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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Jul 11. 2023

구성

주제 내 나이가 어때서

 나이가 지금 몇 살이지? 하고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안 그래도 나이를 신경 쓰지 않고 사는데 얼마 전에 법까지 바뀌어서 더 헛갈린다. 포털사이트를 열어 '나이'까지만 입력해도 '나이계산기'가 연관검색어로 떠오른다. 나이를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이 꽤 있나 보다. 나만 그런 건 아니라 다행이라 해야 하나. 학교를 다니던 10대 때는 나이를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었다. 학년과 나이가 짝지어서 따라왔기에. 그때는 아빠가 아들나이를 모른다는 게 참 이상하게 여겨졌지만, 이젠 왜 그랬는지 충분히 알겠다. 도 이러는데 아빠라고 다를리 없었겠지. 나이는 매년 바뀐다. 평생 동안 바뀔 그것을 매번 외우고 다니는 것이 과연 필요한가 싶다.


이가 어떻게 되세요? 그 질문을 들었던 것은 아마 훨씬 이전에도 있었겠지만, 기억 속 처음은 18살이다. 평소에 교복을 입고 다녔고, 또래 친구들과 함께 다니면 자연스레 나이가 아닌 학년을 물었다. 하지만 이스탄불에서 담배를 물고 캔맥주를 마시며 다니는 한국인을 마주친 여행객들은 결코 학생이란 신분을 떠올리지 못했고, 나이를 물을 수 밖에 없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선 밤마다 가벼운 술자리가 열렸는데 자연스럽게 투숙객들끼리 안면도 트며 여독을 풀었다. '라키'라는 독한 터키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는데, 시작할 때 묻는 신상정보는 나이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 "18살입니다"라는 대답은 언제나 한 번의 납득을 시킬 수 없고, 마지막엔 여권 까보라는 말까지 나왔다.


스탄불은 나에게 묘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도시, 세련된 모습인 트램이 구시가지를 가로지르는 모습, 곳곳에 울려 퍼지는 독경소리, 모스크들의 뾰족한 첨탑 사이로 날아가는 새들의 실루엣, 들어간 입구와 출구가 항상 달라지는 넓디넓은 바자르, 케밥을 우적우적 씹어가며 바라보던 보스포루스 해협. 이젠 튀르키예라는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지만 나에겐 여전히 터키. 첫 배낭여행이라 아무런 지식도 없었고 경험도 미천했다. 외국인들과의 대화나 관광지에서의 방식을 아직 모르던 때라, 조금은 아쉬움이 남아있다. 지금의 나라면 더 누빌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을 것이라. 그렇다 해도 그곳의 풍경은 충분히 새겨져 있으니 아쉬움을 달랠 순 있다.


고 싶은 곳이 아주 많았었다. 한번 풀려버린 여행욕구는 수위를 가득 채운 댐처럼 끝도 없이 그것을 방류해 댔다. 티브이에서 나오는 외국 풍경이나, 인터넷에서 우연히 스치던 사진들만 봐도 마음이 일렁였다. 그런 에서 인도는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 여행에 있어 적절한 기준점이 되어준 것이다. 어지간한 불편은 인도를 생각하면 다행이다 싶었고, 재미는 인도보다 더한 곳을 찾기 힘들었다. 떠나고 싶 마음을 현저하게 줄일 수 있었다. 나는 여행과 관광을 다르게 분류한다. 어떤 기준인지 명확한 설명은 애매하지만, 여행은 인도 이후로 없었다. 마지막 여행 시기나 장소는 이미 정해뒀으니 그때까진 지금처럼 관광이나 느긋하게 다닐 것 같다.


른이라 불릴 나이가 되었지만 실감은 나지 않는다. 보통은 현실적이라 부르는 세속적인 고민들만을 반복하며 매달리는 것이 마치 '어른'으로 취급되는 것 같, 예나 지금이나 내겐 동떨어져 다. 내 나이쯤 되면 결혼이라는 과정이 항상 포함되어 있고, 직업이 어떠느니 모은 돈이 얼마느니, 주식이나 부동산이나 하는 문제들이 꽤 높은 비중을 차지다. 그런 분야로 들어가면 난 철저하게 어린이다. 관심이 없고 가질 예정도 없는 것들.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것은 평생에 걸쳐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뒷전이다. 내가 스스로 정한 어른이나, 남들이 부르는 어른이 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지 않을까 싶다.


가 되면 달라지지 않을까. 엄마는 그런 생각을 했었을 것이다. 동네에서 가장 명석하다 부를 수 있던 아들이 어느새부턴가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보며 불안했겠지. 그런 엄마의 기대를 서서히 사그라들게 했다. 때때로 그런 생각을 한다.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고 대학에 들어가고 취업을 하고. 그랬다면 뭐가 달랐을까? 결과적으론 지금과 별 다를 것 없이 회사나 다니며 살고 있겠지만, 엄마가 조금은 덜 울게 만들었겠지. 책임지고 싶진 않지만 나의 과오가 있다는 사실이 께름칙한 것은 사실이다. 불효자는 운다는데 난 과연 얼마나 울 수 있을까.


두르지 않아도 나이는 먹어진다. 서두를 수도 없긴 하지만. 스무살 이후론 나이가 아닌 출생 연도 대했다. 백 년이 지나도 내 출생 연도는 변할 일이 없으니 그게 합리적이다. 문득 본질적인 물음을 떠올린다. 나이 중요한가? 던져진 질문에 대해 양측의 팽팽한 대립이 머릿속에서 떠오른다. 글을 적다 말고 한동안 뇌 속에서 토론장이 열린다. 한치의 양보 없는 양측 의견들은 질문의 무게감을 새삼스레 느끼게 만든다. 한참을 멍하니 생각을 이어가다 내려진 결론은 '알바 아니다'로 나버다. 뭐 이런 무책임한 답이 있나 스스로에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정말 대충이구나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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