로가 만족할만한 글이면 충분하고, 내 생각을 오해 없이 다른 이들에게 전해둘 수 있다면, 과거에 내가 남긴 기록을 읽고 그 순간을 미화 없이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계속 써 내려가다 보면 언젠가는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는 글을 남겨둘 수 있지 않을까.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들을 글이란 매개체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아주 단단한 유연함을 지닌 나의 이상한 사고방식을 이상하지 않게 보여줄 수 있으려나 싶다.

그러나, 딱히 누군가에게 납득시키고 싶은 욕구는 없기에 별 다른 노력을 하진 않는다. 그저 흐르는 대로 두다 보면 어딘가에 다다르겠거니 하는 마음일 뿐이다.

그래서 결국 내게 글쓰기라는 것은 흐름 속에 한 부분일 뿐인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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