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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May 20. 2024

통화

예상치 못한 순간에 듣게 되는 너의 목소리는 반가움으로 시작했지만 지금까지 개운하지 못하다. 그때에 내린 비가 영향을 끼친 것인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면 안 된다. 그래선 안된다.

흔들리는 목소리가 그저 목소리뿐이 아님을 눈치챈 것은 아주 간단했다. 왜, 누가, 무엇이, 어째서. 묻고 싶은 물음들은 괜찮아 라는 말로 둔갑해서 건네졌다. 필요한 것은 설명이 아니었을 테고, 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아무리 곱게 쌓았다 해도 결국은 무너지거나 벗어나버린다. 필요에 의한 기대는 필요에 의한 부응이 최선이었다. 굳이 너에게 잘못이라 짚어줄 필요가 없었다. 나의 감정은 잠시 덮어두어야 했다.



날씨가 조금 더워진다 싶더니 바로 들이친 비는 기온을 뚝 떨군다. 건방지게 얇아진 옷차림에 대해 아직이라며 훈계한다. 꽤나 따끔한 회초리는 빨간 자국 대신 오소소 소름이 올라오게 만든다. 때를 맞춘 듯이 마음도 차가워진다. 하루하루 시간을 덧대며 나름의 세월을 덮어두었다. 금세 지난 일 년은 흐려지지 못하지만 가려졌다. 의미 없는 미봉책이지만 말이다. 일상을 평범한 일상으로 채운다. 노력할 수 있는 만큼의 평범함으로 만들어 낸 그것들은 수많이 겹쳐진 유리장들이다. 많이 두꺼워졌지만 그래도 투명하다.



너를 들으며 난 예전을 떠올리고 있었다. 일종의 데자뷔. 비슷했던 적이 분명 있었다. 허탈했다. 부정적인 뉘앙스가 빠진 허탈함이다. 해야 하지만 할 수 없고, 위로는 형식적이다. 나름의 무력함까지 동반한 감정은 들이치는 밀물에 맥없이 밀려나고 빠져나가는 썰물은 어느 것 하나 쥐고 있을 수 없다. 그저 서있는다. 비가 조금 더 거세졌다. 천장에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다.



허공을 두드리는 다독임이 전해질 리 없다. 안쓰러움의 눈길은 너의 망막에 닿지 못한다. 아무리 빨라도 감긴 눈은 상을 맺지 않는다. 실체가 없는 염원과 기도가 유일하다. 약해진 빗줄기가 위로의 성분을 품었길 바랐다. 바라지 않는 되풀이가 다시 되돌려지길 원한다. 어쩔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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