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함부르크에서 마주한 브람스

by 조재연
KakaoTalk_20250726_143356292.jpg
KakaoTalk_20250726_143356292_01.jpg
클라라 슈만, 한스 폰 뷜로
이곳에 신이 내려보낸 것 같은 사람이 와 있다!

-클라라 슈만-
나는 삼위일체를 믿는다.
바흐라는 성부와
베토벤이라는 성자,
그리고 브람스라는 성령을

-한스 폰 뷜로-


위대한 음악가들에게 찬사를 받고, 우리 시대에도 가장 사랑받는 음악가 중 한 명인 요하네스 브람스.

KakaoTalk_20250422_164810491.jpg

이 거대한 찬사 뒤에 가려진 브람스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우리는 브람스를 흔히 '가을의 음악가'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그의 음악을 지배하는 깊은 고독과 뜨거운 열정은 어떤 풍경 속에서 태어났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그를 찾아 떠났다.


https://youtu.be/xJbAnh64MF8

브람스 교향곡 3번 3악장

뮌헨에 도착한 지 사흘째, 도시는 끝내 따스한 햇살을 보여주지 않았다. 비 내리는 도심을 거닐다 함부르크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인간의 기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날씨는 인간을 감성적이게 만든다. 비가 내리면 김광석의 음악을 들으며 파전에 막걸리가 생각나는 사람이 있고, 와인을 마시며 쳇 베이커의 음악을 듣고 싶은 사람이 있고, 빗소리를 벗 삼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 있다. 감수성은 인간의 본능이니까.

이 모든 감성의 종착지엔 '소리'가 있다. 수많은 소리 중 가장 정제된 언어인 '음악'은 우리에게 가장 필연적이고 원초적인 선택이 된다. 음악은 우리의 감정을 가장 쉽게 대변해주고, 때에 따라서는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기도 한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나는 종종 클래식 FM을 듣는데, 만약 창문 없는 방에서 지낸다 해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선곡만으로 지금이 어떤 계절인지, 날씨는 어떤지 능히 짐작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꽃이 피는 계절 봄이 오면 어김없이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가 흐르고, 비가 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이 나온다. 그리고 가을이면, 어김없이 브람스가 나온다.

요하네스 브람스. 그는 왜 가을의 대명사가 된 것일까? 그가 음악의 꽃을 피웠던 비엔나 카를 광장의 좌상도, 영면에 든 중앙묘지의 묘비에도 그는 왜 홀로 고개를 떨군 채 고뇌하고 있는 걸까. 그의 삶은 떨어지는 낙엽처럼 그리도 쓸쓸하고 고독했던 걸까?

그의 벗 요아힘의 모토 'Frei aber einsam(자유롭지만 고독하게)'를 되뇌며, 그 답을 찾기 위해 홀로 함부르크를 찾았다.

함부르크로 향하는 고속 열차 ICE 안에서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떠올리며 블롬슈테트가 지휘하는 게반트하우스의 브람스 교향곡 3번을 듣는다. 3악장의 호른이 주제 선율을 노래하자 소설 속 주인공 '시몽'이 넌지시 묻는 듯하다.

목요일 저녁,
살 플레옐에서 브람스 교향곡 3번을 연주합니다.
혹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KakaoTalk_20250428_114245267_14.jpg 함부르크 중앙역


오랜 시간 기차를 타고 도착한 함부르크. 도시는 예상과 달리 더없이 화창한 날씨로 나를 맞아주었다. 브람스의 고독을 알아보기 위해 도착한 이곳이 이렇게나 찬란하다니. 어쩌면 함부르크는 나에게 다른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고독'이 아닌, 그의 진짜 좌우명이었던 '행복'에 대하여.

'Frei aber froh', 자유롭지만 행복하게.




KakaoTalk_20250724_092302549.jpg

나는 함부르크 '작곡가 지구(Komponistenquartier)'에 자리한 브람스 박물관을 찾았다. 굳게 닫힌 문 앞에서 작은 초인종을 누르자, 안에서 직원이 문을 열어주며 나를 맞아준다. 마치 브람스가 직접 맞이하는 듯한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이곳에서 나는 '고독한 거장'이 되기 전, 이제 막 싹을 틔우던 청년 요하네스 브람스를 만난다.

