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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다반사 Oct 26. 2019

분노로 점철된 비참한 자들의 비참한 이야기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2019)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레미제라블은 프랑스의 한 도시, 몽페르메유에서 벌어지는 비참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깊은 잔상을 남기면서 화두를 던지는 영화입니다.


영화 속 프랑스의 모습은 서로에 대한 분노로 점철된, 분열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이가 장난 삼아 데려간 새끼 사자를 가지고 간 것을 가지고 둔기를 잔뜩 들고 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의 아지트에 찾아가 으르렁 거리는 집시 세력들. 살얼음판 같은 평화를 유지하고자 더 으르렁 거리는 경찰들. 그리고 경찰들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 고민하기 바쁜 아프리카계 이민자 세력들. 그들의 모습은 분노로 가득 차 있으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 마냥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습니다. 영화는 중반부까지 분노의 임계점이 초과하기 직전의 상황을 보여주며 긴장의 끈을 놓치게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노의 임계점이 결국 넘어가게 되는데,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경찰들의 과잉진압으로 인해 소년이 고무탄을 맞은 상황에서 경찰은 제 식구를 감싸기 위해 병원이 아닌 약국에서 약을 챙겨 응급처치를 해줄 뿐입니다. 그리고 소년은 그들로부터 사과 한마디 받지 못하고 오히려 침묵할 것을 강요받습니다. 천진난만했던 그 소년은 공권력으로 인해 비참한 자가 돼버렸고, 끝내 화염병을 들고 맙니다. 더 비참한 것은 경찰입니다. 소년들의 공세에 밀려 위기에 처한 것도 그렇지만, 시민을 보호해야 하는 그들이, 그것도 자기 자식 또래의 어린 소년에게 권총을 들이대야 하는 상황이 이토록 비참할 수 없습니다.


이들의 충돌 이후의 상황을 잠시 상상해보면 결과적으로 폭력의 상승작용으로 이어질 것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들의 화염병에 경찰은 최루탄으로 대응할 것이고, 그들의 돌멩이에 경찰은 총으로 대응할 것이니 말이죠. 분노의 충돌로 더 큰 폭력이 발생하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임은 자명해 보입니다.


이쯤에서 영화의 첫 부분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축구로 하나가 되어 열광하는 프랑스 시민들 말이죠.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분노가 가득 찬 비참한 자들로 만든 것일까요? 영화가 끝나고 난 뒤, 그 장면을 다시 떠올리면 왠지 모를 서늘함이 찾아옵니다.


영화는 레미제라블의 한 부분을 남기며 마무리합니다.


"세상에는 나쁜 풀도, 나쁜 사람도 없소. 다만 나쁜 농부가 있을 뿐이오."


화염병을 든 소년도 또래 애들 사이에선 천진난만한 소년이었고, 경찰들도 가정에 충실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소년으로 하여금 화염병을 들게 만든 것일까요? 무엇이 경찰이 소년에게 권총을 겨누게끔 만든 것일까요? 과연 '나쁜 농부'는 누구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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