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밴드 오월오일
“매일이 우리들을 위한 날인 것처럼, 5월 5일이란 날짜를 듣기만 해도 설레고 기대하던 어린아이처럼.”
한때 선명했던 것들도 시간을 통과하면 뿌옇게 바래고야 만다. 열렬했던 마음과 기억, 그리고 찰나까지. 그런 조각들이 흐려지지 않도록 붙잡아둘 수는 없을까. 언젠가 애정하는 친구가 해주었던 말을 빌리자면 나는 ‘무해한 방부제’를 찾고 있다. 내 안의 순간들이 녹슬지 않도록 해줄 그런 존재를. 영원히 어제 같을 수 없다면, 조금이나마 더 오래 어제의 조각을 간직하고 싶다.
그러던 중 지구별의 한구석에서 무해한 방부제와 같은 존재를 만났다. 언제나 처음처럼, 오늘을 노래하는 이들. 국내 밴드 ‘오월오일’이다. 2019년 디지털 싱글 앨범 <Run>으로 두각을 드러낸 오월오일은 <삭>, <Nightmare>, <Campo>, 그리고 지난 2월 발매한 <FRUTO> 등의 앨범을 세상에 내놓으며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늘 초심을 끌어안고 노래한다는 밴드를 보고 있으니 문득 처음을 잊지 않으려는 이들의 처음이 만나고 싶어졌다. 그리하여 오월오일의 첫 ep 앨범 <삭>을 꺼내든다.
삭은 달과 태양의 황경이 같아지는 때를 말한다. 지구에서 보았을 때 달의 뒷면만 햇빛을 받으므로 지구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해와 달처럼 우리들의 마음은 같아졌고 아직 보이지 않은 달엔 매일을 어린아이처럼 새롭게 살아가는 소중한 우리들의 모습과 이야기들을 담아 색칠해두었다. 아직은 보이지 않는 그것들이 앞으로 더 빛나게 될 시작점, 우리는 그것을 삭이라 표현하기로 했다.
-앨범 <삭>의 소개-
응시해야만 비로소 기억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 이를테면 광활한 우주 안의 달과 같은 것들. 늘 지구인을 향해 여기 있노라 반짝이지만, 그 빛이 항상 와닿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달이 떠올라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내일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하기도 한다. 본 앨범 역시 마찬가지이다. 삭으로부터 서서히 형태가 드러나며, 대중에게 오월오일이 기억될 순간이자 앞으로 펼쳐질 그들만의 빛이 궁금해지는 순간. 그 모든 감각이 이루어질 세계가 첫 ep 앨범 <삭>이다. <삭>은 총 8개의 트랙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해 본다.
아무리 숲을 헤집어도 그 안에 있는 한, 마주할 초록은 무궁하다. 몇 번이고 산을 오르내리며, 그 끝에 자리한 꿈을 바라보며 나아간다. 이들이 말하는 삶이란 그러하다. 때로는 울음으로, 혹은 침묵으로 매듭짓기도 하는 것.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서로의 곁이 되어준 이들이 있다.
하루 반나절을 나무 위에서 춤추니 우린 볼 수가 있었어 예쁜 노을이 있었지 바다 같은 나뭇잎은 춤추고 우린 그걸 따라 했어 그게 초록 마음이었지
비록 저마다 다를지라도 이 초록 위에서 ‘우리’라는 이름으로, 같은 마음을 지닌 채 춤춘다. 단지 너와 나의 시선 끝에 같은 노을과 나뭇잎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여정을 조금은 사랑하게 된다. 종종 충돌하고, 그저 밉기도 할 테지만 결국 그마저도 우리이다. ‘Tree’는 그런 기억을 되살려 조립되었다. 이토록 소중했던 추억들을 떠올리며, 잊어버린 날들을 돌아본다.
풋사과 향이 배어 있는 서툰 사랑, 그 감정이 이곳에 머무르고 있다. ‘Young adult’는 보컬 류지호가 학창 시절 친구의 사랑을 목도한 뒤 그 마음을 빌려 만든 곡이다. 예고 없이 생각나고, 문득 보고 싶어지던 날들. 내 하루가 온통 네가 된 기분. 사랑해 본 경험이 있다면 한 번쯤 경유해 봤을 순간들이다. 그들은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알맹이들을 숨김없이 말한다. 마구 튀어 오르는 멜로디는 마냥 좋다가도 상대의 마음을 어림잡으며 조바심을 내기도 하는, 그런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사랑과도 닮아있다. 노래의 곳곳에는 이러한 열렬함과 생경함이 스며들어 있다. 언제라도 이 어린 사랑을 재생할 때면 그곳에서 사랑을 하던 나와 조우하게 된다. 마치 모두의 마음을 빌린 것처럼.