KakaoTalk_20250724_092302549_10.jpg?type=w773 함부르크 브람스 뮤지엄

가장 먼저 나오는 공간에서는 브람스의 유년 시절을 볼 수 있다. 따스한 나무 벽면과 볕이 드는 전시실은 그의 음악처럼 진중하고 아늑한 분위기로 가득하다.

KakaoTalk_20250724_092302549_04.jpg?type=w773 17살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사랑을 이룬 브람스 부모님 사진과 1833년 5월 7일, 세례 명부에 새겨진 ‘요하네스 브람스’

1833년 5월 7일, 함부르크에서 한 생명이 첫울음을 터뜨렸다. 가난한 더블베이스 연주자였던 아버지 요한 야코프와 열일곱 살 연상의 어머니 요한나. 그들의 고단했지만 따뜻했을 보금자리에서, 브람스는 음악이라는 위대한 유산을 물려받았다.

KakaoTalk_20250724_092302549_06.jpg 2차 세계대전으로 사라진 브람스의 생가(Specksgang Nr. 24). 이 소박한 집에서 그의 위대한 음악 인생이 시작되었다.

박물관에 남은 흑백 사진 속 그의 생가는 항구의 눅눅한 공기와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비좁은 건물이었다. 훗날 그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그 깊은 비애는, 이 비좁은 골목에서부터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KakaoTalk_20250726_121043272.jpg?type=w773 브람스 아버지 '요한 야코프 브람스'

음악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브람스는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했고, 수많은 악기 중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피아노였다. 아들의 재능을 알아본 아버지는 그를 피아노 교사 오토 코셀에게 보냈다. 코셀은 어린 브람스에게 평생의 지표가 될 한 마디를 남겼다.

"마음을 담아 연주해라."

기술보다 음악의 본질을 가르친 코셀 선생님을 브람스는 평생 존경했다.

KakaoTalk_20250724_092302549_07.jpg?type=w773 8살의 브람스가 새해를 맞아 스승 코셀에게 보낸 감사 편지
다시 한번 1년이 지났고,
지난 한 해 동안 선생님께서 저를
얼마나 잘 가르쳐 주셨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실 저는 때때로 열심히 연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부지런하고
세심하고 열심히 연습할 것을 약속합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당신의 순종적인 학생, J. 브람스-


때때로 연습을 게을리했던 것을 반성하고, 더 나은 학생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8살 브람스의 편지를 읽어보면 훗날 자신에게 그토록 엄격하고 겸손했던 성품이 느껴져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런 성실한 제자의 천재성을 일찌감치 간파한 코셀은 "내가 가르치기에는 너무 위대한 재능"이라며 자신의 스승인 에두아르트 마르크센에게 브람스를 데려갔다. 마르크센은 가난한 제자를 위해 수업료도 받지 않고,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으로 이어지는 고전 음악의 위대함을 가르쳐 주며 그의 음악적 뼈대를 세워주었다. 훗날 브람스는 자신의 역작인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스승 마르크센에게 헌정하며 그 깊은 감사함을 표했다.

KakaoTalk_20250724_092302549_01.jpg
KakaoTalk_20250724_092302549_02.jpg
KakaoTalk_20250724_092302549_03.jpg
브람스의 이름이 새겨진 식기 용품들

하지만 가난은 섬세한 예술가의 영혼을 가진 소년이 학업에만 집중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는 밤마다 항구의 뒷골목, 자욱한 담배 연기와 취객들의 소음으로 가득 찬 선술집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돈을 벌어야 했다. 그 혼탁한 공기 속에서, 소년은 어떤 마음으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렸을까.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그의 가슴속에는 예술을 향한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의 연주를 듣게 된다. 그의 신들린 듯한 연주를 듣고, 브람스는 '진정한 음악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게 되었다.

KakaoTalk_20250726_122412660.jpg?type=w773 요제프 요하임과 클라라 슈만

소년의 가슴속에 잠자던 꿈은, 바이올리니스트 에두아르트 레메니를 만나며 거대한 날개를 폈다. 레메니는1850년, 헝가리 혁명을 피해 함부르크로 왔다. 둘은 금세 친해졌고, 그의 집시풍 바이올린 선율과 브람스의 피아노가 어우러졌던 이때의 연주 경험은 훗날 명곡 '헝가리 무곡'의 뜨거운 자양분이 되었다.

