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최고의 문장 콘테스트
주제 문장으로 책 설명하기
그랑프리 발표만이 남겨져 있는 회장은 이미 뜨겁게 달아올라 관객들은 자신이 고른 문장이 가장 최고라고 소리치거나, 다른 문장들을 깎아내리며 각자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개중엔 선택한 문장이 일찌감치 탈락해 흥미를 잃고, 아무 문장이나 뽑히라고 흰소리를 하는 자들도 있었으나 그런 이는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어찌 되었건 명작 '데미안'에서 고른 문장들이다. 그중에 최고가 결정되기 바로 직전인 상황이니 관객석이 들썩 거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작가 '헤르만 헤세'가 집필한 '데미안'은 그가 오로지 작품성만을 평가받고 싶다며, 이미 유명했던 본명을 숨기고 '싱클레어'란 이름으로 발표한 책. 작 중 주인공이기도 한 '싱클레어'가 유년시절 '데미안'이란 친구를 만나면서부터 개인과 세상에 대한 고찰, 종교적 철학,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 알게 된 사상에 대한 회고로 이루어진 이야기이다. 고전 명작 필독서답게 마음에 드는 내용과 문장들로 가득 차서, 한 문장만 찾으려 했으나 12개나 골라버렸다. 그중 가장 좋은 문장을 어찌 고를까 고민하다가 콘테스트를 열어 순위를 정해 보기로 했다. 문득, 작가가 지난한 시간 동안 영혼의 산고를 느껴가며 세상에 내놓았을 문장들이 단순한 문자(文字)가 아니라 문자(文子)나 다름없다 생각되어, 남의 자식과도 같은 존재를 내 멋대로 순위 매겨도 될까 싶었다. 그러나 이 콘테스트는 그저 '나'의 상상일 뿐인데 무슨 상관이랴 싶어 이벤트를 개최했다.
12 문장들 중 최종적으론 3개의 문장이 마지막 우승을 위해 남아있었다. 모든 선택은 주최자이자 심사위원인 내가 고른 것이다. 심사기준으로는 문장 자체가 주는 인상, 이야기의 흐름 속 등장위치, 공감 또는 평소 생각지 못했던 부분, 관객들의 지지 등등 여러 가지 기준들을 총합하여 정했다.
참고로 관객들에 대해 설명하자면 모든 관객은 '나'들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의 '나'에 도달하기까지 존재했던 수많은 '나'들. 기억에 없는 5살 이전의 '나'들에겐 아쉽지만 참가자격이 주어지지 않았고, 그 이후의 모든 시간들, 장소들, 행동들, 감정들을 조합하여 이루어진 '나'들이 각자가 맘에 들어한 문장을 응원했다.
12개의 후보 중 아쉽게 떨어진 <나는 감사라는 감정을 미덕으로 여기지 않고, 어린아이에게 감사의 표시를 요구하는 행위도 잘못된 것이라고 본다>라는 문장은 특히 '모르는 아저씨에게 강제로 넘겨받은 만두를 들고 있던 8살의 나'가 강력하게 지지했었다. 그러나 문장의 뒷부분인 '잘못된 것이라고 본다'는 부분에서 '현재의 나'의 가치관에 부합하지 않아 아쉽게 탈락시켰다.
'싱클레어'가 만났던 사람 중 '피스토리우스'라는 음악가가 나오는데 종교적 가치관에 대해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던 인물이다. 그와 대화 중 나왔던 <자연이 자넬 박쥐로 만들었다면 타조가 되려고 애쓰지 말란 말이네>, <우리 내면에 없는 것은 우리를 화나게 하지 못하는 법이니까!>, <그는 세상이 이미 보아온 형상을 너무나 사랑했는데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완전히 새롭고 색다른 것을 원했다>라는 문장들은, 의미나 그 자체가 주는 인상이 마음에 들었고 내 평소 가치관과 비슷하여 좋았지만, '피스토리우스'라는 캐릭터에 대한 생각이 바뀌면서 문장들에게 받은 느낌도 달라져버렸다.
이외에 아쉽게 떨어진 문장들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내 자신의 문제가 곧 모든 인간의 문제고, 모든 삶과 생각의 근원이 되는 문제라는 인식이 갑자기 나를 뒤덮었다>, <삶이 신비로운 예감과 영롱한 새벽 여명으로 가득 차자, 다른 이들의 조롱에 무심해졌다> 이 2개의 문장은 '싱클레어'가 스스로의 내면에서 무언가를 느끼게 되는 순간 등장한 문장들로,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여러 '나'들이 지지했지만 이야기 속 비중이 약하게 느껴져 탈락했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린 15살 이전의 '나'들이 많은 지지를 했던 문장인 <나의 어린 영혼의 샘물에 돌멩이 하나가 떨어졌다>도 괜찮았다. 그러나 세월과 함께 넓고 깊어져버린 '현재의 나'의 샘물은 돌멩이가 일으킨 파문이 익숙해지고 무뎌져버려서 감흥이 줄어들었다.
'21살 교도소 감시대 야간근무 중 수첩에 글을 적던 나'와 '27살 어지러움을 못 벗어나던 나'처럼 사색에 굉장히 집중하던 때에 자주 썼던 글과 비슷한 <운명과 기질은 하나의 개념에 대한 두 개의 이름이다>라는 문장은 마음에 들었지만, 전체적 평가점수가 낮았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에게 <아무도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어요. 그러나 두 길이 친밀하게 마주치는 곳에서는 온 세계가 잠시나마 집처럼 느껴지죠>라는 문장은 강하게 와닿은 글귀였다. 그러나 책의 내용과 전혀 다른 의미로 좋았던지라 최종까진 올라가지 못했다.
