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속 성평등을 찾아서 -벡델 초이스 - ④헤어질 결심
감독: 박찬욱
주연: 탕웨이(서래役), 박해일(해준役)
상영시간:138분
등급:15세 관람가
개봉일: 2022.06.29.
"성별, 성 정체성, 성적 지향... 이런 것 가지고 차별받는 사람이 없는 그런 사회를 만들 수 있는… 후보를 볼 때, 투표를 할 때 여러 가지 기준 중에 그런 것도 한 번쯤 고려해 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박찬욱 감독, 백상예술대상 수상 소감>
박찬욱 감독의 작품 <친절한 금자씨> <아가씨> 그리고 <헤어질 결심>에는 여성이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남성 위주의 대중미디어 현실 속에서, 손익분기점 같은 경제적 이윤을 고민하고, 흥행 보증의 측면도 고려했을 법도 한데, 그는 소위 페미니즘 영화를 많이 만들었습니다. 진보적 페미니즘 영화의 방향을 이끌어준 감독의 시대적 안목에 박수를 치게 됩니다.
2022년 개봉된 영화 <헤어질 결심>은 75회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으로 감독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박해일과 탕웨이 두 배우의 탄탄한 연기력으로 끌고 가는, 감정에 충실한 서스펜스 멜로 영화입니다. 박해일(형사役)과 탕웨이 (용의자役) 사이의 흔들리는 로맨스가 아주 처연하게 박찬욱 감독 특유의 미장센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미장센 (Mise-en-Scène)이란 영화와 연극, 오페라, 뮤지컬에서 등장인물의 배치나 역할, 무대 장치, 조명 따위에 관한 표현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처음 관람할 때는 놓친 복선(암시)들이 많지만, 여러 번 관람하다 보면 감독이 의도한 영화의 미장센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영화의 앞부분에서는 서래의 살인사건을 미결로 놔두어야 하는 해준의 사랑을 보여줬고, 뒷부분에서는 해준을 위해 서래 자신의 살인 사건을 미결로 만들어야 하는 그녀의 사랑을 나타냈습니다.
이 영화에서 무엇보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자기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능동적인 주인공이란 측면을 눈여겨보게 됩니다. 증조할아버지의 산을 찾기 위해서 불법 체류자 신세도 마다 않고 한국행을 택합니다. 이런 약점을 알고 자신을 학대하는 남편을 마침내 (영화 속 대사) 산에서 떠밀어 죽입니다. 가부장적 억압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어떠한 이유든 살인을 정당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폭력을 당연시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보편적 인권에 어긋납니다. 법의 가부장적 성격은 남성성이 강해서 양성평등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많은 여성들 가운데 사회적 소수자인 이주여성들은 가정폭력을 당해도 무관심하거나 처벌도 형식적으로 그치기 쉽습니다. 필자는 법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는 【헌법 제2장 11조】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순간, 서래는 바닷가 모래사장에 스스로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밀려오는 바닷물에 잠깁니다. 해준에게 미제사건으로 남아, 영원히 그 와의 사랑을 지속하려 했습니다. 독한 년! (영화 속 대사) 역설적으로 서래가 선택한 결말입니다. 약자인 이주여성이 주류사회 남성에게 사랑을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사랑하고 사랑받고자 했습니다. 핵심 주제에서 남과 여의 사랑을 평등하게 이끌어 가는 점이 벡델초이스 영화에 부합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짙어가는 의심과 깊어지는 관심 사이에서 샤론 스톤 주연의 <원초적 본능:1992> 영화가 오마주 되었습니다.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꼿꼿한 자세의 탕웨이가 속을 짐작하기 어려운 미묘한 역할을 잘 소화해 냈습니다. 다만 1990‘s에는 여성의 몸을 상품화(섹스어필)해서 흥행을 이끌려고 했었고, 오늘날은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다양한 여성의 시대모습을 보여준 점이 달라진 차이입니다.
박찬욱 감독의 작품에는 있는 그대로의 불편한 진실들을 담고 있습니다. 작품 속 다양한 여성들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진부한 여성의 재현에서 벗어나 벡델이 제안한 성평등적 메시지를 담아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다른 비슷한 영화 속 장면들에서 오마주 (Hommage: 다른 감독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특정대사나 장면 등을 인용하는 일)를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박해일은 <첨밀밀:1996> 영화 속 여명의 외모와 비슷해 보이게 나왔습니다. 아마도 상대배우가 중국인이어서 여명배우와 오마주 되어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은 아시아의 샤론스톤 탕웨이와 한국의 여명 박해일을 캐스팅함으로써, 필자는 서스펜스와 멜로의 완성도를 높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밖에 열린 결말에서는 영화 <만추:2011>도 잔잔하게 생각납니다.
프랑스식 열린 구조 엔딩은 긴 여운을 남기기 때문에 칸 영화제가 선호하는 작품 스타일입니다. 항상 박찬욱 감독은 호평을 받았었고 <헤어질 결심>에서도 미학적으로 훌륭한 쇼트(shot) 표현을 높게 평가받았습니다. 아름다운 영상미와 안개 낀 푸르스름한 빛이 여주인공의 사랑을 더욱더 고혹적으로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