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얼굴이 화끈해질지도 몰라

서로에게 다른 온도를 주는 단어들에 대한 단상

by 인문잡지 영원


인간의 몸은 이따금씩 뜨끈하게 열이 올라 살갗의 군데군데가 한 여름의 아스팔트 도로처럼 이글이글 끓어오른다. 이를테면 특별히 심장이 유독 빠르게 뛰게 되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라든가, 내리막길을 도도하게 거닐다가 우스꽝스럽게 넘어졌을 때 그렇게 된다. 평소에도 따듯한, 오늘의 최고기온이었다면 견디기도 어려울 정도의 체온을 가진 이들 속에 응축된 열심(熱心)이 폭발할 때다. ‘냉혈한’이 무자비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되는 온혈동물의 세계란 그렇다. 지적인 두뇌와 다르게 제멋대로 뜨거워질 때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時’는 각각 또 다르다는 점이, ‘제멋대로’의 묘미일 테다.

나는 그 중에서도 언어가 발화發話하는 순간에 대해 논하고 싶다. 뇌리에서 잠깐 일렁이는 단어여도, 귓바퀴를 타고 흘러오는 단어의 읊조림이어도 아무렴 좋다. 언어는 그 자체로 표상이 되니 말이다. 그러니 살갗에 닿아오는 서로의 온도처럼, 머릿속에 화끈화끈한 잔흔을 남기고 가는 단어들을 톺아보자. 그리고 얘기해보자…. 어떤 언어들은 그것들이 내뱉어지는 것만으로도, 말 그대로 불꽃을 만들어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머리를 뜨겁게 덥혀버리자! 좋아하는 언어들로.



버찌 [버찌]
1. 벚나무의 열매
2. 버터처럼 기름지고, 어쩌면 산딸기 같은 과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무렵, 어쩌면 나의 평생의 취향을 결정짓는 책이 될지도 모르는 것에 쉬는 시간을 모조리 쏟아부었다. 퍽 두꺼운 두께에, 총 9권으로 되어있는데다가, 어린이나 청소년 용이 아니라 그저 일반적인 소설책으로 출판된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상 서랍 속에서 책을 꺼내 읽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쉽게 몰두한 탓에 학기가 끝날 무렵즈음에는 나는 박경리의 <토지>를 읽어보진 않았어도 나는 로라 잉걸스 와일더의 <초원의 집>을 읽었노라고 으스댈 수 있는 어린이가 되어 있었다.

꽤 오래 전에 번역된 책들은, 특히 그것들이 어린이를 위한 책이 아니었기에 나에게는 유독 불친절했다. ‘버찌’ 또한 그런 불친절한 언행을 구성하는 단어 중 하나였다. 미국 서부 개척시대, 숲 속에서 사는 ‘로라’는 자연히 무엇이든 해먹고 따먹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 중에서도 ‘버찌’는 10살 남짓의 로라의 입 속으로 가장 많이, 그리고 자주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만큼 책에서 가장 많이, 그것도 아주 열성적으로 반복되어 언급된 단어였다. 그러나 12년 남짓을 한국에서 살아온 나의 언어적 능력은 부족했고, 번역은 그런 나를 모른 체했다. 어찌하여 세종대왕은 읽을 수 있는 능력만 나에게 부여해주셨을까? 도통 모를 것도 입안에서 굴려보며 나만의 의미를 수놓으라는 선지적 계시라도 주신 것일까.

미욱한 나의 언어로는 버터라는 단어를 닮았으니, 속절없이 버터의 향과 맛, 텍스처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무딘 빵칼에 무너지고, 혀에는 기름진 맛이 감돌고, 묵직하고 부드러운 향이 잇새로 흘러나오는 그런 버터를 떠올리게 하는 어떤 것을 상상할 뿐이었다. 로라가 산딸기를 따먹는 것처럼 ‘과즙이 넘치’고, ‘단맛이 입안을 찔러대’고 있다며 찬양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아무렴 상관없었다. ‘버찌’라는 단어를 로라의 언어로 발음하면 ‘체-리’라는 사실따위 몰랐고, 나는 하염없이 버터 같은 어떠한 것을 떠올렸을 뿐이니.

그렇기에 ‘버찌’란 내게만 특별한 추억을 가진 단어인 것이다. 모두가 새콤하고 찌릿한 단 맛을 떠올릴 때, 나는 유니콘 마냥 존재하지도 못할 버터 같은 어떤 것을 떠올리니 말이다. 대신 내게 진짜 ‘버찌’의 맛처럼 달큰하게 입가에 감겨오는 것은, 찐득한 과즙처럼 머리를 감싸오는 것은 아무도 찾지 않는 도서관 구석에 자리해 아무도 찾지 않는 소설책을 내 손으로 발굴해 나갈 때의 나를 비추던 햇살, 그리고 작은 구절 하나에도 쉽게 가빠지는 숨을 더욱 뜨겁게 내쉬고, 쉽게 뜨거워지는 어리고 여린 볼을 더욱 발갛게 붉히던 찰나의 조각들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당신에게도 혹시 그런 단어가 있을까? 불현듯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볼을 붉히게 하는, 그런 언어 말이다. 어쩌면 그것은 누군가 당신만을 위해 속삭여준 이름일 수도 있고, 혹은 오래된 책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낡은 편지 속 한 구절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깊은 밤, 누군가 무심코 건넨 말 한마디가 유독 가슴 깊숙이 스며들었던 그런 순간의 언어일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좋다. 그 단어가 당신의 입속을 맴돌 때, 마치 뜨거운 차를 단번에 삼킨 것처럼, 당신의 가장 안쪽을 간질이는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보는 것처럼, 있지도 않은 날개가 어깻죽지에서 돋아나는 것처럼, 몸 어딘가에서 작열하는 열기를 느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파도에 쓸려갈 것을 알면서도 모래사장에 이름을 적는 것처럼, 연한 연필로 일기장 한 켠에 새겨넣는 것도 좋겠다. 그렇게…다 다른 열기를 몸을 채며 내쉬고 있는 언어들을 곱씹어 발화發火해보자.


editor. 니이


인문잡지 「 영원 」 instagram: @0eterna1.m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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