이윽고 '삐ㅡ' 하는 소음과 함께 스피커에서 사회자의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하고, 대회의 마지막 발표만을 앞둔 장내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멘트가 흘렀다. 모든 조명들이 암전 되고 최종 우승 발표를 목전에 둔 3 문장이 하나씩 전광판에 나타난다. 객석에선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래서 모든 개인의 이야기는 중요하고, 영원하며, 신성하다>
서문에 등장하여 내가 '데미안'이라는 책을 고르게 해 준 문장이다. 작가는 이야기에 대한 생각을 말하며 모든 개인의 이야기는 중요하지만 특히나 자신의 이야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의 이야기 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든 '나'들에게도 통용되는 이유이고, 모든 '나'들은 결국 '모두'이다. 즉, 세상에 존재하는 '모두'의 이야기는 중요한 것이다. '데미안'은 출판된 지 벌써 100년이 지났지만 지금의 나에게도 읽히고 있다. 내년에도 누군가에게 읽힐 것이고, 15년 뒤에도, 47년 뒤에도 여전히 어디선가 읽힐 것이다. '데미안'뿐만이 아니라 모든 이야기가 그렇다. 5000년 전 곰이 마늘을 먹던 이야기도 아직까지 하고 있지 않나. 결국 이야기라는 것은, 형태가 변하고 언어가 달라지고 받아들이는 객체들이 달라질 순 있지만, 영원한 것이다. 영원히 계속되는, 개인 개인이 모인 모두의 이야기. 그것을 신성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나는 내 속에서 스스로 솟아나는 것, 바로 그것을 살아보려 했다>
삶이란 것은 결국 나의 것이다. 살아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타인과의 얽힘이 존재하고, 그것은 때론 나를 짓누를 만큼 거대해지기도 하지만 종국엔 오롯이 '나'만이 남아 살아간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데도 남들과 다를까 봐 걱정한다. '싱클레어'는 살아감의 방식을 몰라 고뇌했다. 삶의 목표를 찾지 못할까 봐, 찾았지만 이루지 못할까 봐, 이뤘지만 그것이 사악하고 위험하고 무서울까 봐. 그는 어려워했다. 나 역시 비슷하지만, 삶의 목표 같은 것은 애초에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주변 사람들이 각자의 꿈꾸는 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봤을 때, 불안한 적도 있었다. 나도 그들처럼 살아야 하는 것인가 하고 고민하기도 해 봤지만 금세 원래의 나로 돌아와 졌다. 그저 내 속에서 솟아나는 그 무언가로 살아가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나의 방식이다.
<뭔가를 간절히 원해서 발견한 것이라면, 그건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그의 필사적인 소원이 필연적으로 그곳으로 이끈 것이다>
자살충동까지 느낄 정도로 고통스러워하던 '싱클레어'가 우연히 피난처를 발견했을 때 등장한 문장이다. 우연 이란 것에 대한 견해가 나와 비슷하여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다.
나는 우연을 신용하지 않는다. 그저 바라기만 하는 것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에. 우연이란 단어를 사용하지만, 우연이란 의미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 현상에 도달하기까지 아주 작은 의지라도 개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한겨울에 우연히 벚꽃을 마주치려면 최소한 벚꽃나무를 바라보고라도 있어야 한다. 그러한 최소한의 의지와, 아주 작은 수라도 존재하는 확률이 더해져야 우연이 나타날 수 있는 것 아닐까? 아직은 인과를 완전히 벗어난 현상을 본 적이 없어서 하는 생각일 뿐이다.
문장들에 대한 나의 심사평이 끝나자 객석의 소란스러움은 어느새 모두 가라앉았다. '나'들은 저마다의 감상을 즐기고 있었다. 각각의 다른 상황들 속에선 받아들이는 감정들도 전부 달랐다. 어떤 '나'는 내일부터 다시 살아가겠다는 원동력을 느끼고 있었고, 또 다른 '나'는 자신에게 벌어졌던 일들이 그저 우연한 기적이 아니라 스스로가 탄생시킨 의지의 결과라는 이야기에 위로받았다.
아마 '헤르만 헤세'도 지금의 '나'와 '나들'이 느끼는 것에 대해서 예상하지 못했을 것 같다. 세계 1차 대전이 벌어지던 유례없는 격동의 시기 한복판에 서있던 그가 100년 뒤 어느 동양인이 느낄 감정들을 어찌 예상할 수 있을까. 심지어 나 혼자서도 수많은 감정과 다른 방향을 느끼고 있는데 말이다. 새삼스레 글이란 것이 거대하다고 느껴졌다,
어느 정도 여운이 지나간 뒤, 무대 위에 내가 올라왔다. 손에 쥔 봉투 속엔 나의 최종 결정이 들어있다.
"데미안이란 책을 이제야 읽게 된 것이 어찌 보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를 내가 10대 때 읽었다면, 약간은 극단적인 사상에 치우쳐져 반대쪽을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공허하던 시기였다면 아무런 문장도 남기지 못한 채 흘려보냈을 수도 있었겠지요. 이 책은 적어도 나에겐 좋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책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책을 읽으며 문장들을 고르는 시간들이 재밌었습니다. 그랑프리로 뽑힌 문장이 다른 문장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지금의 '나'에게 반발짝 더 다가온 문장일 뿐이고, 그것은 당장 내일이라도 다시 뒷걸음질 칠 수도 있으니까요. 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제 최종 그랑프리를 발표하겠습니다."
여유롭게, 그러나 느리지 않은 손놀림으로 봉투를 열고 종이를 꺼낸다. 모든 '나'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트레몰로 소리가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모두 '나'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대한다.
"데미안 최고의 문장 콘테스트 최종 그랑프리에 선정된 문장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