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변주곡을 들으며 걷는 뒤셀도르프의 마지막 길
로베르트는 밤새도록 귓속에서 아주 괴로운 소리가 들린다며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한 가지 소리가 계속 들리더니 가끔은 다른 소리가 함께 들린다고 했다. 낮에는 덜했다. 하지만 다음 날 밤에는 똑같은 증상이 반복되었고,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이른 아침 두 시간 정도는 괜찮았는데 10시가 되니까 다시 같은 증상이 시작되었다. 그는 정말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로베르트는 그가 듣는 모든 소리가 음악이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음악은 현란한 소리를 내는 악기들이 연주했다고 하며, 소리는 지금까지 들은 어떤 음악보다 아름다웠다고도 한다. 그 소리 때문에 슈만은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의사는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한밤중에 잠자리에 든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로베르트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어떤 선율을 적기 시작했다. 천사들이 자기에게 노래를 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천장만 쳐다보며 밤새도록 헛소리를 했다.
아침이 되니까 천사들은 모두 악마들로 변했고 로베르트는 그 악마들이 자신을 죄인으로 몰아서 끌고 다니며 지옥에 던져버리겠다고 한다며 공포감을 드러냈다. 발작 증세를 보이며 고통스러워하는 로베르트는 악마들이 호랑이와 하이에나처럼 덮쳐 자신을 발톱으로 할퀴려고 한다고도 말했다.
클라라 슈만의 일기
슈베르트와 멘델스존의 천사들이
나에게 노래를 들려주었다.
-로베르트 슈만-
※ 로베르트 슈만의 영혼이 담긴 최후의 작품, '유령 변주곡'을 들으며 읽어주세요.
빌커 가(Bilker Straße)에 있는 뒤셀도르프 슈만 하우스에서 나왔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바깥공기는 한층 무겁게 가라앉는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했던 그의 마지막 거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공직을 맡으며 살았던 집. 낭만의 중심에 서 있는 위대한 시인은 1854년 2월 27일, 맨발로 이 집을 나섰다.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가장 많이 기대하고, 가장 많이 힘들었으며, 수없이 마음속으로 그려봤던 그 길. 나는 1854년 2월 27일 그가 어떤 깊은 다짐을 하고 집을 떠나며 걸었던 그 길을 그대로 따라걸었다.
라인강의 바람이 차다. 천사가 그에게 들려주었다며 그가 삶의 마지막에 작곡한 '유령 변주곡'을 들으며 걷는다. 변주가 진행되며 주선율에 한 음씩 더해질 때마다 내 감정을 담고 있는 감정 주머니의 두께가 조금씩 얇아진다.
천사가 그에게 들려주었다는 그 멜로디는 사실 그가 작곡했던 바이올린 협주곡의 2악장 선율이다. 슈만은 자신이 작곡했던 곡조차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영혼이 부서지고 있었다.
살갗이 한 층 한 층 벗겨지는 듯한 감정에 침식되어 걷다 보니 어느새 라인강변에 다다랐다. 비바람에 세차게 철썩이는 라인강의 물결이 내 마음 같다. 16분 남짓한 이 곡의 남은 재생 시간을 거듭 확인한다. 이 곡이 끝나는 순간 그가 라인강에 몸을 던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1854년 2월 27일. 온전치 않은 정신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해칠지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힌 로베르트 슈만. 그는 작은 메모를 남기고, 클라라가 잠시 외출한 틈을 타 자신을 만류하는 열세 살 딸 마리의 손을 뿌리친 채 맨발로 집을 나섰다. 그리고 라인강에 이르러 결혼반지를 먼저 던진 후, 차가운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사랑하는 클라라, 내 결혼반지를 라인강에 던질 것이오.
당신도 그렇게 하구려. 그러면 두 반지가 하나가 될 게 아니오.
-로베르트 슈만이 클라라에게 남긴 메모-
다행히, 혹은 불행히도, 슈만은 지나가던 뱃사공에게 구조된다. 자신이 살아있음을 깨달은 그는 거듭 강물에 뛰어들려 발버둥 쳤다. 메모를 보고 깜짝 놀라 울며 남편을 찾아 헤매던 클라라는 그가 구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임신 중인 그녀의 상태를 염려한 의사는 이 부부의 만남을 허락하지 않았다. 의사가 이들 부부의 소중했을 만남을 허락했더라면...
그가 뛰어내렸던 부교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오버카셀 교를 바라보며, 두 팔을 벌리고 낙하하는 슈만의 모습을 떠올린다.
세간에는 슈만을 '심신이 미약하여 정신병으로 인해 자살 시도한 음악가'라며 쉽게 이야기한다. 불협화음으로 가득 찬 그의 음악이 그런 그의 심신 상태의 증거라는 설명도 덧붙인다. 말은 참 쉽다. 깊디깊은 그의 내면 속에 그가 겪었던 고통이 고스란히 담긴 그의 아름다운 음악들을 단순하게 정신병이 있던 유약한 음악가의 작품이라고 치부할 수 있다니.
삶을 포기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슈만은 자신의 고통을 견디기 힘들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뛰어내린 것이 아니고, 충동적으로 뛰어내린 것도 아니다.
슈만은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려고 뛰어내렸다.
기록을 살펴보면 슈만은 클라라에게 정신이 돌아올 때마다 이야기했다고 한다. "제발 나를 버리고 아이들과 떠나라"라고. 자신의 상태가 더욱 나빠지면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슈만의 순수한 진심을 알아차린 클라라는, 이 슬픈 말을 반복하는 남편의 모습에 가슴으로 매일 울었다.