KakaoTalk_20250724_092302549_08.jpg 1853년, 스무 살의 브람스와 바이올리니스트 레메니

1853년 봄, 스무 살의 브람스는 레메니와 함께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여행을 떠났다.


하노버

첫 목적지 하노버에서, 그는 우상이던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과 마주했다. 내성적이고 진중한 두 젊은 음악가는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서로의 영혼을 알아보았고, 이날의 만남은 평생에 걸친 우정으로 발전한다.


바이마르

당대 음악계의 슈퍼스타, 프란츠 리스트를 만났다. 하지만 화려하고 기교적인 리스트의 음악 세계에 브람스는 큰 감명을 받지 못했다. 리스트에게 매료된 레메니는 바이마르에 남고, 브람스는 요아힘이 있는 괴팅겐으로 향했다.


뒤셀도르프

괴팅겐에서 요아힘과 깊은 음악적 교감을 나눈 브람스는 요아힘의 소개로 마침내 존경하던 로베르트 슈만을 만나기로 결심했다. 그는 요아힘의 추천장을 품에 안고, 곧장 뒤셀도르프로 향했다.

브람스의 인생, 아니 새로운 음악의 역사가 다가오고 있었다.

KakaoTalk_20250727_110837203.jpg 브람스의 외모 변천사
KakaoTalk_20250724_092302549_11.jpg

스무 살 브람스가 떠났던 그 여행은 그의 일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평생의 친구 요아힘을 만났고, 동경하던 로베르트 슈만을 만났으며, 그의 운명적 사랑 클라라 슈만을 만났다. 그 모든 경험이 모여 그를 우리가 아는 거장 '브람스'로 만들었다.

사랑하는 거장들의 흔적을 따라가 본 나의 여행. 그들이 남긴 음악이 아닌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그들의 영광이 아닌 삶의 과정과 발자국을 따라 걸으며 위대함이란 결과가 아닌 과정 속에 있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여행을 다녀온 후, 사랑하는 그들의 음악을 들을 때면 심장이 예전보다 더 크게 울렁인다. 나는 믿는다. 이 깊은 감정의 동요는 단순히 그들의 공간에 다녀왔다는 흥분이나 몰입감을 넘어, 내 삶의 방향을 비추는 단단한 배움의 증거라는 것을.


함부르크의 거리에서

KakaoTalk_20250724_095332530_03.jpg

함부르크는 도시의 위대한 아들을 잊지 않았다. 박물관을 나와 그의 이름이 붙은 '요하네스 브람스 광장(Johannes-Brahms-Platz)' 주변을 걷다 보면,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현재의 이 도시 안에서 살아 숨 쉬는 그의 흔적과 마주하게 된다.

KakaoTalk_20250724_095332530_02.jpg

브람스 광장에는 인상적인 조각상이 있다. 한쪽 면에는 함부르크에서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청년 브람스'가 새겨져 있고, 그 반대편에는 세상이 기억하는 긴 수염에 배가 나온 '거장 브람스'가 자리하고 있다. 그가 고뇌했던 청춘과 그것을 딛고 일어선 거장의 모습까지 그의 인생 전체를 하나의 돌에 품고 있었다.

KakaoTalk_20250727_110015492.jpg 라이스할레
라이스할레 콘서트홀 앞의 현대적인 조형물은 그의 초상이 아닌, 그의 음악처럼 힘차게 흐르는 역동적인 형태로 그의 정신을 기린다.
KakaoTalk_20250727_105734266.jpg 브람스를 추모하는 함부르크의 표지석

도시 곳곳의 조각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를 추억한다. 누군가는 그의 얼굴을, 또 누군가는 그의 음악을 닮은 형태로 말이다.

노을이 지는 엘베강과 함부르크 풍경

마지막으로, 세계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가 남긴 말을 전하며 이 글을 마친다.


사람들은 브람스가 북독일 사람이라
무뚝뚝하고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오해입니다.
그의 음악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친구들과 자연을 사랑했던 한 인간의
따뜻한 마음과 위로가 가득합니다.
그의 음악은 우리에게
늘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


https://youtu.be/wxIM7A_1zDU?si=wRmJv3XdE-9S2t3z&t=692