네 맘은 달라도 내 마음은 너라서 내 하루에 네 곁은 보석 같은 거였어 넘쳐흐른 내 맘은 어디 둘 곳 없었어 그래서 늘 헤맸어 내 마음은 어딜까
자꾸만 넘치는 마음을 어디 두어야 할까. 어른이 되어도 그러한 감정 앞에 설 때면 몇 번이고 헤매게 된다. 어쩌면 단지 서툰 사랑을 하는 중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는 서툴 수밖에 없도록 짜여진 듯하다. 제목이 ‘Young adult’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어린 어른이 되어가므로. 어쩌면 미숙함과 사랑은 발견되지 않은 동의어일지 모른다.
현관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나아가는 순간, 이 노래와 함께하면 마치 새 신발을 신은 듯 들뜬 마음이 된다. 새로운 신발을 처음 신을 때의 감정을 알고 있을까. 유독 발걸음이 가볍고, 지나다니는 곳마다 설렘을 남기고 가는 듯한 기분. 하지만 곧잘 휘발되는 그런 감정을 이 곡은 간직하고 있다. ‘SSY’는 리더 곽지현이 선물 받은 신발을 신고 느꼈던 두근거림을 잊지 않으려 만들어졌다.
비가 와도 나는 문제없을 걸 마냥 기분이 좋아 좋은 그루브에 몸을 맡겨 살랑거려요
아끼는 신발을 신고 걷는 날은 그야말로 무적이 된다. 소나기가 오더라도 용서하며, 바람 속에 살랑이는 그들이다. 대상이 신발이 아닐지라도, 소중한 것을 지니고 있을 때면 단순히 함께 있다는 이유만으로 마냥 좋아진다.
나는 매일이 그래 이리 설레는 날인데 우린 왜 지쳐 도망친 걸까
그럼에도 사소한 무언가에 그토록 웃었던 날과 내일을 기대했던 날들을 망각한다. 인간은 수치가 아닌 기억과 경험으로 살아가는 이들, 다시 말해 우리는 늘 작은 순간에 기대어 살아간다. 그러니 나만의 부적을 떠올려보자. 존재만으로 용기가 생겼던 하루가 있었음을 잊지 않고 오늘을 살아갈 수 있기를.
오월오일의 청춘을 들여다본다. 그런데 어쩐지 그 풍경은 부단히 살아가는 우리와 제법 닮아있다. 이들에게 청춘은 단지 걱정 없는 하루를 보내고, 오늘만큼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아쉬운 대로 일단 달려가 보는 것.
청춘은 하얀 마음을 타고 그곳을 달려가는 거 아쉬운 대로 달려가는 거 사실은 청춘 뭐 없네
사회는 청춘이라 불리는 순간에 기대를 걸었다. 그렇게 자리 잡은 틀에서 벗어나면 옳지 않다고 여기며. 그러나 시절에 당위성이 부여될 수 있을까. 기필코 찬란해야만 하는 청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온도는 저마다 다르므로 누군가의 세계가 여름이라면, 나의 세계는 겨울일 수 있는 것이다. ‘청춘’은 이렇게 외친다. 바로 여기 이런 청춘의 형태가 있노라고. 그러니 살아보라고.
데뷔 앨범이란 누군가의 처음과 나의 오늘이 포개어지는 장소다. 하나의 음악을 직조하며 그 안에 저도 모르게 스며들었을 떨림과 기대, 확신 혹은 불확신 같은 것들이 우리에게 닿는다. 그러한 감정들을 내비쳐주었다는 사실 때문인지 내게 데뷔 앨범은 늘 특별하게 다가온다.
‘첫-’과 나란히 있는 것들이 주는 마음이 좋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오월오일의 <삭>은 데뷔 앨범은 아니다. 그러나 여러 곡을 나란히 선보이는 첫 ep 앨범이라는 점에서 그들에게는 또 다른 처음이다. 수록된 곡들을 하나씩 꺼낼 때마다 음악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상상하게 된다. 그토록 하고 싶었을 말들에 귀 기울이며, 타인의 세계로 향한다.
오월오일의 음악 덕분에 수많은 시간을 기억한다. 결국 희미해지고야 마는 것들을 잊지 않도록 해주어 감사하다. 마찬가지로 당신들이 길 잃을 때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도록, 부표가 되어주고 싶다. 늘 오월오일의 세계가 궁금한 열렬한 청취자로서, 언젠가 지금 있는 그곳을 해메게 될 때 우리가 함께했던 순간들을 되짚으며 돌아올 수 있기를.
editor. 유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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