슈만은 급기야 사랑하는 가족을 해칠까 봐 언제든지 자기 발로 정신병원을 갈 수 있게 짐을 챙겨놓기도 했다. 치료를 받고 회복해서 다시 행복한 가정으로 돌아오겠다는 의지와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본인의 상태가 점점 악화된다고 생각한 슈만은 클라라가 집을 비웠을 때 라인강으로 향했고 몸을 던졌다.
슈만은 이 차디찬 라인강에 단순하게 자신의 이기심으로 삶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뛰어내린 것이 아니다. 그의 깊은 다짐은 자신 때문에 고통을 받는 사랑하는 가족을 위한 결단이었음을 나는 자신한다.
슈만의 음악을 단 하나의 단어로 표현해야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사랑'이라는 단어를 선택한다.
슈만은 마음속에 사랑을 품고 산 음악가다. 나는 어릴 때부터 늘 생각해 왔다. 삶에 있어 '사랑'이라는 가치가 가장 우선순위라고. 사랑의 힘은 불가능을 가능케 한다. 이 강력한 힘은 나를 하늘 끝까지 치솟는 기쁨으로도 인도하지만, 단숨에 나락으로 나를 몰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위대한 가치는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면서도 지키고 싶어 하는 놀라운 힘이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슈만의 음악은 서정적인 오이제비우스와 격정적인 플로레스탄이 대비를 이루며 인간의 내면을 노래한다. 상반된 성격의 두 내면은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수많은 선택지에 고민하는 과정을 노래한다. 그 과정은 어디서 시작되는 걸까? 하고 싶어 하는 것, 갈망하는 것, 즉 '사랑'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오이제비우스와 플로레스탄은 상반된 성격이지만 이 둘은 단 하나의 가치를 두고 토론한다. 바로 음악이고 그것은 곧 사랑이다.
때론 서정적이고 때론 격정적인 사랑,
플로레스탄은 거칠고, 오이제비우스는 온화하니
눈물과 불꽃, 그 둘 모두를 품어라.
내 마음속 그 두 사람, 곧 고통과 환희로구나.
-로베르트 슈만 '사랑의 시간들'-
사랑의 꿈을 꾸던 츠비카우 소년은 라이프치히에서 사랑을 위해 버텼고, 사랑을 지키기 위해 라인강에 몸을 던졌다.
구조된 슈만은 집으로 돌아왔고 자신을 지키는 두 남성의 감시하에 자신의 방에 머물렀다. 자신을 감시하는 두 남성들 덕에 자신이 가족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편안함을 느낀 슈만은 자신의 책상에 앉아 유령 변주곡의 악보를 적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나의 귓가에 흐르던 유령 변주곡이 끝났다. 마침 빗줄기가 잦아든 강물은 이제 고요한 얼굴을 하고 있다. 비가 내리는 라인강을 바라보며 듣던 유령 변주곡, 나는 이 위대한 음악가의 마지막 유언을 온몸으로 들었다.
이상과 현실의 경계를 환상이라고 부른다. 낭만의 중심에 서 있는 이 음악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고통 속에서도 꿈을 꾸며 사랑을 지키고자 했던 그의 맑은 영혼을 사랑한다.
사실 슈만은 다른 별,
적어도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았다.
그는 현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잘 알지 못했다.
머릿속에 항상 꿈과 환상과
시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스티븐 이설리스-
빌커 가를 따라 걷다 보면 작은 공원과 마주한다. 그 중심에는 슈만이 평생토록 사랑하고 존경했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동상이 서 있다. 이 동상은 독특하게도 하이네의 데드 마스크를 여러 조각으로 분해한 형상을 하고 있다.
스스로를 '분열과 반어의 시인'이라 칭했던 하이네. 그의 내적 갈등은 열정적인 플로레스탄과 몽상적인 오이제비우스라는 두 개의 자아를 통해 음악으로 자신의 분열을 이야기했던 슈만의 모습과 놀랍도록 닮아있다. 뒤셀도르프의 슈만 하우스 바로 맞은편에는, 하이네 연구소가 자리하고 있다. 두 위대한 낭만주의자의 영혼은 지금도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
1854년 3월 4일. 슈만의 강력한 요청으로 엔데니히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사랑하는 남편의 병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클라라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의사는 환자의 가족이나 친척을 슈만과 접촉하지 못하도록 했고, 그중 그가 사랑하는 아내 클라라는 가장 강력한 면회 금지 대상이었다. 클라라는 그렇게 슈만이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에서야 남편을 만날 수 있게 된다.
오, 맙소사!
마차가 우리 집 문 앞에 와 있었고,
로베르트가 서둘러 옷을 입고
하젠클레버 박사와 함께 마차에 올라탔다.
감시자 두 명을 대동했고
나와 아이들에게는
한마디 물어보는 말도 없었다.
내 몸은 굳어버렸고
아찔해져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제 나는 죽어야 하나!
-클라라 슈만-
로베르트 슈만을 음악감독으로 모셔왔지만, 끝내 그를 내친 뒤셀도르프는 오늘날 위대한 음악가를 추억한다. 뒤셀도르프의 음악대학은 그의 이름을 따 로베르트 슈만 음악대학이 되었고, 해마다 5월이면 그의 이름을 내건 '슈만 축제'가 열린다.
뒤셀도르프 시내를 걷다 보니 뒤셀도르프 톤할레 앞에서 그의 이름이 걸린 축제 현수막을 마주한다. 그리고 뒤셀도르프 톤할레에는 그의 이름을 딴 홀도 존재한다. 반가운 마음이 한가득이지만, 이해를 하면서도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그를 내쳤던 이 도시가 시간이 흘러 그를 추억하는 것이 얄궂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