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에 가려지는 것들에게

햇빛을 비추자!

by 인문잡지 영원

초등학생 때 자연관찰대회를 나간 적이 있다. 파열된 공기들을 자주 내뱉는 선생님의 귀빈용 슬리퍼를 졸졸 따라다니며 풀떼를 헤치고, 이끼들을 걷어내며, 발뒤꿈치가 푹푹 꺼지는 무른 흙을 밟았다. 그 과정에서 얻게 된 정보들은 퍽 대단한 것들은 아니다. 양지에서 사는 것과 음지에서 사는 것들, 햇빛을 받고 물을 자주 갈구하는 것과 태양을 피해 어둠 속으로 숨어들어 고인 물을 빨아들이는 것들, 이파리를 혓바닥 마냥 주욱 뻗어 축 늘어뜨리는 거추장스러운 것과 까무러치게 놀란 것마냥 몸을 옹송그려 한없이 작아진 가시들을 뻗치는 것들. 그런 것들을 구분할 줄 알았다. 여전히 작열하는 태양을 피해 나무 밑 어둡고 습한 그 푸른 공기를 머금고 자라는 망초들의 이름을 가끔은 기억한다. 흙을 파내면 지뢰처럼 바깥 세상을 모른 채로 숨을 쉬고 있는 장수풍뎅이 애벌레들을 안다. 발밑에 가라앉은 포자들의 군집이나, 미처 이끼가 되지 못한 흔적들을 안다.


어떠한 경험들은 그늘 속에 가려져 있던 것들을 그늘 위로 끌어올린다. 기억의 그늘, 앎의 그늘 따위에 숨어 있는 것들에 눈앞을 하얗게 바래게 하는, 번쩍거리는 불빛을 쏘아댄다. 사진의 밝기를 높이는 것처럼, 해상도를 높여 촬영하는 것처럼, 플래시를 터트리는 것처럼, 노출값을 올리거나 휘도를 높이는 것처럼….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이게 한다.


앎이란 즐겁다. 그늘에서 사는 것들을 그늘에서 빼내기도 하고, 혹은 그대로 그늘에서 살게 두어도 괜찮으니 적어도 나에게 그들을 짐짓 아는 체하고 인사하고 안면 정도는 트는 사이가 될 수 있게끔 한다.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 때와 달리 대본을 쓰지 않고도 쉽게 ‘그거 아시는구나?’하고 말 걸 수 있는 사이가 되어버린 이는 그 뒤로 돌아가지 못한다. 망각의 그늘이 다시 그들을 내 눈앞에서 가려 버린다 해도 이미 익숙해져 있는 감각은 늘 우리의 주위를 망령처럼 떠돈다. 그렇기에 길 가다 망초를 마주친 사람은 “너는 그때 그 ‘개망초’였지.”라고 말 붙여볼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삶의 모든 것들이 흐느적거리는 이파리를 바람에 떠밀며, 물살을 부유하며, 입자를 파고들며 당신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면, 그들에게 응당 아는 체를 해볼 때가 아닌가. 망각과 무지의 어둠이라는 그늘 속에 숨어 있는 것들을 들여다볼 때가 아닌가.



토끼가 먹는 것과 고양이가 먹는 것은 다르다

- 토끼풀과 괭이밥을 불러보기

토끼풀은 바로 그 유명한 '클로버'다. 유럽과 서아시아가 고향인 다년생 식물이다. 땅을 기며 퍼져나가는 능력이 뛰어나다. 토끼풀의 잎은 세 개의 작은 잎이 모인 모양은. 각각의 작은 잎은 타원형이며 끝이 살짝 들어간 모양이다. 잎 표면에는 하얀색이나 연한 초록색의 V자 무늬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토끼풀만의 독특한 특징이다.


세잎클로버는 행복, 돌연변이라는 네잎클로버는 행운을 뜻한다는 것은 한국에서 살고 있는 이들이라면 모두 다들 익히 알고 있는 속설일테다. 5월부터 9월까지, 토끼풀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꽃을 피워낸다. 둥근 공 모양의 꽃차례에 작고 하얀 꽃들이 빼곡히 모여 있다. 하나하나의 꽃은 콩과 식물 특유의 나비 모양을 하고 있지만 워낙 작아서 전체적으로는 솜뭉치처럼 보인다. 꽃대는 잎보다 높이 올라가 있어서 멀리서도 쉽게 눈에 띈다.


괭이밥은 완전히 다른 출신과 성격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가 원산지인 토종 식물로, 오래전부터 우리 조상들과 함께해온 친근한 들풀이다. 1년생 또는 다년생으로 자란다.


괭이밥의 잎도 세 개의 작은 잎이 모인 복엽이지만, 모양이 토끼풀과는 확연히 다르다. 각각의 작은 잎은 하트 모양을 하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토끼풀보다는 하트 세 개가 모인 것처럼 보인다. 잎 표면은 매끄럽고 V자 무늬 같은 것은 없다. 괭이밥이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잎의 움직임이다. 밤이 되거나 강한 햇빛을 받으면 세 개의 작은 잎들이 아래쪽으로 접혀서 마치 잠든 것처럼 보인다. 이런 현상을 취침운동이라고 하는데, 수분 손실을 줄이기 위한 식물만의 지혜다.


꽃은 4월부터 10월까지 피는데, 노란색의 작은 다섯 잎 꽃이다. 토끼풀의 뭉쳐진 하얀 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하나하나는 작지만 선명한 노란색이어서 초록 잎 사이에서 눈에 띄게 밝게 빛난다. 꽃대는 짧아서 잎 높이와 비슷하거나 약간 위에 있을 정도다.


이제 이 둘을 구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잎 모양을 보는 것이다. 타원형이고 하얀 V자 무늬가 있으면 토끼풀이고, 하트 모양이면 괭이밥이다. 꽃 색깔도 명확한 단서다. 하얀 뭉치 같은 꽃이면 토끼풀, 노란 다섯 잎 꽃이면 괭이밥이다. 크기와 자라는 모습도 다르다. 땅을 기며 넓게 퍼져나가고 잎자루가 길면 토끼풀이고, 작게 모여 자라고 잎자루가 짧으면 괭이밥이다. 밤에 잎이 접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틀림없이 괭이밥이다.

당신도 길을 걷다 수백, 수천번을 마주칠 그들에게 이름을 불러주며 인사해보는 순간을 가질 수 있길 바란다. 당신의 인사로, 하잘 것 없는 풍경 속 당신에게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하나의 존재로 되살아나는 것들이 세상의 곳곳마다 당신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으니.


editor. 니이


인문잡지 「 영원 」 instagram: @0eterna1.m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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